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햇볕이 유난히 좋았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빛이 생각보다 뜨거워서, 차 안 공기는 애매하게 후끈거렸다. 겉옷을 입고 있자니 땀이 날 것 같고, 벗자니 다시 추워질 것 같았다.
아빠는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도로가 막힐 거라며,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출발하자고 했다.
“해뜨기 전에 나가야 해. 안 그러면 길에만 두 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한다.”
아빠는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누구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출발 전에 엄마는 빠진 짐이 없는지 확인하느라 현관에서부터 정신이 없었고, 나는 트렁크 안 짐들을 다시 정리하며 아빠가 적어놓은 체크리스트를 한 번 더 훑어봤다.
‘굳이 이렇게까지 일찍 나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금방 사라졌다. 아빠에게는 늘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고 넘겨버렸다.
아침잠이 많은 세림이는 눈을 간신히 뜬 채 코코를 품에 안고 뒷좌석에 앉았다. 차가 움직이자마자 고개가 옆으로 떨어졌다. 코코는 세림이 품에서 자세를 바꾸다가, 결국 같이 잠들었다.
예상과 달리 도로는 한산했다.
우리는 정체 한 번 없이 한 시간 만에 춘천 근처 공지천에 도착했다. 아직 아침 여덟 시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햇빛은 분명히 비추고 있었지만, 공기 속에는 단단한 냉기가 오래 남아 있었다.
“잠깐만 공원 쪽으로 걸어보자.”
아빠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말없이 따라갔다.
하지만 십 분도 되지 않아 손가락이 시릴 만큼 추워졌고, 세림이가 목도리를 더 당겨 올리는 모습을 보자 엄마가 말했다.
“여보… 애들 춥겠어요. 코코도 떨잖아요.”
정말로 코코는 세림이 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금세 차로 돌아왔다. 차 문을 닫자, 바깥공기의 매서움이 유리창 저편으로 밀려났다.
“아직 여덟 시도 안 됐네…”
아빠는 내비게이션 화면을 한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길이 막힐까 봐 서둘렀는데, 정작 할 일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 차 안의 공기가 잠깐 어색해졌다.
세림이는 다시 눈을 감고 뒷좌석에 기대었다.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런 세림이의 얼굴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말했다.
“일단 어디 들어가서 좀 쉬어요. 따뜻한 데 가서 커피라도 마시죠.”
아빠는 휴대폰을 꺼내 이곳저곳을 검색했다. 한참 후에야 말했다.
“근처에 애견카페가 하나 있네. 여덟 시부터 영업이라는데… 거의 다 됐겠다. 거기로 가자.”
우리는 다시 차를 몰고 안내된 길을 따라갔다.
잠시 후 내비가 도착을 알렸을 때, 우리 눈앞에 펼쳐진 건 황량한 논밭과 오래된 건물 하나였다.
“여보, 주소 잘못 찍은 거 아니에요?”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야, 여기 맞는데…”
아빠는 다시 화면을 확인했다. 그때 나는 길가의 쓰레기 더미 뒤에 가려진 작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여기 맞는 것 같은데… 잠깐만요.”
차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니, 벗겨진 페인트 사이로 간신히 카페 이름이 보였다. 문 옆에는 종이에 쓰인 문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동파로 인해 당분간 휴무입니다.’
글씨는 빛에 바래 있었고, 종이 가장자리는 이미 여러 번 찢어졌다 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언제부터 쉬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씨… 뭐가 되는 일이 없어?”
아빠가 짧게 욕설 아닌 욕설을 내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차 안의 시선이 동시에 아빠에게로 향했다가, 이내 흩어졌다.
아빠 눈이 잠깐 세림이 쪽으로 향했지만, 세림이는 여전히 말없이 코코를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빠가 미안하다. 일단 근처에 다른 데 없나 다시 찾아볼게.”
다시 검색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애견 동반 카페였다.
하지만 안내문에는 ‘반려견 동반 시 외부 테라스만 이용 가능’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깥바람은 여전히 칼 같았다.
“이 추위에 어떻게 밖에 있어요. 그냥 다른 곳 찾아봐요.”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잠시 테라스 쪽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괜찮아. 코코 데리고 밖에 있을 테니까, 셋은 안에서 따뜻하게 먹고 쉬어. 괜히 또 돌아다니다가 시간만 버릴 수 있어.”
엄마는 망설였고, 나는 결국 엄마 팔을 가볍게 잡아끌었다.
