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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히어 May 31. 2021

망각은 나의 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고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잘못 쓴 거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질투는 나의 힘>을 따라 쓴 겁니다. 박찬옥 감독, 박해일, 문성근, 배종옥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한 <질투는 나의 힘>은 많은 패러디를 양산할 수 있는 흔한 문구이다. 그래서 이 문구를 처음 접한 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망각은 나의 힘>을 가끔 나를 표현하는 문구로 쓰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25년 전, 국어 문제집 아니면 모의고사 언어 영역 시험지에서 처음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를 읽었을 때가 떠오른다.    


       


당시 나는 이런 문구를   있는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자조적인지 안타깝기도 했고, 어떤 삶을 살면 이런 시를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저 청춘, 희망, 질투, 미친 듯이, 사랑 따위의 단어에 하염없이 빠져들기도 했었다. 25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 다시 봐도 정말 힘이 있는 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때는 눈에  들어왔던 힘없는 책갈피, 공장, 기록, , 머뭇, 탄식 등의 단어에  눈길이 머문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나는 잘 잊어버린다.      


이틀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하던 ,  그때 거기까지 어떻게 왔었지?라는 질문에 정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우리는 힘들게 들어간(?) 대학교에 만족을 못하고 2학기를 휴학한  반수를 했었는데, 친구가 말하는 거기는 반수 학원을 의미한다.  학원은 강동구에 있었던 곳으로 당시 나는 분당에 살고 있었던 터라 친구도 내가 분당에서 강동구까지 매일 어떻게 왔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정말이지 아예 기억이 1  났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반수는 실패로 끝났다.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은 20년이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 그리고  친구와만 나눌  있는 풋풋했던  시절 우리를 좋아했던 이성과의 추억 정도?     


4월 중순에 올렸던 글도 알고 보니 오류투성이였다.      

https://brunch.co.kr/@2gafour/56


 글에 등장하는 동생들에게 글을 공유했는데, 그중의  명이 나의 잘못된 기억을 지적했다. “언니 내가 기억을 수정해줄게. 우리는 저길 지하철 타고 갔어. 그리고 내비 잘못된  홍천 펜션 갔을 , 그때 운전 내가 했던  같은데이런 정말 저질 기억력이 따로 없네.  가지 기억이 합쳐져 뭔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린 듯한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선택적 기억의 결과물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오늘, 물에 젖은 트랙에 발을 내딛는 순간 떠올랐다. , 지난번에 다음번   다음 날은 아침에 산에 가기로 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이쪽으로 와버렸네.  이왕 시작했으니 트랙을 돌긴 했지만 오늘은 여러모로 달리기에는 좋은 날이 아니었다. 어제 늦은  요란했던 천둥번개에 잠을 설친대다가 지난주 생일 주간이라 저녁을 먹은 날이 많아 몸도 무거운 데다 트랙 주변의 잡초를 제거하는 날이 하필 오늘이라 일하시는 분들에 예초기 소리까지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아 비가 온 다음 날은 산에 가기로 한 것을 왜 잊었을까. 정말 후회막심.      

하지만 그 망각 때문에 지금 이 글이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에게 너무 관대한 건가.      


최근에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 신경숙의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하면 이제는 표절논란 전과 후로 나뉘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는 역시였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많은 문장들은 블로그(https://blog.naver.com/2gafour/222371274788) 에 담아놓았으니 틈틈이 꺼내어볼 생각이고 오늘 이 글은 이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어디서부터 기억이 왜곡된 것일까. 아버지는 정말 내가 산낙지를 좋아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렇게 왜곡되는 것이 기억인데 내가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들을 계속 믿어도 될까. 나는 딴생각을 하며 그때까지도 몸을 뒤틀며 접시 위에서 꿈틀거리는 잘린 산낙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62p)     



감히  문장들에 망각을 추가해본다. 살아가는 일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와 망각으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건너올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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