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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 창 Aug 09. 2023

언더독: 제이콥

영화 '미나리' (2021)

#미국 이민 1세대 제이콥과 그의 가족들은 언더독들이다


1980년대, 뼛속까지 한국인 이 씨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한다.

제이콥이라는 영어 이름도 만들고, 아내, 딸 그리고 아들 손을 잡고 캘리포니아를 거쳐 아칸소로 왔다.

일단 도착하기만 하면 술술 풀릴 줄만 알았는데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건 병아리 암수구분하는 일뿐이다 - 그래도 그는 농장 가꿔 한국 채소를 판매하겠다는 꿈이 있기에 묵묵히 버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모두 그의 시점이고, 가족들은 뭔 죄인가. 특히 아내 모니카는 그런 남편이 못 미덥다.

시골에 처박혀서 병아리만 보는 것도 힘들고, 컨테이너같이 생긴 집에서 사는 것도 싫고, 막내아들 데이비드의 심장문제도 너무 걱정된다.


여보 우리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매일매일 자녀들이 엿듣는 줄도 모르고 말싸움을 하는 부부 - 행복을 찾아 이곳에 왔지만 현재 미국사회에서 제이콥과 그의 가족들은 희망과 제일 먼 곳에 있는 것만 같다.


#가장도 사람이다


제이콥이라는 사람에 집중해 보자.

그는 얼마나 힘들었겠나.


미국이 어딘지도 모르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서 태평양을 건너는 결정을 했다.

한국에서는 번듯한 직장이 있었으리라 -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처음 미국에 도착해 수년간 병아리 암수 구별하는 일만 했다. 마치 기계처럼.


아내 모니카도 야속하다. 가뜩이나 미국에 데려와서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 죽겠는데 자꾸 뭐라고만 한다. 왜 우리 가족을 아칸소 깡촌으로 데려왔냐고 한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캘리포니아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기적인 나쁜 놈 취급한다 - 그도 좋아서 왔겠는가? 평생 병아리만 봐서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지 못하기에 농장을 크게 한번 해보려고 하는 거 아닌가.



애들도 한 번쯤 아빠가 뭔가 해내는 거 봐야 될 거 아니야!


가족들과 아이들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해 보지만 아내는 전혀 공감을 못하는 것 같다.

더욱이 부부가 함께 일할 때 둘만 남겨질 어린아이들이 걱정된 그녀가 장모님 (순자)까지 미국에 데려왔다, 아무리 좋은 분이라도 장모님과 졸지에 함께 살아야 하는 것 솔직히 불편하다.


결혼을 빨리했던 시기였던 80년대 그는 많아야 30대 중반 정도 되었을 텐데 아직 여물지 못한 청년에게 가장이라는 굴레는 때로는 너무나 무겁다 - '그도 특별히 강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장모님이 본질을 가르쳐주셨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는지 그의 농장사업은 점점 발전해 천신만고 끝에 농작물을 수확했고 한인 마트 거래처까지 확보했다 - 역시 존버는 성공하는구나!


번창하는 그의 사업과 동시에 아이들을 봐주러 한국에서 오신 장모님은 치매 기를 보이기 시작했고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심장이 아픈 데이비드를 데리고 멀리 가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 계속 깊은 숲 속까지 데려가지를 않나 한국에서 몰래 들여온 미나리를 심어서 자신만의 밭까지 경작해 버렸다. 맙소사.



그러다가 장모님은 마침내 큰 사고를 치는데 제이콥이 일궈놓은 농장 창고에 큰 불을 내버렸다.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 하지만 장모님이 뭔가 소중한 걸 가르쳐 주신 것만 같다.


이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진 체 아등바등하지 말고 가족 모두가 '원팀'이 되어서 으쌰으쌰 하자는 메시지랄까, 마치 한 줄기씩 자라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줄기가 엮여서 무더기로 단단하게 자라는 미나리처럼.


물론 제이콥은 허탈하고 슬프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이젠 아내뿐 아니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아이들도 보인다. 아직 그들의 위치는 언더독이 맞지만 함께 뭉쳐서 싸우면 미국사회라는 전쟁터에서 확실히 경쟁력이 있다.


2023년 현재, 그의 가족들은 미국 사회에서 잘 적응해 잘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원팀'으로서 말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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