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2013)
월요일, 회사에서 자주 하고 듣는 클리셰 멘트.
'주말에 뭐 하셨어요?'
대부분 딱히 궁금하지 않지만 할 말이 없어서 하는 경우지만 아무튼 오늘의 주인공 월터는 이 질문에 항상 같은 답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해본 것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본 곳도 없으며, 특별한 일은 더더욱 없는 사람이다.
딱 하나 잘하는 건 상상하기 란다, 듣기만 해도 딱하다.
상상 속에서 그는 스파이더 맨 뺨치는 히어로에 어바웃 타임 주인공 이상 가는 사랑꾼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시작할 용기가 없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 방구석 워리어의 미국 버전이랄까.
그러한 그의 성향은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호구스러움'으로 통용되어 여러 빌런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
오늘도 호구남 월터는 터덜터덜 출근길에 오른다.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잡지사 라이프에 출근한 월터 씨, 그는 사진 현상 담당자다.
회사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는 충격적인 이야기 - 주말사이에 회사가 팔렸단다, 그에 따른 구조조정까지 들어간다는 소식! (잘리는 명단의 첫 줄엔 왠지 그의 이름이 있을 것만 같다).
하필 그 이야기를 월터를 가장 무시하고 조롱하는 빌런인 구조조정 책임자 테드에게 들었다, 더러운 기분이 두 배가 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
테드는 다짜고짜 폐간호에 사용될 필름을 구해오라고 난리다.
입사 때부터 사진을 찍어 보내주던 작가 숀에게 부탁하니 편지가 왔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어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네, 내가 지금 보내는 이사진에 내 작가 인생의 정수를 담았어
이건 또 뭔 X소리인가.
일은 해야 하니 봉투를 열어봤는데, 필름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월터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사진을 받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 상상 속이 아닌 현실에서 말이다!
만약 우리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같은 회사원으로써 말이다.
- 일단 직장 상사가 닦달하니 하는 척이라도 하자 하는 마음에 출장을 떠나긴 하는데,
- 그런 일로 자신의 '첫 용기'를 내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 가야 하는 게 꺼림칙 하기도 하지만,
- 한편으로는 자신을 자르려고 하는 회사에 정이 확 떨어진 상황에 기분 전환 하고싶은 마음도 있는,
그런 복잡적인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월터는 숀을 만나기 위해 평소에 그가 찍어 보냈던 사진들을 보고 유추하여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돌아다니고 마지막 여행지에서 마침내 그를 만난다.
이 출장에서 포인트는 숀을 찾았다는 것이 아니다 - 허구한 날을 상상 속에서만 살던 호구남 아웃사이더 월터가 무언가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게 가장 큰 아웃풋이다.
또한 그는 배웠다, 내가 이때까지 했던 상상들을 대부분 실천으로 옮겼어도 됐었구나 왜 꾹꾹 누르고만 살았을까 하는 깨달음.
뉴욕에 틀어박혀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을 때 이고 지고 살았던 고민들은 삶에서 먼지보다 못한 것들이었다.
여행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다시 현실로 돌아온 월터는 숀이 '인생의 정수'를 담았다던 필름을 회사에 건네주는 일을 마지막으로 회사에서 잘려 짐을 챙겨 떠난다 - 퇴사하는 마당에 마지막 업무는 대충 하는 게 국룰, 그 필름이 뭔지 확인도 안 하고 던져버리고 쿨하게 떠났다.
얼마 후 그는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사람과의 데이트가 잡혀 버린다 - 이 일도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용기!
그녀와 함께 거리를 걷던 그의 눈에 전 직장 라이프지의 폐간호가 눈에 들어온다.
숀의 인생의 정수를 담은 회심의 역작은 바로 월터였다.
별 볼일 없는 회사원의 일상을 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묵묵히 참는 것만이 능사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월터 말이다.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그게 라이프지의 진정한 정신이라고 생각해 준 사람이 있었구나.
감동.
데이트 녀가 이렇게 묻는다.
기념으로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월터는 답한다.
나중에 와서 살려고요, 바로 사면 쿨해 보이지 않잖아요
크으 - 과거에도 알고 보니 멋졌고, 지금은 심지어 더 멋있어진 쿨가이 월터 다운 한 마디다.
<사진 출처 - 네이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