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과 함께 나를 찾아온 단어가 있다.
아니, 내가 이 단어를 인식하면서부터 우울증이 온 것 같기도 하다.
"망가졌다."
이와 비슷하게 '고장 났다', 부서졌다', '엉망진창', '되돌릴 수 없는' 등의 말들이 매번 갑작스럽게 떠올라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 결국 다시 처음의 괴롭던 순간을 곱씹으며 나는 결국 또 '망가졌다'에 머무른다.
이미 다 지나간 일이지만 나는 괴로웠던 그 순간들에 멈춰있다. 여전히 아프고, 앞으로도 아플 것 같다.
반면에 날 힘들게 했던 악성 민원인들, 학교폭력 업무 관계자들, 갑질을 일삼는 악질 관리자들 모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 따위는 잊은 채 그렇게 살 것이다. 만약 나를 기억하고 있다 해도 그런 사람이 있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지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너무도 많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이 분노와 억울함을 받아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것을 단순히 평소의 관심분야에 흥미를 잃고 무력감에 빠지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주변 사람들도 흔히 '이제 그만 잊고 흘려보내자, 그래야 편해지지', '햇빛 쬐며 산책이라도 좀 해', '다 경험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봐', '청소하면서 마음정리도 같이 해봐'라며 나를 위로했다. 나를 위하는 말들이었지만 전혀 위로되지 않았으며, 전혀 고맙지 않았다.
우울증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해졌고, 충동적으로 변했다. 건망증이 심해졌으며,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사소한 행동 하나를 수행하는데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또한 불안감이 높아져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니 매일 피곤하고 생활패턴이 불규칙해졌다. 일상의 사소한 자극에도 불쾌감을 느낄 만큼 과민해졌으며, 작은 스트레스에도 큰 타격을 받는다.
내가 겪어온 아픔들은 언젠가 나를 비롯한 누군가가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 괴로움을 또 버텨 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대로 흘려보내고 잊어버릴 수 없다.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충분히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겪은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원하고, 그렇게 하나씩 개선되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겪었던 아픔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며 마음속의 분노와 억울함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나는 너무 지쳐있다. 삶에 대한 의욕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최근 몇 년간 즐거웠던 일 보다 괴로웠던 일이 더 많았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올해 3월 출근하면 죽는다라는 생각을 한 것 또한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라는 것만 정해지면 실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그렇게 2024년 3월부터 병휴직에 들어갔다. 지금 이 시간들이 단순히 '학교에서의 도망'보다는 오롯이 나를 위한 '충전과 회복'의 시간이 되길 바라며 고민하다가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나의 행복을 담아보고자 한다. 내 삶에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다시 알려주고 싶다. 괴로움을 곱씹고 있는 나에게 괴로움 대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더 많이 곱씹을 수 있게 도와주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고 싶다. 언젠가는 '햇빛 쬐며 산책하는 정도'로 우울감을 떨칠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