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한가?

by 정하

최근에 들어오게 된 직장.


나름 공기업 문화가 가득한 회사로, 평소에 다녔던 사람들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말은 안 하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4년제는 기본이고, 석사에 배운 사람들도 많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의 길이 열려 있어, 배움이라는 것을 쉽게 접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만큼 현타 아닌 현타도 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드는 생각은
과연 학벌주의가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계속해서 학벌주의로 간다면 이 세상은 계속해서
좁은 식견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양한 계급의 수저를 물고
배움의 질도 다르고, 경험의 질도 다르게 살아간다.


나는 스스로 잘 살지도, 그렇다고 못살지도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다른 애들보다는 힘든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배움은 다 배웠고,
하고 싶은 것들은 온전히 계신 부모님들 덕에 배움을 놓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채우면서 살았다.


매일매일 진로를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고민만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도 똑같은 고민들


누구나 다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며.

그러다 이 직장에 들어와서,
더 좋은 배움을 받고 살아가는 친구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배워도
스스로를 비교하고 끊임없이 진로 고민을 하기도 하는구나.


그런 사람들은 주위에 뭐든지 잘하고 뭐든지 평타는 치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으니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 반대 환경에서 자랐던 내 또래 친구들은
또 무슨 고민을 하면서 살아갈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생각보다 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구나’를 느꼈고,
자연스레 누릴 수 있었던 부모님의 노력에 감사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연스럽게 입고, 보고, 즐기고 있는 것들이
지금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는 정보의 장에서 산다고 하지만,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
정보조차 없고, 스스로 깨닫고 닥치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는 조금의 노력만 하면 채울 수 있는 것들을,
누구는 남들보다 몇 배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과연 우리가 하는 생각들, 고민들,
먹고 자고 누리는 것들이 공평하게 주어진 것일까? 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면서
우리가 하는 불평, 불만이 어쩌면 과분한 하소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스스로도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는 건 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내 경쟁력을 갖추고 스스로의 힘을 키워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배움을 통해,
내 경제적 독립을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다 같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학벌주의로 인해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자만의 좁은 세상을 바라보며 살기엔
세상은 너무 아깝고, 넓다.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느 부분은 썩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끊임없이 나를 갉아먹는 비교와 걱정, 고민은 잠시 멈춰두고
평소에 감사한 것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어떨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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