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의 첫 번 째 졸업식.

D-3

by 서치호

드디어 첫 째 준이의 생애 첫 번 째 졸업식이다. 서사적으로 보자면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있던 기간 동안에는 행여나 무엇 하나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매사 노심초사 조마조마하였고, 출산하여 갓난아기였던 시절에는 우리 두 부부 모두 극적으로 부족한 수면량에 다크서클이 항상 입가까지 내려와 있었던 것 같다. 아내의 육아휴직 이후부터는 대개 가까이에 살고 계시던 처가 장인 장모님께 기대어 우리 부부의 출근 이후부터 퇴근 전까지 아이들의 등 하원이며 간식 챙기기와 같은 사소한 일들까지 대부분의 양육을 부탁드렸는데, 사실 어른들께서 젊지 않으신 연세에 혈기왕성한 사내아이 둘을 도맡아 키워주신 다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종종 번 아웃되시기도 하고, 시간이 갈수록 당연히 지쳐가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고 죄송스러웠던지. 그렇게 악으로 눈치로 두 아들을 키워온 시간이 켜켜이 쌓여 어느덧 7년을 가득 채웠다. 남자들이 군에 입대하고 훈련병 시절을 지나 자대에 배치되면, 짓궂은 선임병들이 놀려준답시고 이등병을 앞에 세워두고는 시절 남은 군생활을 헤아려보게 하곤 한다. 주로 꽉 움켜쥔 주먹을 들여다보게 하면서 뭐가 보이냐 묻곤 하는데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니 남은 군생활이라면서 키득거리고 좋아하던 선임들 기억이 떠오른다. 20대 성인 남성의 수준 하고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20대인 그때나 40대에 접어든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놀기 좋아하고 농담 좋아하고, 남자들이란 도무지 철이 들지 않는 존재들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육아를 시작하면서 언제쯤이나 되어야 이 희생의 시간이 끝날 런지 막막해하던 그때 그 기분이나, 남은 군생활을 헤아려보던 그 시절 이등병의 마음이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안을 들여다보던 느낌은 서로 흡사했던 것 같다. 언제쯤이 되어야 이 개미지옥 같은 육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졸업이라니.. 사람이 참 간사한 게 이쯤 되어 뒤돌아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던 그 시간들 조차 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당연히 힘들다. 인생을 다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보통의 인생에서라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고된 일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래서 힘들었던 점만 서술하여 부각된 것 같지만, 사실 양육하는 부모라면 내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과 보람, 기쁨과 행복은 당연히 말하지 않더라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며 무엇과 견주어 보더라도 항상 비교우위에 있는 가치가 아닌가. 앞서 개미지옥이니 뭐니 힘든 부분만 언급하였지만, 사실 아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바로 아이들이며 양육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힘겨움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것도 바로 아이들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면서 혹시 모를 오해를 차단하고 싶다.

