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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Sep 13. 2023

몽골이 좋은 이유

[프롤로그] 몽골에서말이야 증후군

 귀국 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주말 밤에는 텔레비전 소리가 은은한 거실에서 하릴없이 뒹군다. 미뤄두었던 약속들과 일처리를 모조리 해결하고 혼자 뿌듯하게 돌아오는 날 밤, 고요한 시간이다.  

 잠깐만. 침대 아래 시야 저 끝에 무엇인가가 보인다. 사륵 사륵 소리에 순간 소름이 끼쳐 뭐야 하고 고개를 돌리니 웬 거미였다. 아니 집에 웬 벌레가 나오지? 손가락 한마디 정도 되는 거미가 꾸물꾸물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나는 얼른 휴지를 뽑아 그 녀석을 신속하게 생포한 뒤 베란다 밖으로 방생했다.

'너 이 자식, 넌 몽골 덕에 살았다 인마.'

 그리고는 홀로 생각에 빠진다. 크으- 내가 몽골 유목민 게르에서 자봤는데 말이야. 거기에는 밤에 벌레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알아? 파리, 모기는 기본이고 풍뎅이에 지네 거미까지 같이 동침을 했단 말이지. 그리고 푸릇푸릇해 보이는 잔디밭도 날벌레가 막 가득한데, 그 날벌레들도 우리가 잠만 잘라치면 게르 안으로 막 들어와!

 근데 첫날에야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벌레를 죽이네 살리네 하지만- 한 나흘쯤만 지나도 있지? 거기서 풍뎅이랑 침낭을 공유하고 파리랑 캐리어를 공유하면서 완벽한 공생을 하게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한국 와서 웬만한 벌레를 봐도 말이지? 그냥 귀여운 거지~ 너도 인마, 내가 몽골 갔다 오기 전에 널 봤으면 말이다. 진작에 네 뒤통수에 홈키파 가루 허옇게 뒤집어쓰고 죽은 목숨이었다 이 말이야-

 여기까지 생각하다 잠깐 멈췄다. 으이구 인간아- 너 진짜 제정신이냐.

 요즘 나는 지독한 몽골병에 빠져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몽골에서말이야 증후군 정도 되겠다. 회식에서 양꼬치라도 구울라치면, 아 몽골 양고기는 말이야 하고 이야기하고 싶고- 잔디밭을 봐도 아 몽골 초원은 말이야 해버리고 싶고- 심지어 낡은 화장실을 봐도, 이 정도면 천국이지!  몽골화장실은 말이야- 저 초원에 구멍을 하나 파서...로 시작한 뒤 한참을 떠들고 싶은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는 병.

 기억을 함께 공유한 동행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버렸지, 그렇다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듣고 싶지고 않은 여행 후기를 나불거리는 것만큼 진상인 일도 없을 테니, 무난하고 원만한 사회인의 본분을 생각하며 나는 참고 또 참았다. 혹시나 내 몽골병으로 내심 괴로웠던 지인이 있었다면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막상 지인들이 몽골여행 여행 어때?라고 물어볼 때마다 나는 쉽사리 그곳을 추천할 수가 없었다.  여행지를 추천하는 건 꼭 소개팅 주선자리 같아서 괜히 한 두 번 더 머뭇거리게 된다. 정말 멀쩡한 사람인 걸 알아도 어디 모난 곳은 없는지 괜히 하나하나 뜯어보게 되는 것처럼, 아끼는 여행지가 행여 욕이라고 먹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한다.


 사실 소개팅 주선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몽골은 정말 최악의 상대긴 하다. 잘 못 먹고, 대개 못 싸고, 대체로 잠도 못 잔다. 극악의 이동시간과, 극한의 더위와 추위는 덤이다. 벌레도 간간히 꼬여주시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결정적으로 몽골에서 뭘 했냐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만한 게 없다.  

 나는 그냥... 몽골에 있었다.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차를 탔다. 열심히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밤에는 매일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좋아져 버렸다. 수십 가지의 객관적 단점이 보여도, 사랑에 빠지이유는 결국 주관식 서술형이다.


 당신이 무엇을 가장 사랑하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뜨거운 사막과 드넓은 초원, 광활한 호수와 쏟아지는 별 일수도 있다. 어쩌면 잠깐 스쳐 지나간 몽골 아이의 환한 미소일 수도, 푸르공을 타고 오프로드를 거칠게 달릴 때 심장 터질 듯이 들려오던 음악 일지도 모르겠다. 게르 앞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양염소, 야크를 그리워하고, 매일 밤 함께 보드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낭만을 추억할 수도 있다.  


 몽골은 그런 곳이다. 나도 한번 가볼까? 하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도, 그곳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 단언할 수도 없다. 그러나 갖가지 비슷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몽골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각자의 이유를 마침내 찾아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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