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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Aug 12. 2022

사뭇 낯선 점심시간의 풍경에 대하여

나는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보스가 없는 점심시간


이전의 글은 유연한 근무시간에 대해 다뤘었다. 이번 편은 그 속편이라고 해도 무방한 실리콘밸리의 점심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보고자 한다. 


여기는 출퇴근 시간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점심시간도 딱히 뚜렷하지 않다. 물론 대체로 12시~1시 정도에 먹는 사람들이 많지만 회사에서 밥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모두가 제각각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다. 특히 회의가 많은 경우에는 그냥 책상 앞에서 간단한 빵이나 샌드위치 등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고, 점심시간을 1시간~1시간 반 정도로 길게 쓰는 경우는 조금 드물다. 대체로 빨리 일하고 빨리 집에 가자는 분위기가 있어서 점심도 간단하게 먹고 업무를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직장인들이 11시 반부터 1시까지 약 1시간 반 정도를 점심시간으로 쓰는 경우가 많이 있고, 점심 이후 식후땡 커피까지 풀 코스로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밥을 같이 먹는다"라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어서, 식사를 누구와 하는지도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팀장이나 파트장과 점심 먹기 싫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은 같이 먹게 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막내라고 식사 메뉴 고르는데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는가? 나와 맞지 않는 식사 속도 때문에 밥을 채 다 못 먹거나, 지나치게 빨리 먹었던 경험이 있는가? 

일단 나는 위의 질문에 모두 Yes였다. 한국의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면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해 볼 법했을 풍경이기도 하다. 


여기 와서 느낀 점은 일단 점심시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을 거하게 먹은 팀원은 점심을 건너뛰기도 하고, 책상 앞에서 샌드위치나 간단하게 먹는 일은 매우 흔하다. 특별한 이벤트 (새로운 팀원이 입사했다거나, 누구 생일이라거나 등)가 아니면 점심시간을 1시간 넘어가게 쓰는 경우는 확실히 드문 것 같다. 


나도 같이 먹는 식사 시간에 매우 익숙했던 직장생활을 했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조금 당황스러웠다. 


미국에서 일한 첫날, 매니저 등 동료가 나에게 점심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아 내가 먼저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냥 기다리고 있었고 혹시 나랑 점심 먹기가 싫은가, 혼자 오해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점심이라는 것은 시간이 되면 같이 먹는 거고 아니면 따로 먹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개인마다 식단도 무척 다르니 (채식주의자부터 비건, 선호하는 메뉴도 모두 다 다름)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강요할 수 없고, 도시락을 싸온 경우도 있고 그냥 micro kitchen (스낵바와 같은 간단한 스낵이나 음식들이 구비된 휴게실과 같은 곳)에서 샌드위치 등을 가볍게 만드어 먹는 경우도 많다. 가장 흔한 경우는 일이 바쁘거나 점심시간 즈음에 회의가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함께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동료들이 서로 방해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굳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함께 먹게 되면 함께 먹는 것이지만 서로에게 의무나 부담을 주지 않는 문화인 것 같다. 이전 회사의 팀 경우, 코로나 전에 대체로 같이 먹긴 하지만 그날 개인의 업무 상황에 따라 다르고, 나의 팀장이 먹으러 가자고 해도 꼭 따라가야 하는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지금은 새 회사에서 하이브리드로 근무를 하고 있어서 사무실에 나오는 날이 팀 동료와 겹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혼자 먹을 때도 있고, 또 같이 먹을 때도 있지만 그 어떤 의무도 없다. 물론 같이 먹고 싶을 때는 미리 물어봐서 스케줄을 잡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도 어느새 이러한 패턴이 익숙해졌다. 예컨대, 다른 오피스에서 오랜만에 방문한 동료가 본사로 방문을 하여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는 분위기인 날이었다. 나의 매니저는 나에게 식사를 하러 가자 했고, 나는 마침 해야 할 일에 매우 집중을 하고 있어서 조금만 시간이 더 있으면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고 빨리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매니저는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겠지만 바로 일어나지 않는 나를 보고 곧바로 부담갖지 말고 시간이 허락하면 오라고 이따가 보자고 했다. 나는 조금 뒤에 합류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매우 자연스럽고 심지어 내가 점심에 합류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제공되었던 점심. 이렇게 점심이 나오는 날은 팀원들이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지금은 매끼가 나오는 회사에 다니지만 역시 늘 함께 먹진 않는다.


아, 그리고 물론 저녁에 회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연히 각자 가정이나 사생활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실제로 저녁시간까지 회사에 있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아예 팀 워크숍을 몇 박 며칠로 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외에는 따로 평일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지는 않고, 한국에서는 일이 주에 꼭 한 번은 동료들과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상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식사 메뉴 고르는 것도 큰 일이고, 누구와 먹는가 등등 식사하는 것이 큰 일이었는데 여기서는 일체 그런 일이 없어서 은근히 편하다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물론 한국에서 같이 우르르 먹으며 동지애를 키우던 것이 가끔 그립기도 하지만, 이곳에 문화와 상황에 맞추어 나도 어느덧 익숙해져 있다.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개인적인 문화가 어떻게 보면 비단 이곳만의 문화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동료들과의 점심시간이 올해는 더욱더 많아지고 있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늘 기대가 된다. 동시에 점심시간은 근무시간에서 잠깐 쉬는 시간인 만큼 개인의 시간을 자유롭게 가지면서 발란스가 있는 시간으로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에너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충전하게 되면 나머지 근무시간도 집중력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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