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40대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본인의 한 끼를 위해 밥상을 차려본 적이 있습니까?
내 나이도 어느덧 40을 훌쩍 넘은 지금, 모든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오늘도 나의 위치에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며 삶의 방식 또한 각기 다를 지라도 주어진 하루하루 동안 먹고 자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은 대동소이하리라.
보편적인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라면 결혼해서 아이도 한 둘 나아서 가족을 꾸리고 돌보며 가장 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을 듯하다. 물론 다양성이 존중되고 저마다의 개성이 너무도 뚜렷한 오늘을 살아가는 현재의 세대에게 보편적이란 말은 모순이 있을 수 있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워내는 부모의 삶을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에겐 지난 몇 년간 그리고 또 앞으로도 몇 해는 더, 나 보다는 아이를 돌본다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매일같이 습관처럼 준비하는 식탁은 나보다는 결국 아이 또는 가족을 먹이기 위해 차려내는 음식이 아니었는지를.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나선 아침, 텅 빈집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을 과연 나는 혼자 지내는 일상이었더라도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었을까.
올 한 해를 되돌아보니,
전업주부로 살아온 지난 아홉 달 동안 나는 나 혼자 때우는 끼니를 위해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을 서둘러 학교로 또 유치원으로 보내고 나면 어질러진 집을 정신없이 치우기 바빴고, 설거지며 밀린 빨래까지 돌리고 나면 어느덧 점심식사 때가 근처다.
이쯤 되면 매일같이 같은 고민을 따지고 또 따져본다. 뭐라도 해 먹으면 12시고 먹으면 한시 치우면 한 시 반인데 아이들을 데려오는 세 시까지는 잘해야 한 시간 반의 여유뿐이다. 그런데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저녁식사는 또 무엇으로 준비한담? 결국 그 한 시간 반은 마트에 나가 저녁식사 거리를 사 오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하루 종일 힘든 육아와 가사노동에 헌납하다 보면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점심을 차리고 식사하는 시간을 휴식과 개인 개발을 위한 시간으로 맞바꾸고는 했다.
집에 먹다 남은 반찬이라도 있으면 휘뚜루마뚜루 대충 때우기에 감사했고 그조차도 안되면 라면으로 후딱 해치우는 것이 가장 간편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지내다 보니 내 신체의 영양 불균형이 발생한 모양이다. 꼭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고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400이 넘어가버렸다. 건강에는 꽤나 자신 있었는데 나의 건강상태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지난 주말, 본가에서 김장을 담근다고 연락이 왔다. 손을 보태러 간다지만 사실은 궂은일은 늘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서 모두 해 놓으신다. 김장 날이면 그저 절인 배추에 속을 넣고 통에 담는 일 따위면 재미 삼아하다 보면 금세 끝이 난다. 어머니께 힘든 일을 혼자서 다 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씀드려도 어머님들은 고집이 세다.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고생하는 꼴을 절대 못 보신다.
그렇게 얻어온 김장김치를 보면서 우습게도 나는 내 점심식사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녀석들을 점찍어 두었다. 며칠 동안 잘 돌보아 유산균 톡톡 터지는 탄산 김치가 될 즈음 1/4포기쯤 뚝 떼어다 쭉쭉 찢어 밥에 돌돌 싸 먹을 요량이었다.
이윽고 오늘을 나는 결전의 날로 정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내가 출근하고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 서둘러 집안일을 끝내고 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요 며칠간 김장김치가 과연 어느 정도 숙성되었을지 설레었고, 내가 좋아하는 김치 돌돌말이 생각에 군침이 고였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계란후라이 한 장을 부친다. 정말 아무리 곰곰해 생각해보아도 육아휴직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아홉 달 동안 내 점심을 차려먹겠다고 이깟 계란후라이 한 장 부치는 수고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그래서 준비하는 김에 냉동고에 얼려둔 안동 간고등어 한 팩을 꺼내어 그 녀석도 굽기 시작했다. 고등어를 앞뒤로 굽든 동안에 재빨리 본가에서 얻어 온 김장 김칫독을 열어제끼고 배추김치 한 포기를 반으로 가른 뒤 다시 한번 또 반으로 갈랐다. 계획대로 1/4 포기면 충분해 보였다.
김치를 준비한 동안에 간고등어도 먹기 좋게 잘 구워졌다.
김장김치 한쪽에 간고등어 그리고 계란후라이 한 장에 따듯한 밥 한 공기.
누가 보아도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반찬일지도 모르지만, 이번만큼은 감격스럽게도 나만을 위해 내가 차린 첫 번째 점심 한 끼 밥상 차람이 완성되었다.
첫 번째 숟가락은 그동안 벼르고 벼른 김장김치 돌돌말이이다. 빨갛게 버무려진 적당히 넓은 배춧잎 가운데를 쭈욱 갈랐더니 쩌어억~ 하며 신선한 소리가 기분 좋았다. 여기에 밥 한 숟갈 올려 돌돌 말아 입에 넣게 씹는 순간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유산균인지 탄산인지 모를 것이 입안 가득 터졌다. 그동안의 나의 헌신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 김치는 예상보다 훨씬 더 잘 숙성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충분할 만큼.
흐름을 망칠 것 같은 엉뚱한 이야기지만, 이사 오면서 새로 장만한 김치냉장고의 숙성기술이 새삼 놀라울 정도다. 김치 속 탄산이 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당장이라도 반토막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 어머님들을 우리를 그렇게 키워내셨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아서이지 그 옛날을 떠올려보니 정말 그랬다. 자식들에게는 한 끼라도 빠뜨리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그렇게 매 끼니를 따듯한 공깃밥 정성스레 담아주셨고 아무리 없어도 밑반찬 세 가지는 늘 밥상에 올라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작 그녀들은 새로 한 밥은 물리치고 밥솥 옆에 남은 밥 긁어다 모은 투박한 그릇에 담긴 누렇게 식은 밥을 냄비에 남아있는 국이나 찌개 밑동에 아무렇게나 비벼서 부엌에서 선채 드시고는 했던 것 같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같이 먹자고 그런 거 먹지 말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당최 들으시질 않았다. 그 또한 역시나 생각해보면 책임지지 못할 말이었다. 찬밥이며 남은 반찬 내가 먹으려면 또 얼마든지 먹겠지마는 어머님들 입장에서 버릴 수도 없는 그깟 잔반 조차도 누군가 처리해야 할 천덕꾸러기였고 그걸 당신들의 끼니로 대충 때우시면서 또 그렇게 그녀들의 자투리 시간으로 환원해내셨나 보다.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존경하는 나의 또래들이여.
자식과 배우자를 위한 헌신도 좋지만 가족을 사랑하듯이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도 생각해 볼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매번은 아닐지라도 때로는 나를 위한 따듯한 밥 한 끼 차려 나에게 대접하는 선물을 해보는 건 어떤지 조심스럽게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