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by 서치호

조직에 복귀한 지 3주 정도가 지나고 있다.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의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Pros와 Cons 가 피부로 와닿는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변화로는 신체 건강의 신호가 있다. 직장생활을 하던 이 가 매일 아침 따박따박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패턴을 멈추게 되면 건강에 이상신호가 온다. 옛날 웃어른들이 나중에 은퇴해서 할게 없어지면 금방 늙고 기력이 떨어진다는 그 말이 그냥 기분 탓만은 아님이 틀림없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개시한 첫날부터 그동안 못 잤던 늦잠이나 당분간 실컷 자겠다며 아이 유치원 등원준비의 마지노선인 아침 8시에 맞추어 가까스로 눈을 뜨던 습관을 끝내 고치지 못하고 2년을 이어왔다. 정말이지 단 하루도 별다른 이유 없이 8시 전에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니 그 조차도 버거워서 8시 전에는 내 의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늘어지게 긴 잠을 잤음에도 아침이 개운하지 못하고 오후가 되면 졸리기 일쑤였는데 정말이지 이렇게 하루 종일 피로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직장인에게 만성피로란 영혼의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는 그동안 만성피로의 탓을 애먼 회사생활에 돌리려고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실제 수면의 양이 대폭 늘어났으면 어딘가 몸이 좋아져야 할 텐데 내 몸은 어디에 그 수면의 결과 에너지나 양분을 저장했을까. 안타깝게도 수면의 양의 대가로 받은 이로움이 어디에 저장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고 다만 직장에 복귀한 지금의 내가 예전의 생활 패턴을 재개하고 보니 체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만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나이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여전히 잠이 부족했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예전보다 더 혹독한 일이 되었다. 어제저녁에 세수를 하다 보니 입술 근처에 헤르페스가 돋아 난 것을 발견하였다. 육아휴직을 했던 2년 동안 게으른 생활 패턴을 몸에 적응시킨 결과로써 나의 체력과 면역력을 많이도 깎아내린 모양이다.

지난 2년 동안 따듯한 집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면서도 내내 그리웠던 회사의 서비스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구내식당.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구내식당 밥을 나의 소중한 양식으로 대해준 적 없었다. 허구한 날 짬밥이네 개밥이네 해대며 갖은 모욕을 퍼부었던 나 자신이 염치없게 느껴졌다. 구내식당 식사가 아쉽다고 느껴졌던 것은 거슬러 올라가 COVID-19로 인하여 재택근무가 도입되었던 초기부터였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와 같은 형태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으로 내려가 줄 서서 밥을 타고 음식을 후다닥 흡입한 뒤 사용한 식기들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네 사람들이 회사를 출근하지 않게 되면, 매일같이 돌아오는 점심시간이 여간 고달픈 게 아니다. 오늘은 뭐 먹지로 시작해서 준비되어 있는 반찬이건, 아니면 냉장고에 먹다 남은 음식을 데워 먹는 상황이건 일단은 내가 식사를 준비해서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끝내노라면 한 시간쯤 걸리니,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걸 매일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국 육아휴직을 하면서 나는 아침은 거의 먹지 않았다. 점심도 누구를 만나서 함께 식사하는 상황이 있지 않으면 이 또한 거르기 일쑤였다. 간혹 배가 너무 고픈날이나 해장이 필요한 날에는 적당한 한 끼를 사 먹는 것이 전부였다. 패턴이 이렇다 보니 거의 하루 한 끼 식사가 익숙해졌고 이는 건강에 이로울 리 없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자신이 이렇게나 나태하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까발려도 되나 싶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본인이 게으른 걸 직장생활의 장점이네 단점이네, 육아휴직의 장점이네 단점이 네로 결부 짓다니 이런 자기 합리화도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끄적거리는 이유는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자기 개발서에서 말하길,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나 열심히 살았고 노력했고 이루었으니 '그러니까 당신도 그렇게 살아'를 이야기하는데 듣자니 짜증 나고 슬슬 염증도 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해 보이는 나 스스로도 사실은 남모르게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삶,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 그리고 많은 이들의 삶 속에는 저마다의 고충이 있고 각자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각자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살아남은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하고 싶다. 어제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오늘을 그저 꾸역꾸역 살아온 것 같다고 느껴질 테지만 그래도 당신이 따박따박 출퇴근했던 당신의 그 발걸음을 통하여 당신은 오늘도 조금은 성장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실제로 성장하지 않았으면 그 또한 어떠하랴, 적어도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버틴 것과 다름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선방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 마저도 못 믿겠다면 당신의 삶의 처지를 바꾸어보아라. 육아휴직이든 뭐든 잠시 회사를 떠나 있을 수 있는 수단을 활용해 보길 바란다. 무엇이든 먼발치에서 떨어져 보아야 그 실체를 확실히 볼 수 있듯이 직장에서 잠시 떨어져 보면 당신도 곧 당신이 출근했던 수많은 하루하루가 의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위 글만 보자면 출퇴근을 통하여 당신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이는 운동과도 같아요. 맛없는 밥이라도 구내식당에서 주는 밥은 이득입니다. 이러면서 회사 다니는 것을 대견해하세요. 당신은 오늘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비난은 자유지만 오해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그 삶의 첫 단계는 출퇴근이다. 각자의 의미를 갖고 그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겠지만 그 같은 삶이 익숙해지고 나면, 무뎌진 마음으로 매일같이 무심코 내딛게 출근길일진대, 알고 보면 그 발걸음조차 사실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이었음을 말해주고 보듬어주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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