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는 사람을 못난 모습으로 변하게 한다.
내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나 없이도 잘 살아가겠다는 말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기간제 베프가 사라진다는 상실감에 휩싸이기도 하고, 이별을 일종의 실패라고 치부하면서 나를 자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열두 번의 이별을 겪고 돌이켜보니, 가장 후회 없는 이별은 떠나는 사람에게 진달래꽃을 뿌려주는 거더라.
이별 회고 ① │ 내가 겪은 가장 최악의 이별은 안전하지 못한 이별이었다.
대학교 때 처음 만난 남자친구였다. Y와는 약 1년을 만났다. 먼저 취업을 한 Y와 대학생이었던 나는 여러모로 시간이 맞지 않았다. 연락이 뜸해지고, 데이트할 시간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이별을 먼저 결정한 쪽은 나였다. 사회 초년생이라 여러모로 힘들었던 Y에게 나의 이별 통보가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이별 후 Y의 스토킹이 시작되었다.
먼저 각종 협박 문자에 시달렸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Y는 집 앞에 찾아와 기다리기도 했다. SNS에는 원치 않는 게시글에 태그 됐다. 1년을 만났는데 6개월도 넘게 시달렸다.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려고 했던 나는 더 이상 Y의 스토킹을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새 연인과 3자 대면을 요청했는데 이유는 내가 환승 이별을 했기 때문이란다.
2011년 여름 종로였다. Y가 예약한 스터디 카페에서 Y와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만났다. 통유리도 되어있는 공간이었다. Y가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Y는 책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Y는 나와 함께했던 1년의 시간을 사진으로 인화해 포토북을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당시 만나던 남친에게 그 책을 건넸다. Y와 내가 함께했던 뜨거웠던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라고 했다. 당시의 남친은 내가 이걸 보면 상황이 끝나는 거냐고 물었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겼다. 책장이 중간쯤 넘어갈 때쯤 Y는 보던 책을 도로 가져갔다. “**에게 잘해주세요.” Y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이별 후 지속되던 스토킹은 끝났다.
3년쯤이 지났다. 밤 열 시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안녕?” 한적한 지하철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사랑도 이별도 서툴렀던 것 같아 미안하다며, 본인도 연애를 시작했다고 했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소식을 전해 들으니 그는 이제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나는 부디 잘 헤어지는 사람이 되자.
(사진 출처 : KBS '그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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