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장편 애니메이션 < 소울 >이 올해 개봉 영화 중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코로나 19 3차 대유행 이후 영화관에 작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 코코 >(2017)에서 사후 세계를 그렸던 디즈니 - 픽사는 이번에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중학교에서 재즈 밴드를 가르치는 음악 교사다. 그는 기간제 교사에서 정규직 교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행복하지 않다. 그가 진정 꿈꾼 것은 듀크 엘링턴,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전업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명 뮤지션과의 협업을 확정한 날, 그는 예기치 못한 맨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리고 영적 세계인 ‘태어나기 전의 세상’에 도달하게 된다.
꿈이 없는 삶, 그것은 무의미할까?
< 소울 >은 그가 영적 세계에서 ‘탄생 이전의 영혼’ ‘22호(티나 페이 분)를 만나면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렸다. ‘태어나기 전의 세상’은 어린 영혼들이 인간 세계로 가기 전, 삶의 목적인 불꽃(spark)을 찾는 곳이다. 이 영혼들은 자신의 불꽃을 찾았을 때, 비로소 지구로 가는 '통행증'을 얻을 수 있다. 조는 이 세계에서 만난 22호에게 '음악이 자신의 불꽃'이라 힘주어 말한다. 조 가드너는 어린 시절부터 재즈 뮤지션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으며 살아 온 람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이 영화는 '꿈을 따르는 삶을 살라' 식의 힐링 담론으로부터 아득히 떨어져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불꽃'은 있다. 하지만 <소울> 은 그 불꽃이 삶의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 말한다. 불꽃을 정의하기를 거부하는 '내려놓음'의 자세가 영화에 배여 있다. 조의 친구인 이발사 데즈는 이 영화의 태도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해군에서 제대한 이후 수의사가 되기를 꿈꿨으나, 딸의 병원비 때문에 비용이 덜 드는 이발사의 길을 택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꿈꾸는 대로 살지 못 한 자신을 비관하지 않으며, "모두가 역사에 남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 대목은 피트 닥터 감독이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허비 행콕으로부터 전해 들은 일화와도 연결된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유럽 투어를 진행 중이었던 허비 행콕이 연주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는 오히려 그 실수에 맞춰 새로운 즉흥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재즈는 즉흥의 음악이다. 삶은 허비 행콕의 걱정처럼 계획과 예측에서 빗나가는 순간이 많지만, 그때마다 재즈처럼 즉흥적인 그림을 그리며 지속된다. 이 일화는 피트 닥터가 < 소울 >을 구상하는 데에 있어 큰 영감이 되었다.
< 소울 >은 표면적으로는 영적인 신비를 그리고 있으나、이것은 도구적 요소일 뿐이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찬가로 귀결된다. 한편 반골적 면모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인간이 되지 못했던 22호가 겪는 단절, 멘토들로부터 부정당할 때 느낀 압박감, 무력감 역시 철저하게 현실 세계의 것이다.
음악이 완성한 영화, < 소울>
< 소울 >이 전달하는 ‘일상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결국 이 현생에 만족하라는 것이냐'며 메시지의 보수성을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상투성을 빼고, 그 위에 설득력을 싣는 것은 탁월한 형식미다. 분주한 뉴욕의 풍경을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낸 CG, 내세의 세상을 그린 독특한 영상미는 물론, ‘음악 영화’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가드너가 재즈 영화의 초반과 후반을 장식하는 뉴욕 신에서는 존 바티스트(Jon Batiste)의 경쾌한 재즈 음악이 깔려 있다. 존 바티스트는 CBS '더 레이트 쇼'의 음악 감독을 맡았고, 수많은 팝스타들과 협연해 온 뮤지션. 조가 ‘하프 클럽’에서 멋지게 들려주는 피아노 연주 역시 존 바티스트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따뜻한 분위기를 떠나,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영적 세계에서는 온도가 완전히 바뀐다. 일렉트로니카 - 앰비언트의 차가운 공간감이 소리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영적 세계를 장식하는 음악은 트렌트 레즈너, 그리고 애티커스 로즈의 작품이다.
전설적인 록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두 사람은 영화 특유의 신비감에 있어 큰 공헌을 했다. < 소울 >의 사운드 트랙에서, ‘Head Like A Hole'이나 ’March Of The Pigs'의 파괴적인 면모는 발견할 수 없다. 조가 영적 세계에 처음 도달했을 때 흘러 나오는 'The Great Beyond'와 'Falling'은 서정성과 장대함을 두루 갖춘 앰비언트 사운드가 빛난다.
순수한 ‘탄생 이전의 영혼’들이 뛰노는 곳에서는 8비트 게임을 연상시키는 음악이 통통 튀는 질감을 만들고, 'Epiphany'에서는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의 추억을 자극한다. 인상적인 ‘주제가’는 없지만, < 소울 >은 최근 수년 동안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중 음악을 가장 탁월하게 활용한 작품일 것이다. 음악이 영화의 감상을 공감각적 체험으로 끌어 올리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조는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22호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 소울 >은 하늘을 바라보고, 환풍구에서 솟구쳐 오르는 바람을 맞고, 피자 한 조각을 즐기는 것, 떨어지는 나뭇잎의 가운데에 삶이 있다고 말하는 영화다. 하잘것 없다고 여겨지는 미시적 순간이 일상의 소중함을 환기시키고,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만든다.
1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블루'는 삶의 의미를 소거해버리는 듯 막강하다. 펜데믹이 맹위를 펼치는 재난의 시대 가운데, 디즈니와 픽사는 꿈에 대한 공고한 신화를 과감히 해체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현세와 내세,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인간의 삶을 관조한다. 그리고 원대한 꿈과 목적의식이 없을지라도, 인간은 존재 자체에서 존엄을 찾을 수 있다고 달관한 듯 외친다.
영화의 초중반, 22호와 함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던 조 가드너는 ‘내 인생은 무의미했구나’라며 쓸쓸하게 말한다. 그처럼 ‘내 삶에 대단한 가치가 없다.’라며 자조하는 사람들은 적지 않다. 그와 같은 이들에게 < 소울 >을 권하고 싶다. 나 역시 그랬다. 펑펑 울고 영화관을 나서는 길, 마스크를 뚫고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어느때보다 상쾌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