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온지 벌써 6개월이 넘었다. 저렴한 항공권을 구했다는 핑계로 한국을 저번 달에 다녀왔더니, 아직 덴마크보다는 한국이 더 익숙하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브런치 스토리의 팝업스토어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작가의 여정이라는 워크북을 만들고는 뭐라도 쓰고 싶어졌다. 덕분에 이렇게 즐겨먹는 티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았건만, 뭘 써야 할지 막연한 흰 공백 앞에 서성이는 내 손가락은 왜 이렇게 낯선지.
브런치 스토리의 워크북에는 자신이 가진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마인드맵 형식의 도전들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쓰고 싶은 소재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캐릭터 디자이너로 12년을 일했고 24년 4월에 마지막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퇴사를 완료했다. 나는 원래도 3~4년차때 내 스스로 캐릭터 강좌나 세미나를 열 정도로 본업에 하고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고, 회사를 다니면서 외주를 받거나 사업자를 내고 개인 캐릭터 활동도 하는 둥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커리어 뿐이랴. 국제연애를 거쳐 결혼, 그리고 덴마크로의 이주까지. 블로그로 토해낸 것들을 정리해서 옮기기만 해도 브런치에 쓸 글이 꽤 많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터라 27일까지 세 번의 글을 쓰는 도전은 쉬워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웬걸?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 것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제는 어학원도 다녀왔고, 새롭게 이야기 할만한 것들이 많은데 왜 정제된 글로 옮기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까?
아마 내가 그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잘 쓴 글은 소재는 빌렸다 뿐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담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소재는 넘치지만, 주제가 없다는 점에서 잘 쓴 글은 시작도 못하게 되는 거 같다.
하지만 뭐, 이렇게 잡담 같은 일기라도 글의 첫 시작은 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이야기를 기록하다보면 하고 싶은 말들도 생기겠지.
덴마크라는 소재를 이용하며 내 생각을 풀어내는 일... 막막해 보이지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뭔가 이루어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