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3:37

[Monologue] D-5

by 서치호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서는 도통 다시 잠이 오질 않는다. 요즘엔 이런 날들이 하루 이틀 늘어가는 느낌이다. 몇 년 전 하나 같이 투덜대던 형들의 말대로, 이 나이 대 남자들이 대개 그런 모양이다. 그래도 평소 같았으면, 억지로 눈 질끈 감고 잠을 청해 보았을 테고, 그러다 결국 두 어시간을 뒤척거리기만 하다가 출근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기 2~3분 전에서야 마지못해 일어나, 깊은 잠을 자지 못해 축 쳐진 몸을 질질 끌고 출근을 준비했을 텐데,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깜깜한 방 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결국 몇 년 동안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 하나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나만의 이야기로 글을 써 내려가 보는 일. 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들 중 하나다.

2022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두 달이 거의 가고 있다. 매년 이맘때를 지날 때면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6분의 1에 흘러갔다는 생각. 이 정도 시간을 다섯 번만 더 흘려보내면 올해도 순식간에 지나가겠다는 현타.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시계의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져 버렸다. 무얼 해보기도 전에 빠르게만 흘러가는 시간이다. 이렇게 기다리지 않는 시간 위에 살면서 작년과 다름없는 올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이야말로 내 안 깊숙한 곳에 마음먹었던 일들 중 하나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시기이며, 개인적으로 올해 펼쳐질 다이내믹한 일들이 꿈틀대기 직전의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전에 저절로 떠진 눈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운명이라 확신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디에 글을 쓰는 것이 좋을까. 잠시 망설이다가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얼핏 들었던 브런치 작가가 생각났다. 마음을 정하니 이불을 걷어 몸을 일으키기가 한결 가벼웠고 익숙한 일인 듯 그다음의 소소한 일들을 척척 진행해나가는 나 자신이 놀라웠다. 가족들이 모두 자고 있는 이른 새벽이라 작동할 때 시끄러운 네스프레소 기계는 플러그 채 뽑아 들고 방으로 가져와 커피를 내린다. 그다음엔 5년 전 아내의 회사에서 선물 받은 하얀색 gram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적당히 빈티지 한 노트북이라서 자세가 나온다.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주제에 글은 노트북으로 써야 제맛이라며 잠시 잠깐 제멋에 취해 으쓱대는 스스로가 머쓱하여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나서야 인터넷을 열어 드디어 브런치 사이트에 접속한다. 언젠가는 '글' 이란 것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으면서 내 머릿속은 은연중에 디테일마저 다 짜 놓은 모양이다. 응큼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가만 보자. 내가 마지막으로 글을 써 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심지어 어릴 적 학교에서는 방학숙제로 제출했던 독후감이라던지 억지로 끌려나갔던 자그마한 백일장 대회에서 조차 입상해본 적 한 번 없던 나다. 글쓰기에서 칭찬을 들어본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렇게 잠깐을 망설이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이 무작정 글쓰기 버튼을 눌러본다...

이윽고 순백색의 포근한 호텔 이불 같은 느낌의 페이지가 열렸고, '이른 새벽, 글쓰기 딱 좋은 시간이네요...'라는 감성 충만한 문구가 나를 반긴다. 왠지 모르게 시작이 좋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곧 시작될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만 같은 삶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 위함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나의 고군분투 육아일기를..

다음 주면 나는 육아휴직을 시작한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이때의 내 감정을 최대한 담아 표현해 보았다.
낯선 도전 앞에서 망설여진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시작해보는 도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