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금방 채울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추억들은 막상 글로 표현하려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동안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즐겁고 재밌었던 기억,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던 시간, 어려움을 극복해 낸 순간들...
한 가지로 정의하기엔 너무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였다.
우울증과 함께하며 나는 어느 순간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하고 싶은 것도, 무엇인가를 할 에너지도 없어졌다.
행복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나는 언제 행복해질까? 우울증은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던데. 이젠 행복할 수 없는 걸까?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행복하고 싶고, 딴생각하지 않고 온전히 그 상황에 집중하며 크게 웃고 싶다.
내가 가짜 웃음을 짓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가짜 웃음을 짓는 것에도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요즘 내가 웃고 있는 이유는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다. 그러나 행복하고 싶다.
내가 학생이었던 어린 시절에 어디에선가 본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쉽게 착각을 한다고 했다. 즐겁고 행복하지 않아도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다면, 뇌는 '난 지금 행복하구나'라는 착각에 빠져 엔도르핀을 분비한다는 연구 결과. 그 후 웃음치료라는 것도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교과서와 책상 등 이곳저곳에 웃는 표정을 그려 넣었다. 낙서의 시작은 항상 웃는 얼굴과 함께 스마일이라는 글자를 적는 것이 습관이 될 만큼.
스마일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그 표정을 따라 지었다. '엔도르핀아 나와라!!!'라는 마음으로.
나는 이미 세상에 태어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는데 이왕 사는 거 더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싶어서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나의 학생 시절은 비교적 행복했고, 스마일그림의 표정을 따라 짓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들은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행복하구나'라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를 보며 함께 있으면 편하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가요?'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다음에는 '다행이네요', '나도 기분 좋으면 좋겠다.' 등의 생각들이 흘러간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 앞사람을 바라보았을 때, 그 사람들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그 미소에 그 사람의 뇌는 엔도르핀을 내보낸다.
그 미소를 보며 또 생각한다. '행복일까?'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의 주변을 맴도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이 항상 슬프거나, 항상 우울하거나, 항상 화가 나있다면 그 사람의 주변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을 쫓아간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았을 때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내가 지금 당장 나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나의 삶은 최근 몇 년 간 전반적으로, 대체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작게 쪼개어 본다면 나는 어느 순간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걸 몰랐다. 방금 저 문장을 쓰기 직전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일기장에 오늘을 대표하는 기분을 적을 때 나는 대부분 지친다. 힘들다. 피곤하다. 속상하다. 우울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고른다. 기분이 대체적으로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날의 24시간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이었을 뿐이다. 나의 오늘에는 몇 초라도 기분이 좋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를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해주었던 사람들은 어쩌면 하루 중 몇 초뿐이었을지도 모르는 나의 행복한 순간들을 보았던 것이 아닐까?
-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 힘없이 서있던 나에게 어린이집 버스 안의 꼬마가 웃으며손 흔들어주었을 때
- 일에 지쳐 있을 때 교실로 걸려온 전화가 졸업한 학생의 전화였을 때
- 저녁부터 굶다가 다음날 점심 먹으러 가서 '맛있겠다~'라며 미소 지으며 한입 가득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 너무도 맑고 이쁜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는 순간의 여유
- 근무 중 갑작스러운 건물 소독 소식으로 모두 조퇴하고 집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 갑자기 배가 아파서 공중 화장실에 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마음 편히 볼일을 보고 나왔을 때의 개운함
- 산책 중 귀여운 길고양이나 강아지를 보았을 때
- 아무 기대 없이 들어간 식당이 엄청난 맛집이었을 때
- 엄청난 숙취로 고생하다가 해장하고 개운해졌을 때
- 주말에 실컷 자고 눈만 떠서 내 품에 안겨 자는 고양이 얼굴 구경하다가 다시 함께 잠들 때의 나른함
짧은 행복은 생각보다 많았다.
저 모든 순간들 속에서 나는 온전히 그 상황만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도 여기저기 스마일을 그려 넣고 미소를 지어보라.
그 가짜 미소에 속아 당신의 주변엔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그 사람들이 당신의 사람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자. 그 가짜 미소는 나에게만 가짜로 보였던 것일 수도 있다.
커다란 행복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작은 행복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반짝이며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대단한 행복을 기다리느라 나의 사소한 작은 행복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힘들까. 그만 힘들고 싶다. 난 언제 행복해지지?라는 생각만 하며 지쳐있었다.
행복은 언제나 있었다. 내가 만족하지 않았을 뿐.
내가 지금 많이 괴로워서, 그 괴로움을 보상받고 싶은 만큼 더 커다란 행복을 기대했다.
지금부터라도, 언제 올지도 모르는 커다란 행복보다는 이미 내 곁에 와있는 행복에 기대 쉬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