“일단 들어가요. 이따가 교대로 나가 있으면 되죠.”
카페 안은 놀랄 만큼 따뜻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테라스는 겨울 햇빛과 찬 바람이 섞여 흐릿한 색을 띠고 있었다. 아빠는 코코를 안고 의자에 앉아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코코는 처음엔 어떤 상황인지 몰라 헛짖음을 조금 하다가, 이내 아빠 무릎 위에서 몸을 말고 앉았다.
따뜻한 공기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그동안의 피로를 잊고 주문부터 했다.
엄마는 뜨거운 차를, 세림이는 케이크와 라테를, 나는 진한 커피를 골랐다. 컵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한참 이야기 없이 각자 컵과 접시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세림이가 갑자기 포크를 내려놓았다.
“내가 나가볼게.”
“괜찮겠어?”
엄마가 물었다.
“응. 코코랑 같이 있고 싶어… 아빠도 추울 거고...”
세림이는 후드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갔다.
엄마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눈빛이 닮은 순간이었다.
아무 말 없이, 둘 다 살짝 웃었다.
유리창 너머로 세림이와 아빠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코코를 안은 채 뭐라고 길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고, 세림이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다 세림이가 아빠의 팔을 한 번 톡 치며 안쪽을 가리켰고, 아빠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실랑이 비슷한 장면이 이어진 뒤에야, 아빠가 팔짱을 낀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세림이가 코코가 너무 보고 싶대서… 자기가 나가 있겠다고 해서 말이야.”
아빠는 쓸데없이 구체적인 설명을 붙이며 자리에 앉았다. 양 볼이 얼어 붉어진 얼굴에는 묘한 뿌듯함이 섞여 있었다.
세림이는 테라스에 남아 우리 쪽을 등지고 앉았다.
코코는 세림이 무릎 위에서 귀를 뒤로 젖힌 채 주변을 살피다가, 금세 안정을 찾고 눈을 감았다.
오후 세 시부터 펜션 입실이 가능하다고 해서, 우리는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고 시간을 맞춰 이동했다.
아빠는 펜션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숙소를 구했는지, 이곳이 얼마나 평점이 높고, 어떤 뷰를 자랑하는지에 대해 차 안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내려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빠가 왜 그렇게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창문 너머로 강이 보이고, 거실과 주방, 방 배치도 넓고 편했다.
무엇보다 인테리어가 세림이 취향과 잘 맞았다. 세림이는 신발도 벗기 전에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면서 말했다.
“아빠, 잠깐만요. 아직 들어오지 마세요. 오빠도.”
세림이는 방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빠와 엄마는 현관 쪽에서 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둘 다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안도와 만족, 그리고 조금은 서툰 설렘.
군 생활 동안 매일 똑같은 일과를 보내면서도, 사람 사이의 미세한 감정 변화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느껴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가족도 그와 비슷했다.
겉으로는 늘 같은 자리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뒤틀리고 조금씩 돌아오고...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는 데엔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이것도 우리 가족의 한 모습이었다.
짐을 정리한 뒤 아빠는 준비해 온 종이를 꺼냈다.
“자, 이제부터 개인전이다. 게임 열 개 준비해 왔어. 게임마다 상금도 있고, 순위도 정할 거야.”
첫 세 게임은 세림이가 유난히 잘할 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세림이는 연달아 1등을 했다. 상금이라기엔 소소한 금액이었지만, 세림이 얼굴에는 오랜만에 마음껏 웃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게임에서 이긴 사람 같았다.
그렇게 전반전에 5개의 게임을 하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아빠의 치밀한 준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고기를 구웠다.
아빠와 세림이는 옆에서 장난을 치며 양념을 바르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어디선가 불안한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 시간만큼은, 우리 넷 모두 비슷한 속도로 웃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후반전 게임 다섯 개가 다시 이어졌다.
다들 술을 조금씩 마신 터라,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몸짓도 과장되었다.
지금까지 세림이는 네 번 1등을 가져갔고, 나는 두 번, 아빠와 엄마가 한 번씩 나눠 가졌다.
마지막 게임은 두 명씩 짝을 지어하는 단어 맞히기 스피드 게임이었다.
우승한 조에서 1등이 두 명 나오는 구조였다.
뽑기를 통해 팀을 정했는데, 아빠는 세림이와 한 조가 되었고, 나는 엄마와 한 팀이 되었다.
솔직히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좋은 분위기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으니까.
먼저 나와 엄마 차례가 시작됐다.
