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2023)
학교 다닐 때 만약 이런 애가 같은 수업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 심약하고 수줍음이 많은 데,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 물리 이야기할 때만은 눈이 돌아서 교수님의 수업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교단에서 끌어내리지를 않나
- 말은 또 어찌나 빠른지 뭐라는지 모르겠고, 하루에 담배를 5갑이나 피워대서 냄새가 지독하다
- 한 교수님이 자신에게 좀 뭐라고 했다는 이유로 독사과를 책상에 두는 상상초월의 기행을 저지른다.
이런 사람과 친구를 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니 친구는커녕, 이 사회에서 영영 격리되어야만 할 것 같은데 정말 실존했던 인물이 한 행동들이다 - 이름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신이 주신 천부적인 재능을 지혜롭게 소화할 준비가 아직 안되어있는 젊은 천재, 깊은 열망과 불안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 미국인이 바로 이번 아웃사이더 시리즈의 주인공 되시겠다.
영국, 독일에서의 학창 시절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지만 그의 재능만큼은 확실했다.
현재 우리들에게는 이과적인 머리를 갖춘 천재 물리학자로 기억되지만 사실 그는 문과적인 머리도 엄청났다.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라틴어, 그리스어, 샨스크리스 트어 고전 문학을 읽는 것이고 네덜란드 대학에서 강의를 할 기회 생겼을 때는 그 나라의 학생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몇 주간 가볍게 배워둔 네덜란드어로 했다 - 할 말이 없다, 이 정도면 교수를 끌어내리려고 할 법도 하다 얼마나 이 세상이 시시하고 답답했을까!
아무튼, 오펜하이머는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또래 친구들 인턴 열심히 할 때, UC 버클리 대학교수 정규직으로 취업뽀개기 성공했다. 그러던 중 왠 레슬리 그로브스라는 군인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자네 나라를 위해서 일할 생각 없나?
정치, 군사와 제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에게 웬 뚱딴지같은 제안인가 - 알고 보니 우라늄을 이용한 폭탄을 나치 독일 보다 먼저 만들어 내겠다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미국 정부는 오펜하이머를 낙점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 데, 그로브스는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가 되어 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 몇 년 전까지 아싸 중에 아싸였던 오펜하이머는 졸지에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인싸 중에 인싸가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DNA속에 내재되어 있던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세 명만 모여도 싸우는 게 대학교수들이며 물리학자들이라는데 전 세계에서 모인 몇백 명의 천재들을 리드하는 일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내버렸다.
그의 매니징을 받은 이름 날리는 교수들, 노벨 수상자들은 사실 우리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은 오펜하이머라고 말하며 그를 칭송했다 - 정말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일본의 무조건 적인 항복을 이끌어 내 전쟁을 끝냈지만, 죄 없는 12만 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주 잠시 인생의 황금기를 맛보았던 오펜하이머는 다시 깊은 불안과 슬픔 속으로 빠지는 데 그 정도는 20대 시절의 어두움 보다 더 짙다.
이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그를 두고 미국 정부는 그를 '전쟁 영웅인 줄 알았는데 뒷전에서 징징 대는 울보 과학자다' 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 극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맡길 때는 언제고 역시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는 다시 아웃사이더의 길을 자처했다.
혼자 백악관에 가서 핵무기 반대 1인 시위를 할 만큼 강경한 탈 원전 주의자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 주위에서 자신을 추켜세웠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그는 60대 초반의 나이에 후두암에 걸려 조용히 우리의 곁을 떠났다.
오펜하이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인생을 시작해 달콤한 인싸 시절을 거쳐 다시 아웃사이더 돌아와 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지금 보면 그는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졌지만 머리가 매우 좋은 과학자로만 사는 것이 더 어울렸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그의 30대는 열등감, 불안 그리고 우울등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던 시기였는 데, 하필(?) 그때 운명처럼 다가온 전쟁영웅의 길은 그의 인생을 더한 구렁텅이로 몰아버렸다.
이 세상은 그를 철저하게 이용만 하고 책임지지 않았다.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는 얼마나 허망했을까
그는 얼마나 미안했을까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