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글재주, 아니 글재주랄 것도 없이 운좋게 카카오브런치에 등단한지 어느 덧 3년이 다 되어간다. 너도 나도 경쟁적으로 책을 출간해대는 세태에 편승하여 까짓거 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이라는 걸 써보고 싶다는 얄팍한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사실임을 고백한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읽고 쓸 줄 아는 한글. 그 언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자기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맛있게 써내려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커다란 오산이었다. 일기장 쓰듯이 하루에 한 페이지씩 써내려가다보면 일년이면 300 페이지 이상이 모일테고 그럼 책 한 권 분량은 나오겠거니 했으나 처음 며칠 동 안 에세이 몇 편을 시도해보니 글이란 것이 쓰면 쓸 수록 점점 더 어려운 것이었다. 맛깔나는 문장은 커녕 몇 번을 쓰고 지워봐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완성되었다고 생각된 글 조차 다시 읽어보니 낯부끄러울 만큼 유치한 문장력에 차마 게시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좌절이 반복되다보니 이윽고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는 것, 그 행위가 마치 천근만근의 추를 허리 춤에 매달고 앞으로 걸어나아가는 일 만큼의 질량감으로 다가왔고, 결국 나는 얼마가지 못하여 창작의 쓰디 쓴 고통에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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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 년의 시간동안은 글을 쓸 용기 조차 내지 못했는데 간혹 마음이 동하여 몇 자 써내려가나 싶다가도 좌절하게 되었고, 또 몇 자 써내려가다 지운 글들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그나마 내 작가의 서랍이란 페이지에는 지금도 습작 몇 편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그 조차도 도저히 포스팅 할 용기를 내지 못할 정도의 처참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방금 발견한 터다.
이제와서 글쓰기를 다시 해보겠다 마음먹게 된 건 단순히 새해가 밝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대개 새해가 되면 밀렸던 일들을 곱씹어보며 다시 해보자며 마음을 다잡고는 하는데, 내 경우에는 이번 만큼은 아니다. 그냥 몇 주 전부터 마음 속에 글을 쓰고싶다는 마음이 움트곤 하였고, 나의 브런치 계정이 자꾸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다시 꺼내야지, 꺼내어 봐야지 했던 생각들이 밀린 숙제처럼 켜켜이 쌓여 이제야 막 Threshold 를 넘었고 그 시점이 그저 새해의 첫 주였던 것 뿐이다.
2024년은 개인적으로 레인지가 무척이나 컷 던 한 해였다. 그나마 연초에는 육아휴직 동안에 도전해 보았던 사업을 잘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고 - 마음먹었던 대로 잘 되지많은 않았던 사업을 모나지 않게 잘 정리한 정도. 순조로웠던 복직 후에는 평소에 꼭 해보고 싶어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던 부서로의 직무전환도 잘 이루어냈다. 그곳에서 잘 적응하며 재밌게 업무도 잘 하며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는데, 일 년의 마무리가 안좋았다. 개인적 사건도 좀 있었고, 국가적으로 계엄과 줄탄핵 그리고 가슴아픈 재난까지.. 트라우마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2024년이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질려버렸고 서둘러 마음을 다잡아 상징적인 출발을 하고 싶었다. 아니 무언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2024년만 지나가면 어떻게든 해결되리라고 막연한 기대만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다려왔던 2025년 새해가 드디어 밝았고 출발이 순조로워 보인다. 막내 아들과 뒷산 산책을 하다가 아이가 숲 안쪽에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누군가 잃어버린 휴대폰을 발견하였고, 그걸 주워가지고 내려와 주인을 찾아주었다. 안좋은 뉴스로 가득한 이 시기에 사소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사회에 온기를 더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참 좋았다.
