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표

육아휴직의 절반쯤 흘려보낸 뒤에..

by 서치호

매일 따박따박 출근하던 회사 사무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끊은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금세 육 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말 그대로 시간이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 버린 것 같아서 어찌 보면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하루 여덟 시간, 점심시간까지 치자면 꼬박 아홉 시간을 회사에 묶여있고 그마저도 출퇴근에 각각 한 시간씩을 소비하고 보니, 소중한 나의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잠자는 여서 일곱 시간을 제하면 거의 활동이 가능한 시간의 삼분의 이 정도를 직장에 매여있는 셈이다. 처지가 그렇다 보니 내가 이 직장이라는 굴레만 벗어날 수 있다면 나의 하루를 통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열거하자면 종이 한 장에는 빼곡히 써도 모자랄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육아휴직을 통해 회사의 굴레를 벗어나 있는 지금조차 시간은 나에게 그리 넉넉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회사가 차지하는 시간을 소거하니 내 인생에 일 이외에 다른 중요한 가치들이 앞다투어 그 자리를 꿰차기 바쁘다. 아이들, 육아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을 부분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집을 조금 더 깔끔히 하고 사람답게 사는 공간으로 유지하는 일 따위도 그중 하나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렵게 마련한 시간의 전부를 가족이나 여타 의무적인 부분에 모두 양보하기에는 속이 씁쓸하므로 나를 나답게 할 수 있는 일이나 나를 찾아갈 수 있는 일. 이를테면 취미 등에 과감히 투자해 보았더니, 육아휴직을 들어가기에 앞서 경계했던, 나태나 게으름 따위에 곁을 내줄 틈이라고는 전혀 없게 되었다.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 버금가도록 늘 바쁘고 시간에 쫓기면서도 지금은 생산성마저 없으니 내가 잘하는 것인지. 아니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지. 지금은 무엇을 위한 삶인지 헷갈리는 소위 현타가 왔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당당하게 세웠던, 그 당시에는 그렇게 뚜렷해 보였던 세부목표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짐을 느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각각의 목표들에 정당성과 확신을 더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일정계획표이다. 사실 이것은 지금의 새로운 생활의 시작과 동시에 진작에 마련해두었어야 했던, 슬기로운 생활을 위한 핵심 요소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학창 시절 매해 여름과 겨울마다 맞이했던 방학이면 언제나 제일 먼저 만들었을 방학중 생활계획표. 그 시절 그땐 그것이 만들어만 놓고는 지켜지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늘 시간에 쫓기고 시간이 모자라다며 투덜대는 걸 보면, 바로 이 생활계획표라도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리 및 업데이트해가며 지켜갔으면 지켰갔지 뒷전으로 내팽개쳐 두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언제나 어떤 조직에 속해있으면서 때로는 대세의 흐름대로 또 때로는 리더의 디렉션대로 살아왔던 반면에, 지금의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오로지 스스로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내고 있다. 또한 주변에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지인도 없어 척도로써 또는 나침반으로써 비교할 만한 대상도 없으니 그저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돛단배와 같은 처지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잘하고는 있는 건지,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커리어의 오점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먼 훗날 미래에서 나의 삶을 돌이켜보았을 때 지금의 나는 점에서 점으로 뻗어 나아가는 긴 선과 같은 인생이라는 흐름 안에서 그저 한낱 일개 점을 살아내고 있는 것임이 자명하므로 그 점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될 뿐이라고 매일같이 되뇌며 용기를 내어가는 중이다.


내가 할애한 이 시간은 우리 가족, 나의 아이가 더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고 가족이 더 화목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데 쓰인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그리고도 욕심을 내 본다면 모두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색다른 나의 선택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빛나게 하고 또 다른 원동력을 이끌어 냄으로써, 지금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한 뻔 한 인생이 아닌 어딘가로 나의 삶을 이끌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볼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다. 현타를 느끼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실제로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실제로 방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이 치열한 고민과 발버둥의 끝에 결국은 방황도 멈추게 될 테고 고민과 노력의 깊이만큼 삶은 달라져있을게 분명할 것만 같아 이 선택이 나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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