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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Jun 24. 2024

161104-02

두 개의 거울



예전 건물에서 일할 때는 1층에 있는 휴게실을 자주 이용했었다. 그곳에서 간식도 먹고 라디오도 듣고 허리찜질기를 바닥에 대고 잠깐씩 눈을 붙이며 일할 힘을 얻곤 했었다. 그리고 학생들도 교수들도 왕래가 적은 금요일이면 다른 건물들에서 일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잠깐이나마 발을 뻗고 숨을 크게 내쉬며 일주일 동안의 경험들을 나누는 사랑방이 되곤 했었다.


새로 지은 건물에 휴게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하다 중간중간 그곳에 가서 물도 마시고 앉아서 티비도 보고 했었다. 하지만 너무 깨끗하고 최신식인 그곳은 왠지 내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처럼 여겨져 잠깐 앉아 있어도 쉰다는 느낌보다는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불편하기까지 했다. 더구나 이전 건물의 휴게실은 입구가 잘 안 보이는 곳에 있어 아는 사람 외에는 드나들 수가 없었는데 새로 지은 건물의 휴게실은 1층 관리실 안 쪽에 있어 휴게실에 들어가려면 관리실을 지나야 하는 구조였다.


관리실에는 1~2명의 관리인이 상주해 있을 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갖가지 이유로 꽤나 자주 드나들곤 했다. 정말 지쳐서 잠깐이라도 쉬고 싶어서 휴게실을 가는 길에 관리실에 있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눠야 하거나 학생들 옆을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이 건물 안에서 나 혼자 조용히 잠깐이라도 마음 편히 앉아 있을 곳을 찾다 발견한 곳이 5층 여자화장실 창고였다. 화장실 규모에 비해 창고가 큰 덕분에 접이식 등받이 의자를 하나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작지만 벽에 붙은 거울도 하나 있어 쉬다 일하러 나가기 전에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질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5층 여자화장실의 조용함이었다. 특히 수요일 오후와 금요일 오후는 나 외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비록 화장실 안 창고이기는 하지만 내가 청소해서 항상 깨끗하고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그곳이 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고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점차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대학생활은 나에게 많은 부분 흥미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고등학교 때처럼 짜인 시간표대로 정해진 선생님에게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강 시간에 내가 무엇을 하든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의 있는 요일을 몰아서 시간표를 짜기보다는 오히려 공강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표를 짰다.


공강 시간에 내가 가는 곳은 중앙 도서관이었다. 아주 가끔은 리포트를 쓰고 시험공부를 했지만 대부분은 소설책을 읽었다. 학교 중앙 도서관에는 고전부터 신간까지 국내외의 소설이 제법 많이 갖추어져 있어 공강 시간에 그곳에서 소설책들을 읽는 것은 대학생활의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불편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화장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갔는데 볼일을 보고 손을 다 씻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화장실에 달린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머리를 만지며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비켜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손을 씻지 못한 채 계속 엉거주춤 서 있다가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나가고 나서야 손을 씻고 급히 교실로 갔다가 선생님께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날 이후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이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쉬는 시간 화장실의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은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내 이어졌다. 그러다 집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그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다가 대학교에 와서 다시 그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나마 중고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화장실 거울을 보며 립밤을 바르고 머리를 빗는 정도였지만 대학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실제 용무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장을 세세하게 고치는 데 할애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많은 여학생들의 얼굴의 틈바구니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왜 굳이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화장실인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며 화장을 고치고 통화를 하고 심지어 무엇을 먹기까지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1층 화장실은 가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새로 지은 건물의 5층 여자 화장실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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