"엄마! 있잖아요. 그러니까 은퇴한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어떤 섬에 가는 드라마 있었잖아요? 그섬 이름요!"
"어...어... 뭐더라... 울릉도? 아니 강화도?"
나는 발을 동동 굴렀고, 엄마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갔다.
"아니에요. 있잖아요. 한글자 들어가는 섬!"
"아... 맞다. 독도! 독도!"
나는 최대한 웃긴 비유와 과장된 몸짓으로 단어들을 설명했고, 엄마는 가끔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도 끝내 여덟 개를 맞혔다.
중간중간 우리가 서로 말이 꼬여 엉뚱한 단어를 외칠 때마다, 세림이와 아빠도 소리 내어 웃었다. 아빠가 준비한 게임은 그 순간만큼은 완벽한 성공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아빠와 세림이 차례가 되었다.
“아빠, 제가 맨날 귀에 꽂고 있는 거 뭐예요?”
세림이가 첫 번째 카드를 들고 외쳤다.
“어… 이어폰?”
“아니, 그거 말고! 이름이요, 이름!”
“블루투스 이어폰?”
“아니라고요! 아이폰이랑 연결해서 쓰는 거요!”
“블루투스잖아. 패스해, 패스!”
“아이… 진짜. 그걸 아직도 몰라요.”
세림이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목소리 끝이 약간 날카로워졌다.
이번에는 아빠 차례였다.
아빠는 카드를 바꿔 들며 말했다.
“자, 이건 쉬워. 뉴질랜드 수도.”
“… 웰… 뭐였지…”
“예전에 아빠가 맨날 물어봤잖아. 그 문제.”
“알아요. 근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요.”
“아이씨… 답답하네. 맨날 이걸 몰라.”
“웰싱턴?”
“그래, 그거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웰링턴이잖아! 웰링턴!”
순간, 거실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나는 웃으려다가 엄마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줄어들었고, 코코가 우리를 번갈아 보며 작은 소리를 냈다.
세림이 손에 들린 카드가 약간 구겨졌다.
아빠는 그걸 보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어찌 너는 도대체 맨날 그대로니?”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쌓아 올린 탑이 아주 느린 속도로 무너지는 것 같았다.
손에 땀이 나는 것도 아닌데, 손가락이 굳어갔다.
세림이는 잠깐 웃는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입꼬리가 천천히 내려갔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목이 한번 꿀꺽 넘어갔다.
그러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제가 이거 에어팟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아빠도 똑같잖아요.”
아빠가 고개를 들었다.
“뭐가?”
“맨날 똑같은 말만 하잖아요. 제가 그대로인 것처럼요.”
“그게 어떻게 같아?”
아빠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냥… 저도 그런 기분이에요.”
나는 그 둘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멈추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 고개만 번갈아 돌리고 있었다.
코코는 우리 발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아빠와 세림이 사이 어딘가에서 멈춰 서서 짧게 짖었다. 마치 이쯤에서 멈추라고 말하는 것처럼.
더 큰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게임은 자연스럽게 끝났다.
점수판은 그대로 멈춰 있었고, 상금 봉투도 아직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아무도 결과를 정리하지 않았다.
나는 컵에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온도는 이미 상관없었다.
아빠와 세림이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엄마는 “이제 그만 치우자”라는 말로 겨우 자리를 정리했다.
그날 밤, 우리는 같은 방에서 잤지만, 서로의 숨소리가 다르게 들렸다.
아빠는 평소보다 조금 더 깊게 숨을 들이쉬었고, 세림이는 이불속에서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엄마는 코코를 안고 한참 동안 눈을 감지 못했다.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족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고, 각자의 방식대로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해는 늘 언저리에서 머물렀다.
상대의 마음에 완전히 닿기 직전, 꼭 한 칸 정도 남겨두고 멈췄다.
사랑은 분명히 가슴속에 있었지만, 그 사랑이 늘 좋은 말과 좋은 표정으로만 표현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조금 가까워졌다가,
다시 조금 멀어졌다가,
그러다 어느 날 또 아무렇지 않게 한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것이다.
코코는 그때마다 우리 발치 주변을 맴돌며 꼬리를 칠 것이다.
누가 화가 났는지, 누가 웃고 있는지 가장 먼저 알아채는 건 아마 계속 코코일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끝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좌우로 조금씩 움직이며 이 집을 버티게 할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래서인지 더 오래 이어지는 관계들도 있음을,
나는 이 가족을 보며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