서강준 졸업식.jpg 요즘은 유치원 졸업사진이 기대 이상이다. 아무튼 벌써 졸업이라니 사진이 이래서인지 준이의 모습이 늠름하기만 하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워놓은 첫 째 아들 준이의 생애 첫 번 째 졸업식이라니 감격스러움과 성취감, 대견함 등등의 감정이 교차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살짝 반전도 있다. 오늘이 준이의 졸업식이라는 것을 어제 아내가 알려줘서 알았다는 것. "진짜? 오늘이 졸업식이었어?"라고 되물었더니 한 참 전에 이야기해줬지 않느냐며 일정에 좀 챙겨줬었더라면 더 좋았었겠다고 아쉬워한다. 사실 오늘 아빠는 육아휴직 전에 마지막 회포를 풀기 위해 동료 선후배들과 단체로 금요일 휴가를 낸 것이고 점심 식사 후에는 네 시간 동안 실컷 테니스를 친 뒤, 일종의 격려 파티라고나 할 수 있을 술자리를 이어갖기로 한 것. 약속도 다 잡았고 예약도 모두 해 놨는데 아내의 졸업식 이야기에 하늘이 노래졌고,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거기서 또 눈치 없게 "나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이라 휴가 쓰고 테니스 칠 건데.."라는 얘기로 아내에게 받아쳤다가 된통 혼나기만 하고 건진 건 일도 없이 등짝 스매싱만 덤으로 챙겼다. 엄마는 역시나 엄마고 아빠는 역시나 아빠 일 수밖에 없음을 몸소 증명한 순간이다. 육아에 있어서의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굳이 구분하려는 것도 아니고, 세상 모든 아빠를 엄마보다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존재라고 일반화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경험상 아직까지 아이들 케어에 있어서 하나라도 더 신경 쓰는 쪽이나 A부터 Z까지 꼼꼼히 챙기는 쪽은 대부분 아빠보다는 엄마 쪽인 것 같다는 사견이다. 아빠 DNA 와 엄마 DNA 의 차이 때문일 수도 사회구조적인 후천적 이유에서 만들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아이의 졸업식을 기억하지 못한 이유가 딱히 신경 쓰기 귀찮아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의 중요한 회의 일정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그런 경우였다면 일정이 잡힌 즉시 알람이라도 맞춰놓았을 텐데 아내가 준이의 졸업실 일정을 이야기해주었을 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2월 18일에 준이 유치원 졸업식 해"라는 아내의 정보전달에 "아 그래?! 드디어 졸업이구나." 하고 대답한 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보자면, '아내가 있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아마 다시 한번 일깨워주거나, 같이 가자고 하겠지. 그것도 아니면 본인만 혹은 나만 다녀오라는 등의 후속 명령이 있겠지.'라는 생각에 당장에 필요한 걸 하지 않았다. 육아에 있어서는 지극히 수동적이었던 것이고 일단 엄마가 '정', 아빠는 '부'라고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마치 혼자서만 뚜렷하게 역할을 지정해 둔 것만 같았다. 또 다른 부분을 생각해보니 나는 특별히 유치원 졸업식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아예 중요한 이벤트의 카테고리에 분류해놓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은 나 자체가 유치원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심지어 졸업식은 전혀 생각조차 나질 않는다. 솔직히 그때는 졸업식의 의미가 무언지도 잘 몰랐었던 것 같다. 몇 년간 같이 생활해 온 아이들 중 일부는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것. 몇 년간 나를 가르쳐주고 지도해주시고 돌봐주셨던 선생님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정을 기억하는 마지막 의식이 졸업식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서 이제 겨우 8세에 접어든 꼬마가 이해하고 있을 리 만무하다. 아내가 내게 물었다. "호치는 호치 유치원 때 기억나?" 내가 답했다. "아니 전혀." 그러자 아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유치원 졸업식이 기억나. 한복 입고 꽃다발 받고 사진 찍고 엄마 손잡고 시장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던 장면이 기억나."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도 단 한 장면 가끔씩 떠오르는 유치원 시절의 유일한 기억이 있다. 노란색 원복을 입고 있었는데 철제 울타리 사이로는 건물에서 정원으로 내려오는 미끄럼틀이 보인다. 그 담벼락 바깥을 엄마의 손을 붙잡고 나 역시 시장통을 걸어 올라가는 장면이다.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실제 있었던 장면이 머릿속에 정확히 저장되어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저렇든 아주 오래되고 빛바랜 기억이 있기는 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인생의 어떤 사건 하나하나를 대하는 가치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나 아빠에 상관없이 어쩌면 본인의 기억에 고이 간직되어있느냐 아니면 가물가물하여 임팩트 없이 스치듯 걸쳐있는 기억이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엄마들이 대부분 아빠보다 장기기억에 대한 능력이 우수해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유치원의 시절을 소중히 간직하는데 대부분의 아빠에겐 유치원의 기억이 없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여러분에게 유치원 졸업식은 어떤 의미로 남았으며, 어릴 적 어떤 소중한 기억이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Retro Kangmin.jpg 막내 민이의 어린이집 수료기념 Retro Concept 사진 : 꼬꼬마 시절의 졸업을 회상하던 와중에 때마침 오늘 수료한 막내 민이 어린이집 수료 사진이 익살맞고 재미있어 공유한다

어쨌든 결국 나는 코로나19 사태로 Zum 으로 진행된 유치원 졸업식을 아내와 집에서 나란히 앉아서 지켜보았고, 졸업식을 마치고는 확산속도가 심각하게 거세진 전염병을 피해 외식보다는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기로 하였다. 무얼 먹고 싶냐는 아빠의 질문에 돌아온 8세 아들의 대답에 어이가 없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육개장!!!" 8세 남아가 유치원 졸업식 직후에 가장 구미 당기는 음식이 다름 아닌 육개장이라니 비범한 아이다. 어쨌든 생각보다 간단한 아이의 주문에 후다닥 식사를 해치우고 난 뒤 나는 계획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서둘러 나가 결국 사람들과 마음껏 테니스를 쳤고 이어진 격려파티에서 잠시 동안의 이별의 회포도 풀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엄마이고 아빠는 아빠인 게 틀림없다.

아들 졸업식은 뒷전이고 본인 노는게 우선인 철없는 아빠 (우) : 물론 2월 현재의 사진은 아니고 지난 여름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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