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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파 Apr 05. 2022

BTS는 그래미에게 이용당했나?

2022 제 64회 그래미 어워드를 보고


4월 4일 오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의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에이브릴 라빈이 등장했다. 에이브릴 라빈의 입에서 'Kiss Me More'라는 말이 나왔을 때 짧은 탄식이 나왔다. 나도 내셔널리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Butter'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0주 1위를 차지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아 보였는데 아쉽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누군가에게는 아쉬운 결과가 생긴다. 지난해 <Justice>를 발표한 저스틴 비버는 음악적 성장과 함께 올해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무관이었다. 약 10여 년전 케이티 페리는 한 앨범에서 5개의 차트 1위 싱글을 배출하고도 트로피는 0개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팝스타인 마돈나는 전성기인 80년대에는 그래미상을 받지 못 했고, 1999년 <Ray Of Light> 앨범으로 첫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본 조비 역시 LA 메탈의 최전성기인 80년대에는 그래미를 받지 못 했고, 2007년이 되어서야 첫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칸예 웨스트와 프랭크 오션, 켄드릭 라마 등 현 세대의 아이콘들 역시 역사적 가치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 했다. 그렇다고 이 아티스트들의 가치가 절하될 수는 없다. BTS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래미 어워드가 흥행을 위해 BTS를 이용한다'고 말한다. 최고의 대우를 해 주는 듯 하지만, 정작 상은 주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 결정의 기저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깔려 있다는 말 역시 듣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프레임이 정말 피로하게 느껴진다. 현 시점 최고의 슈퍼스타인 BTS를 앞자리에 배치하고, 얼굴마담 격으로 쓴 것은 CBS나 주최, 행사기획 측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미 어워드 주최측 역시 BTS의 첫 그래미 수상을 내심 바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시상을 결정하는 것은 차트 성적도, 참석 여부도, 화제성도 아니다. 레코딩 아카데미를 구성하는 만 이천여명의 뮤지션과 업계 관계자들이다. 그러니까 빌보드 앨범 차트 86위에 그친 존 바티스트의 We Are도 당당하게 올해의 앨범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BTS는 참석과 동시에 수상이 확정된 존재인가? 모두에게 동등한 수상의 자격이 있다. 올해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 상을 수상한 도자캣(Doja Cat)과 시저(SZA)도 자격이 충분하다. 이 결과가 아시안 팝 스타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결론은 매우 섣부르고 게으르며, 근거 역시 희박하다. 아쉬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상을 못 받았으니 보이콧해야 한다'가 말이 될까? (실크 소닉의 수상을 기뻐하는 제이홉을 보면, 앞으로도 그들이 시상식을 보이콧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상 받으면 좋아할 거면서, 못 받으면 '로컬 잔치 따위'라고 말하게 되는 신포도의 마음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우리 좀 쿨해져보자. 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 얘기는 꼭 하고 싶다. 지금 BTS는 동양에서 온 손님도, 피해자 서사의 주인공도 아니며, 메이저 팝 산업의 화려한 일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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