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을 바랄밖에

by Dr Wolfgang H

동생의 죽음도

둘째 아들의 죽음도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으셨던 이모였다.


2015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이모를 찾아뵀었다.

그때 이모는 작별인사를 하는 나의 손을 붙잡고 무너지셨다.

하나밖에 없는 자매였던 나의 어머니로부터 기인한 내 존재의 특수함이 작용했던 것일까?


"이제 가면 언제 볼 수 있을까?

난 이제 누굴 의지해야 할까?"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렇게 10년 하고 8개월 만에 이모를 만났다.

당시에도 허리가 좋지 않으셨는데

겨울에 빙판에 미끄러지셔서 척추에 금이 갔었고,

고령에 와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수년간 누워계셔야 했다.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줄줄 외시던

그리고 영화나 고전들을 맛깔나게 설명해 주시던 분

항상 무엇인가 배우고 학습하는 일에 관심이 많으셨던 총명하신 분.


그 이모의 인식을 수년간의 와병기간이 앗아가 버렸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나를 알아보셨다.

나와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기억하고 계셨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말씀하셨다.


잊혀진다.

생의 중요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금방 나누던 담소의 내용들도

반복되는 사유도

관계 안에서 상대를 읽는 인지가 미약해진 눈빛도 어딘가 낯설다.


이렇게 나의 윗 세대의 마지막 존재가 망각을 향하여 간다.

그런 이모에게 망각은 평안으로의 온전한 안착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가시라 했다.

내 말의 의미가 전달된 것이었는지 이모의 눈빛에서 안도가 지나간다.


10년 만에 만나 17일간 있는 동안

정성껏 요리를 준비했다.

내 어머니께 다하지 못한 불효를 이모를 통해 대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정성껏 마음을 담아 만든 음식을 이모의 위장으로 보내 소화시킴으로써

이모를 사랑하고 끝끝내 이모의 안식에 진심으로 동참하고픈 내 마음이

오롯이 이모의 유기체에 남겨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하시고 일제강점기 때 귀국하셔서

많은 학교를 세우셨던 외할아버지

당시 엘리트로서 그리고 일본 순사의 아랫도리를 걷어차 불의에 항거했던 기세가 있으셨던 분.

그분 내외가 전달한 유전자가 고스란히 발현된 이모와 엄마.


사랑하는 분들

그 세대의 마지막 유기체가 망각을 향하여 간다.

인생의 고해를 모두 뒤로하고

온전한 망각으로 근원으로 온전히 회귀하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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