2025년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한 해가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미신이나 운세를 믿는건 전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촉은 좋다고 생각한다. 힘든 2024년을 겪었으니 2025년은 그보다 더 힘들리 없다. 아니 이제 반등할 때이고 좋은 일들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 You deserve it!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회사가 해왔던 업무 방식을 완전히 뒤엎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업무의 대 전환을 이루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써 Virtual Process 가 대두되었고 이는 우리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큰 비중을 차지할 예정인데 그 업무의 한 축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조직 내에서는 아무도 해본 사람이 없고, 이를 우리 Process 에 반영하려는 시도 또한 처음인지라 현재는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으로 가득한 상황이다. 시작은 해야하는데 그 누구도 대체 이걸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조차 막막해하는 상황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신체 기능의 엄청난 저하를 실감하고 있다. 운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의 건강을 목표를 설계하고 지수를 높이기 위해서 시작한 조깅이나 Weight Training 이 오히려 나에게 칼 끝을 겨누는 꼴이 될 때가 많았다. 평소 늘 뛰던 10 km 코스를 어제 신었던 신발을 신고 똑같이 뛰었음에도, 이렇다 할 사건도 없이, 뛰고 났더니 괜히 발등 네번째 발가락 줄기를 따라가는 힘줄 부위가 시끈거렸다. 자고 일어났더니 이윽고 그 발등이 퉁퉁 붓기까지 했다. 나이먹으면 서럽다는 말을 실감했다. 내 몸상태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어른들이 괜히 그런 말씀을 하셨던게 아닌가보다 싶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통풍같아 보인다고 하였다. 본인의 경험담에서 나온 말이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어보았고, 내과에서 피검사도 해보았다. 처방해 준 약을 먹었더니 금새 가라앉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2~3주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약을 먹으면 금새 가라앉았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 무리하지 않는 생활을 하여도 2~3주가 지나면 재차 통증과 붓기가 시작되고는 했다. 어떤 의사는 통풍이 아니라고 했다가도 같은 의사가 또다른 어느 날에는 통풍같아 보인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증상에 대한 진단이 의사마다 달랐고, 같은 의사가 내린 진단 조차 때마다 달랐다. 결국 중대형 병원에 방문하여 MRI 까지 찍게 되었고, MRI 상에는 건막에 염증이 퍼져있다는 것을 영상자료로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통풍같아 보인다고 하였다. 1주일 치 약을 처방해주고 1주일 후에 다시 오란다. 다 먹고 1주일 후 방문했는데 피검사 수치로는 요산수치가 7.3으로 통풍의 기준치인 8.0 보다 낮으니 통풍은 다행히 아니라고 한다. 건막염으로 보여진다고 하였다. 매번 달라지는 진단에 신뢰가 가지는 안갔지만 그래도 MRI 까지 찍고나서 얻어낸 결과이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였다. 내 입장에서도 식단 조절이 까다로운, 게다가 술도 못 먹게 되는 통풍은 절대로 앓아서는 안될 질병이었는데 의사가 일단 통풍은 아니라고 하였으니 그 말이 사실이어야만 했다. 지금으로써는 다행인 결과다. 그 후로 이제 3주가 지나가는데 아직까지 별 탈없는 것 보니 그 동안 10일 넘게 복용한 약으로 염증을 완전히 없앤 것으로 보여진다. 보통 나는 여간해서는 양약에 의존하지 않는 성격이다. 이번 건도 통증만 없어지면 약을 멈추었으니 속으로 잔재해있던 염증이 도지고 또 도져서 2~3주 간격으로 통증이 재발한 것으로 판단된다. 작년 말 통풍으로 무거웠던 마음이 올해가 되면서 그 통풍이란 몹쓸 질병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만으로도 나의 2025년 출발이 순조롭다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무엇보다 요즘의 내 마음을 누르는 것은 다름아닌 나의 인생에 있다. 내 나이 만으로 42. 인생의 절반 쯤 왔을터인데 아직 아무것도 뚜렷하게 이룬 것이 없다는 허무함과 조바심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운좋게 삶이 잘 풀려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대충 살았던 적은 없었다. 꽤나 노력했고, 무엇보다 인생을 즐기려고 했다. 행복한 일들은 즐기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Challenging 한 것들이나 대입, 취업과 같이 어느정도 운이 필요한 운명적 시련을 겪어내는 과정 또한 이또한 지나가리라. 지난 뒤에 되돌아 보았을 때 후회되지 않도록 즐기며 돌파해보자 라는 식으로 즐겨왔다. 돌이켜보니 삶이란 내가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로써 오롯이 내 역량으로 얻어낸 결과라기 보다는 살아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는 말과 같이, 성적 순이든 근면함 또는 성실성이든 우리가 성공하기위해 우선해야한다고 믿는 그 척도의 순서대로 행복한 삶 또는 부유한 성공의 삶의 순서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겠다.
