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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형 Oct 14. 2023

과거와 현재가 접히고 포개지는 경험

‘조월’ <정말로행복하다>(2009년, 2023년)

2023년 10월 05일 [인천In] '음악가 이권형의 인천인가요' 기고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은 2009년 CD로 발매된, 음악가 ‘조월’의 첫 솔로 음반입니다. ‘솔로’라고 굳이 언급한 것은 그를 소개하기 위해선 그가 속한 ‘모임 별’이라는 창작그룹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데요. 2000년도에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결성했다고 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인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월’은 그의 형제라고 알려진 ‘조태상’과 함께 ‘모임 별’의 주축이라 할 수 있으며, 슈게이징 밴드 ‘우리는속옷도생겼고여자도늘었다네’의 멤버이기도 하죠. 오늘 소개할 곡, <정말로행복하다>는 앞서 언급한 ‘조월’의 첫 음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모임 별’ 결성 초기엔 ‘월간 뱀파이어’라는 이름으로 직접 제작한 음악 등을 선보이던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즈음은 제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블로그를 통해 꼭꼭 숨어있는 ‘월간 뱀파이어’의 정보를 뒤적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특유의 아우라에 매혹되어 모니터를 쳐다보며 공상하던 기분 따위가 어렴풋이 생각나요. 그 무렵 ‘조월’의 음악을 만났습니다.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은 당시에도 접근성이 편한 음악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히 <정말로행복하다>를 처음 추천받아 들었을 때의 나른한 충격이 이 곡을 재생할 때마다 상기됩니다.


 <정말로행복하다>를 들을 때마다 앉아 있게 되는 작은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 음악을 처음 듣던 청소년 시절에 상상할 수 있었던, 아마도 서울 어딘가의 작은 자취방.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를 이토록 아늑하고 곱게 부서져 가는 소박한 공간으로 데려다 놓을만한 다른 음악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도시의 소음에 은은하게 노출된 밤의 공간감,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불안한 안식이 필요할 때 여지없이 이 음악이 필요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매번 원하는 순간에 찾아 듣지는 못했는데, 이 곡이 수록된 음반의 유통 방식이 그야말로 독립적이기 때문이었죠. 아티스트가 직접 운영하는 유통사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인식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방식으론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일,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이 리마스터링되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반가운 소식이었지만 묘하게 아쉬운 느낌도 동반되었는데, 그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수고스럽게 찾아 들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변해 버린 느낌이랄까. 어쨌든 이 공간의 좌표는 이제 다른 지도 위에 표기된 것이고, 이 편리하고 보편적인 새 경로를 검색하는 기분은 퍽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 경로를 따라, 또다시 음악이 재생될 때, 굳이 수고를 들여 찾아 들을 만큼 이 음악이 필요했던 순간 속 장면들. 높은 감도로 녹음된 강박적인 엠비언트(ambient)는 흘러가는 모든 시간과 공기를 붙들기라도 하려는 듯, 공간으로 침투하는 소음과 기타를 연주하는 호흡의 떨림까지 잡아내고, 분절되어 나열된 묘사들 끝에 튀어나오는 뚜렷한 고백에 오롯이 ‘현재’였기에 가능했던 진심을 떠올립니다. 순간의 불안한 진심 속에서, “정말로행복하다”고 되뇔 수 있는 ‘현재’의 밀려드는 축복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접히고 포개지는 아득한 경험이었습니다.


‘조월’의 음반, [네가 이곳에서 보게 될 것들] 표지


당신과 나는

지금을

이 바람을

작고 작은

흔들림을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나는 온전히 당신 것이라오

- ‘조월’ <정말로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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