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이 불러낸 참사, 누가 화장실 물 좀 내려주세요
경험은 눈송이같이 우리 삶을 채운다. 땅에 닿으면 언제 닿았냐는 듯 스며들던 눈송이가 쌓이고 쌓여 세상을 덮는다. 겹겹이 쌓이던 눈송이는 서로에게 다져져 빙하가 된다. 세상은 이렇게 단단하게 쌓인 경험을 '능숙함, 노련함, 삶의 지혜'같은 단어들로 찬양하며, 편견이 어디에서 기인되는 것인지 외면해왔다. 둘은 필연적으로 같이 쌓인다. 그렇기에 내 삶이 쌓은 편견을 인정하고, 찾고, 부셔야 한다.
배가 고플 때도,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생각나는 공간이 있다. 뻥 뚫린 도로를 만끽하던 내가 어느 욕구를 느꼈을 때 이를 채워주는 휴게서는 나에게 욕망의 장소였다. 어느 곳을 가도 나의 욕구는 충족되었고 그게 휴게소의 전부라 느꼈기에 저마다의 고유한 특징이나 위치를 기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휴게소는 나에게 마냥 그런 곳이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지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잊지 못할 휴게소를 가지게 된 건 내 인생에 생각지도 못하게 굴러온 특별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길목인 마랑구게이트를 향해 오랜 이동을 하던 때였다. 풍경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해서 눈에 담겠다고 잠도 잘 안 자던 나이지만, 장거리 이동하면서 휴게소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번 쉬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쯔음 마주하게 된 그 휴게소에서, 편견이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만드는지 배울 수 있었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화장실이 급했던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남녀를 표시하는 방식이 독특했던 것만 빼면 겉보기엔 매우 평범해 보이는 화장실이었다. 생각보다 깨끗했고 양변기까지 갖추어 있었다. 이런 작은 휴게실이면 푸세식에 나무로 칸막이가 쳐져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딱 세 칸이 있어서 한 칸씩 들어갈 수 있었다. 바지를 내리려는데 변기가 뭔가 허전했다. 이런, 커버가 없네. 아무리 눈을 굴려봐도 그 비슷하게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동시에 화장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거기도 없어???" 마주친 눈동자들이 흔들렸다. 우리는 결국 스쿼트 자세로 힘들게 볼일을 봐야 했다. 후들거렸던 스쿼트 자세가 끝나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물을 내리고 나가면 이 힘든 여정은 평화롭게 끝날 것이다. 물을 내리고 나갈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내가 화장실에서 나갈 수 없기를 비는 모양이었다. 물 내림 버튼을 아래로 눌렀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품이 찌꺽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또다시 문을 열었고, 고개를 내민 친구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제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화장실은 전부 이상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사라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 작은 휴게실에는 단 한 무리의 버스만 있고, 그 버스에는 한국인들만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대표였다.
이렇게 세대 모두가 이상하다면 현지인들이 쓰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더러웠다면 그냥 망가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니었다. 분명 변기 속은 깨끗했기 때문에 더러워진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현지인들을 찾으러 나갔고, 마침 화장실 근처를 지나던 여직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눈빛이 통했는지 직원은 곧바로 나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왔다. 수치스러웠지만 물을 내리는 방법을 알기 위해 내가 사용한 화장실 칸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초대해야 했다. 양 옆칸에 있던 친구들까지 총 세명의 사람이 나와 내 변기를 주목하고 있었다. 직원은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냥 자신의 성공적인 노폐물 배출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외국인 같았을까. 나는 물 내림 버튼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고, 물이 왜 안 내려가는지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는 다들 왜 이러고 있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18살 청소년의 뒤처리를 해주었다. 푸쉬- 푸쉬- 푸쉬- 푸쉬-푸쉬-푸쉬-푸쉬- 땅속에 숨어있는 에너지를 끌어모으듯 연속적으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마침내 내가 아는 양변기의 모습 그대로 작동했다. 한번 가볍게 누르면 내려가는 양변기는 한국에서나 통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눌러볼 생각을 우리는 왜 못했을까. 버튼을 한번 눌러야 물이 내려간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커스단의 코끼리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릴 때 쇠사슬을 묶어두면, 커서 힘이 세져도 쇠사슬을 끊고 도망갈 생각을 못한다는 서커스단의 코끼리.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나였다.
휴게소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화장실도 탈출하고, 조각들도 구매하고 내 생에 가장 시트콤 같은 휴게소 경험이라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휴게소를 나가고 있는데 다른 버스 하나가 휴게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동양인이 한가득 버스에 타고 있었다. 케냐에서도 탄자니아에서도 동양인은 우리 외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왠지 모를 동질감에 반가웠다. "헐 동양인이다!"라는 소리에 모두가 창문 너머 버스를 주목했고, 이내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궁금해하며 좀 더 가까워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쪽도 우리를 매우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스타일을 보아하니 일본인은 아니었고, 한국인의 느낌은 아니었으니 그들은 중국인이었다. 우리 버스는 “어! 중국인이다!”라는 소리를 지르며 웅성거렸다. 다른 버스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어! 저기 중국인이다!” 나는 중국어를 모르는데 그들의 입모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의 버스가 엇갈리는 찰나의 순간, 나와 눈을 마주쳤던 남자가 서로 한국어를 쓴다는 것을 깨닫고 멍한 표정으로 지나치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내 표정도 마찬가지였겠지. 한국인들끼리 서로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며, 한국어로 "중국인이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니. 편견은 이렇게 서로를 우습게 만들었다.
편견은 우리의 무의식에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