나는 하나님은, 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기독교인 또는 천주교인은 아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해석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힌다. 삶이란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수로 가득해서 절대로 개인이 계획한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길게 보고 설계하여 계획대로 이루어내려는 자세란 것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내 인생의 주도권은 대개 그런식으로 쥐어지지 않는다. 성공하는 삶을 위한 방법을 곰곰히 떠올려보니 삶이란 어쩌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수 많은 선택지들 가운데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탁월함과 느닷없이 찾아오는 어떤 운명에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 능력이 더욱 우선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바꿔말하면 인생을 너무 세밀하게 계획하고 치밀하게 실천해 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떤 계획을 어떻게 세웠든지간에 어차피 삶이란 그럴게 흘러갈리 없을테니까. 다만 언제 어떻게 들이닥칠지 모를 이벤트가 기회인지 위기인지를 잘 판단할 수 있는 안목과 그 이벤트를 기회로 취하여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많은 경우에 이것은 예 또는 아니오의 선택이 아닌 꽤 복잡한 함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며, 많은 선택지 중에 Best Option 을 고르는 것 조차 그 옵선이 최선이 될 지, 최악이 될 지는 타이밍에 따라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변수를 타이밍이라고 했지만, 하나의 예일 뿐, 그 변수는 무궁무진하겠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의 입장 역시 답이나 조언을 제공해 줄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논지를 펼쳤으니 정리를 해보자면 결국엔 늘 원론적인 입장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가 개인의 인생을 살고 있고, 처한 현실도 상황도 저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나름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천태만상의 가지나무 어딘가에 존재해있을 삶의 주체로서 의존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본인 뿐이다. 이 시대를 함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당신들에게 동인으로서의 나는 결국 이말 한 마디의 위로와 용기를 건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대 인생의 주인공은 당신이라고.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대가 취한 모든 선택은, 그대의 상황을 제일 잘 알고있는 그대가 결정한 것이라는 것 그 자체로 의미있었고 분명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의심치말라고. 그리고..
이 부분부터는 나의 현실과 나란하다. 앞으로의 나의 결정은 그 선택 뒤에 어떠한 후회도 남아있지 않도록 조금 더 용기를 내어보고자 한다. 인간은 시간차원 위에 살고 있으므로 동타임에 놓여진 여러 선택지 중에서 내가 결정한 선택에 의한 삶은, 내가 만약 다른 선택지를 골랐을 경우의 삶과 절대로 비교가 불가능하다. 결국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지 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기에 늘 조금이라도 안정적인, 또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까? 이것이 내 논지의 출발점이었다. 결국 내가 내 앞에 놓여진 어떤 선택을 하던지간에 그 선택은 유일무이한 선택일 것이고 그 결과로써의 인생은 필연적으로 최선의 삶인 것이다. 차선이나 최악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본인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본인들이 내린 선택에 의심을 품으면, 선택을 기점으로 쭈욱 쭉 뻗어나아가야 할 패기가 멈칫하며 주춤하게 되고 머뭇거리는 순간들이 최선이라는 가치에 흠집을 내게 된다.
결국 우리는 본인들의 행복과 어떤 의미에서 성공적인 삶을 위하여 본인의 내면과 마주하여 자신있고 떳떳한 선택을 함으로써 뒤로는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하겠고, 일단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최대의 노력으로 죽을힘을 다해 내달려야 하겠다.
나역시 지금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올듯 말듯한 어떠한 기회 앞에서 준비되어있지 않은채 조금은 불안한 상태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고 기회를 거머쥐기로 결정했다는 것. 불안요소라면 그것이 기회가 될지 패착이 될지 나의 노력여하를 떠나 불가항력적인 외부환경에 어떻게 뒤집힐 지 모를 운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고 이왕이면 해내고자 한다.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딨냐는 옛날 어떤 회장님의 가치관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새해가 밝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고 글쓰기는 나의 불안을 가라앉혀 주면서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준다. 글쓰기는 이런 내게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썰을 풀어놓으니 스스로 위로를 받는 느낌도 든다. 오늘은 오랜만에 구석 장에 밀어 둔 기타나 꺼내어 튕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