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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미술 Nov 19. 2024

한강소설 표지 읽기: 곽인식 회화(무제)

3. 노랑무늬영원-곽인식

한지에 찍힌 수백 개의 점들은 비슷한 맑은 톤인데, 절묘하게도 마치 그림 뒤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두운 색의 점뒤로 찍힌 맑은 노란색 계열의 점들 때문이다.


<노랑무늬영원>에 등장하는 화가 Q가 그린 그림에 대한 주인공의 감상이다.

소설 속의 여류화가 Q는 실제로는 재일남성화가 '곽인식(Quac, 1919~1988)'이다

노란색점이 빛의 입자처럼 박혀 있는  작품곽인식의 평면회화이다.(노란색의 차이는 조명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한강 작가는 실제 전시회에서 이 그림을 보고 한 면의 벽을 가득 채운 빛점들이 삶으로 가득 찬 감각처럼 느껴지며 압도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화가인 주인공 현영은 어느 날 교통사고로 손을 다치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소설 속 여류화가 Q의 그림은 현영이 화가로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이 책에는 '노랑무늬영원'이라는 표제어로 여섯 편의 중단편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모두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들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지만 마지막에는 가냘프게나마 희망으로 향해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회복이라는 것도 결국 이런 것이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겪은 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곽인식의 그림이 보여주는 쏟아지는 빛점들은 주인공 현영에게 삶에 대한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작품 85-2-21985,캔버스,종이에 채색, 242×162, 국립현대미술관
작품83-B,1983, 캔버스, 종이에 채색, 170×287cm,국립현대미술관

곽인식이 실제로 소설 속 작품처럼 종이에 붓으로 무수히 많은 점을 찍는 회화작업을 한 것은 그의 작업시기 중 후반부에 속한다. 점 위에 점을 겹쳐 찍음으로써 앞의 점과 뒤의 점의 차이로 인한 공간감을 형성하여 표면상에 심연을 발견하려 했다.

(좌)작품 63, 1963, 패널에 유리, 72×100.5cm 국립현대미술관. (우)무제1968, 철판,diameter 40cm,유족소장

곽인식의 초기작업은 유리, 돌, 금속, 종이 등 다양한 물질에 대한 탐구였다. 이처럼 재료의 물성을 화면에 반영하려는 작업은 서구의 아르테 포베라('가난한 미술'이라는 뜻으로 흙, 나무, 철 등 일상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예술을 바라보는 경향)일본의 모노하 운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등에 접근하는 예술)보다도 앞선 것이었다.  

작업은 초기에는 물질에서, 점차 평면으로 이동하게 된다. 후기의 회화작업은 평면적 속성을 지닌 종이에 여러 점을 포개어 놓음으로써 종이는 평면이자 두께를 가진 표면이 된다. 표면이란 결국 사물일 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므로 평면작업 또한 이전의 유리나 돌의 표면과 일관된 작업의 맥락이 된다.


소설 속의 여류화가 Q와 곽인식은 생애는 다르지만 끝까지 작업을 놓지 않았던  공통점이 있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비교적 많이 녹아있다고 하는 이 소설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소설 속 그림에 대한 화가의 고민으로  나타난다.

'노랑무늬'의 회화 작품을 표지로 하고 있는 '노랑무늬영원'은 실은 불도마뱀과 에 속하는 동물을 뜻한다. 앞발이 잘려도 다시 발이 자라나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 동물로 '회복'의 상징으로 소설 속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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