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며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누군가 별말 없이 하는 말을 듣고 받은 감명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 사람은 특별한 의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 거였는데 그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꼭 시인 같았다. 본인은 시인인 줄 모르는, 그런 시인.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많다. 본인은 모르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양재역 앞의 붕어빵 집도 그중 하나다. 그 집 붕어빵은 2개에 천원이다. 요즘 물가로 봤을 땐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이다. 하지만 그 집은 단순히 2개에 천원이라고 적어두지 않았다. 무려 ‘붕어빵 1+1 단돈 천원’이라고 적어두었다.
출퇴근하며 그 카피를 매번 보는데, 볼 때마다 감탄한다. 엄마랑 지나갈 때도 정말 잘 쓴 카피지 않냐고, 내가 쓴 것도 아닌데 떠벌떠벌 자랑할 정도다. 마치 붕어빵 하나를 더 얻어 갈 수 있는듯한, 그냥 지나치기엔 꽤나 괜찮은 혜택처럼 보이는 카피. 세상엔 숨겨진 주역들이 정말 많다.
동료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장님은 공대 출신으로 원래 방송 장비를 다루셨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우리 부서로 발령을 받아 SNS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다. 과장님이 자의로 맡은 업무는 아니지만, 나는 그녀의 카피를 정말 좋아한다.
“0.2mm 얇은 줄로 잡는 8kg 대방어”, “바질을 넣은 향수가 잘 팔리다니?” 등 어떤 부분에서 시청자가 의외성을 느끼는지 캐치하고, 그 부분을 강조하는 카피. 콘텐츠에 대한 애정과 시청자에 대한 세심함이 없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는 카피다. 과장님의 채널은 우리가 운영하는 채널 중 가장 상승세다. 역시 모든 것엔 이유가 있다.
지난주엔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근 2년 만이었다.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잔치국수와 소주를 먹다 보니 대화는 금세 무르익었다
어쩌다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무던한 사람이 부럽다는 말을 했나 보다. 나는 쓸데없이 예민해서 나와 반대되는 무던함이 부럽다면서. 그러자 친구가 그런 나의 예민함과 섬세함을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오히려 무던한 사람이 나를 부러워해야 하는 게 맞다면서.
나는 왜 이들을 모두 “시인”이라 표현하고 싶었을까? 아마 나에게 시인이란 몇 마디의 말로 감명을 주는 사람이어서 그랬나 보다. 앞으로도 계속 발견하며 살아야지. 자신이 시인인 줄도 모르고, 시를 말하며 사는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