-지금 보고 싶은 사람에게 쓴 편지
윤희정.
넌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살고 있니? 작가의 꿈은 이룬 거니?
난 널 꼭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사오 년쯤 전에 소식이 끊겼던 어릴 적 동네 친구와 연락이 닿아 거의 40년 만에 만난 적이 있었단다. 놀랍게도 나와 그 친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어. 의정부의 한 찻집에서 만나 그 긴긴 세월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 또 만나자며 맞잡았던 손을 아쉽게 놓았는데, 아직까지 다시 보지는 못했네. 사는 게 다 그런가 봐.
이렇게 까마득히 어릴 적 옛 친구도 만나게 되는데, 이미 성년이 되어 대학 때 만난 너는 왜 이렇게 연락이 닿지 않을까. 그 시절 만난 다른 친구들의 연락처는 다들 휴대폰에 잘 저장되어 있는데 말이야.
네가 대학 졸업 후 글을 쓰겠다며 서울로 갔을 때, 참 대단하게 보였어. 내가 하지 못하는 도전을 하는 너를 부러워하면서 너의 도전을 응원했단다. 좋은 작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어.
그리고 너 생각나니? 우리 인사동 육교 위에서 딱 마주친 거..... 넌 그때 볼일 보러 어딘가를 가는 중이라고 했고, 나는 아마도 서울에 일이 있어서 잠시 올라왔을 때였던 것 같아. 근데 우연치고는 너무 기가 막히지 않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그 속담은 완전 거짓이야. 우리는 정말 반가웠으니까. 근데 그 뒤로 너를 몇 번이나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이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건 그때의 그 기막힌 우연에 지금까지 이어졌어야 할 우리 인연을 다 소모해 버린 때문일까? 별별 생각을 다 해본다.
네가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너네 집으로 전화를 했었단다. 그러면 어머니나 네 여동생이 받아서 네 소식을 전해주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결이 되지 않았어. 그 뒤로도 여러 번 해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단다. 휴대폰이 아직은 대중화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 집 전화를 통할 수밖에 없었지. 이사를 간 걸까? 여러 가지 궁금했지만 나는 또 나대로 일상을 바쁘게 살아내다 보니 그냥 궁금증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어.
편지를 쓰다 보니 한편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 집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았는데. 네가 한 번쯤 우리 집에 전화해 주었으면 연락이 끊기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 아마도 너와 나의 관계에서는 내가 좀 더 적극적이었나 보다. 아무래도 괜찮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날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던 친구로 내 마음속에 남아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너를 잊지 못하고 이렇게 보고 싶어 하는 걸 보면 분명 우리는 잘 통하는 친구임에 틀림없어. 너도 그럴거라 믿어.
그때 모였던 [소설창작회] 선배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진로나 취업준비를 슬슬 시작했어야 할 3학년들이 소설을 써보겠다고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만나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품평을 하고, 엠티를 다니고 했으니 다들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지. 난 뭔가를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발은 담그고서는 열심히 하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네가 젤 열정적이었지. 그리고 네가 써온 글이 젤 좋기도 했어. 그래서 우리 중에서 꿈을 이루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 일거라고 생각했어.
나 요즘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어. 그때도 글을 쓴 게 맞다면 말이야. 네가 가장 기뻐해 줄 것 같아서 소식 전한다. 30년도 더 전에 시작했던 걸 오래도 돌고 돌아 다시 이어간다. 살다 보니 인생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내 옆에는 그때 우리 소창 멤버들처럼 서로를 북돋워주는 글벗들이 있어. 50대의 나에게 이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참 그리고 나 서울에 살고 있어. 강북구 우이동 삼각산 재미난 마을. 번잡한 서울 중심과는 다른 이미지의 시골의 소읍 같은 작은 마을이야. 14년 전 늦은 결혼을 하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올라왔단다. 너도 서울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 어쩌면 어릴 적 내 친구처럼 너도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번쩍 스친다.
7~80년대도 아닌 2025년 인공지능의 시대에 만나고자 한다면 단박에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난 어디서 그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서 지금껏 이렇게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있다. Chat GPT에게 물어보면 방법을 알려줄까? 어쩌면 아직 만날 때가 아닌 걸까?
그 옛날 [소설창작회]의 인연으로 우리가 만났듯이 다시 또 어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재회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주문을 외워본다.
-만나져라. 만나져라. 꼭 만나져라 -
기다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뭔 수를 써보겠지.
이러든 저러든 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라.
내 친구 윤희정
나도 널 만나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