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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성조 Aug 20. 2024

몽골 2일 차(2). 몽골의 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아마 기억이겠지?

 

 삼겹살 파티까지 무사히 마친 차강 소브라가의 밤. 40도짜리 미지근한 보드카를 잔뜩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밤. 유목민 게르에 동그란 바닥 모양을 비잉 둘러 놓인 6개의 침대에, 침낭을 둘둘 만 채로 우리는 나란히 누워 있었다. 랜턴도 다 꺼버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유는 저마다 달라도, 지금 아무도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걸.


 정적과 어둠 속에서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는 건 아무래도 아쉬웠다. 몽골의 밤은 침대의 중력을 이겨내고도 남는다. 자극적인 음료에 설탕 한 스푼 넣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깨끗한 물 한잔에 시럽 한 방울만 더해도 단 맛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퍼져나가는 것처럼. 바쁜 생활에 무뎌졌던 감각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마디마디 다시 움직이는 느낌이다.


 게르 입구를 찾아 손을 휘저으며 더듬더듬 밖으로 나가자, 갑자기 까만 밤이 시야를 덮쳤다.


 완전한 밤과 고요. 이토록 깨끗한 정적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 건지. 온 세상이 까맣다. 지금껏 흰색이 가장 깨끗한 색이라 생각했는데, 내 눈앞의 까만 하늘과 까만 땅과 온통 까만 세상이 너무 깨끗해서 놀랍다. 은은한 보름달을 한 줄기 조명 삼은 완전한 흑색 세상에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하다.


 지평선이 보이지도 않는 들판 위로 꽉 찬 하늘이 보인다. 하늘에는 간간히 별이 박혀있다. 보름달이 뜨는 시기에 출국을 하게 되어서 별이 잘 안보일 거라 아쉬워했는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예쁘다. 하늘을 잘 보고 싶어서 돗자리를 깔고 그냥 누워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에 그저 존재하는 생경한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마치 거대한 우주 속에 혼자 있는 것처럼. 내가 한국에서 지난주에 뭘 했는지가 슬슬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그 어떤 고민이라도 여기서만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잠시 모두 다 안녕이다.


 한참 동안 정적을 함께 즐기다 잔나비 음악을 틀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노래들이 낭만의 절정을 하나하나 찍어냈다. 누군가는 인공적인 감성 감미료라 손사래를 친다 하더라도, 그래도 좋았다.


 느껴졌다.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것은 볼품없지만'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까만 하늘과 아무것도 없는 까만 들판 위에 드러누워 있는 아주 조그만 우리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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