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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한 육아휴직은 1년. 시작은 2022년 2월 21일.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이다.
오늘은 2022년 2월 17일 목요일, 육아휴직 전의 마지막 출근일이다. 내일이면 내 육아휴직의 주인공인 첫째 아들 준이가 유치원에서 졸업식을 한다. 준이를 위해서 육아휴직도 하는 마당에 유치원 졸업식마저 챙기고 싶었고, 그런 이유로 휴직의 바로 앞에 연차를 붙여 사용했다. 그리하여 사실상 오늘은 앞으로 일 년이라는 긴 휴직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지막 출근일이 되었다.
눈을 뜨자 왠지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에 마음이 차분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휴직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보통의 내 나이 또래들이 그래 왔을진대,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온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에서는 휴직은커녕 요즘에는 흔하디 흔한 월차조차 사용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테고, 대한민국의 직장문화에도 아직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게 낯설다 못해 거북스럽기까지 느껴질 수 있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무릇 한국인이란 자고로 초등학교 6년 개근이 미덕이었고, 지각이란 용서가 어려운 태만의 상징이며, 매일을 규칙적으로 따박따박 출근하는 것이 직장인의 참된 자세라는 정서를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녔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가장이라면 그 막중한 책임감에 이 같은 정서는 더욱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세월이 흘러 그러했던 정서는 희석되었고, 실제로도 소이 몸빵 하듯 조직에 얼마나 희생하고 나를 갖다 바치느냐 보다는 업무의 효율성이나 성과 등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지만, 내가 엄연한 내 역할이 있는 조직의 한 자리를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비워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 조차도 감히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아내의 권유에서였다. 나와 동갑인 아내는 나보다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였고, 지금도 HR 조직에서 근무하면서 전문가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차곡차곡 Career 를 쌓아가는 전문 여성이다. 아내는 자신의 Career 에 진심인 데다 남녀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나와 아내는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고 가정을 꾸려오면서 동시에 저마다의 직장에서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으며 괜찮은 경력을 쌓고 있는 직장인이다. 우리 가족에 아이라는 소중한 선물이 찾아올 때마다, 번번이 아내는 여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임신과 출산이라는 숭고한? 과정에 자신의 Career 를 양보해야만 했다. 게다가 우리 아이의 심리적 안정과 건강한 양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며 갓난아이의 세상 적응에 전적으로 기여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엄마로서 당연하다 여겨졌던 아내의 선택이 지금의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새삼 아내에게 감사하다. 그렇게 육아휴직까지 마친 아내가 회사에 복직한 뒤로는 주로 장모님과 개인 사업을 하시는 장인어른께서 우리 아이들의 양육에 큰 도움을 주셨다. 우리 장모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부모의 역할로서도 이미 세 딸을 낳고 키워내신 장본인이시다. 그런 딸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였고 이제는 모두 독립시켜 이제 좀 편안한 노후를 즐기시려던 참이셨는데 난데없이 손자를 하나 둘 도맡아 다름 아닌 황혼육아로 바통터치가 되어버렸으니 평안을 기대했던 노후마저 빼앗겨 버리시게 된 것이다. 자녀 육아에 도움을 부탁드리고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장모님께서는 차츰 지쳐가셨고, 끝내 백기를 들고 나오신 장모님의 제안으로 재작년부터는 조금은 멀리 떨어져 살고 계셨던 나의 본가 부모님들마저 소환되셔서 그분들 역시 두 팔 걷어붙이고 육아를 분담해주시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장모님 말씀을 빌리자면 육아는 전쟁이란다. 게다가 체력도 체력이지만 시간을 전적으로 쏟아부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육아를 하면서 뭔가 다른 걸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양가 부모님께는, 특히 처가댁 부모님께는 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달리 방법도 없었기에 눈치가 보였지만 그래도 또다시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아내와 나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즈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은 유치원생보다 귀가시간이 이르다. 그리고 학교마다 대동소이하겠지만 초등학생은 요일마다 하교시간도 달라서 하교 이후의 일정도 그에 맞춰 잘 짜 놓아야 한다. 한마디로 아침에 등원시키고 오후 늦게 하원한 아이를 돌보는 유치원 시절보다 그만큼 신경 쓸 일도 손도 많이 간다. 이런 시기의 시작부터, 그동안 영유아기 시절의 헌신으로 충분히 지치셨고 그래 왔던 시간만큼 조금은 더 연로해지신 부모님들께 다시금 도움을 청할 수는 없었다. 부모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기에는 부모가 아이의 적응을 위해 옆에서 함께해주고 아이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패턴을 잡는데 함께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정서적 신체적 기초를 탄탄히 하는데 부모의 시간을 할애해 주는 게 당연했다. 플러스, 지금껏 양육에 큰 도움 주신 부모님들께 더 이상 죄스럽고 싶지 않았고 그분들의 체력을 회복하는 시간을 드리고 싶었던 부분도 크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아내가 권유한 아빠의 육아휴직에 나는 공감을 했고, 나 또한 아버지로서 자녀 양육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자 아내의 제안에 동의하여 이번 육아휴직 프로젝트가 성사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육아휴직이 이제 곧 시작되며 오늘은 그 프로젝트에 앞선 일상으로서의 마지막 날로써 출근하는 의미가 남다른 날이었다. 직장인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오늘 같은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업무에 집중하기가 가능할 리 없었다. 이를 예상하여 지난 한 달여 동안에는 전보다 두 배는 바쁘게 일하며, 인수인계 차원에서 나의 직무에 대한 Manual 을 마련하였고 업무 공백을 메워줄 Backfill 을 채워왔고 내 업무에 있어 미진한 것들과 향후 몇 개월간 도래할 일들까지 대부분 완수해두었다. 없는 일정을 쥐어짜 내어 매진한 결과 그 모든 일이 휴직에 임박한 지금, 완수되었고 오늘은 사람들과 인사나 나누며 정리 정돈 및 마무리로 시간을 보낼 작정이다.
그동안 업무를 도와준 사람들과 식사를 했고 친했던 동료들과 차나 음료를 마시며 앞으로의 계획과 육아휴직의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리를 정리하는데 지난 10년간 차곡히 쌓인 데이터들이 보였고 항상 자리를 지켜왔었지만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모를 개인 물품들이 뽀얗게 싸인 먼지 아래로 하나 둘 보일 때마다 반가운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싹 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마치 퇴직이라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하고 홀가분할 줄만 알았는데 어딘가 무겁게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가 거의 다 갔고 나는 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회사를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적을 잃은 사람처럼 상실감과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기뻐야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나를 집어삼킨 건 슬픔이었다. 길어야 이십 년 후면 있을 은퇴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무언가 달라져야 하겠다는 막연한 다짐을 하게 된 순간이다. 값진 경험이었다.
어쨌는 나는 내일부터 당분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