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가 자극하는 누군가의 노스탤지어. 'Ditto'
지금 사람들은 보이 그룹을 듣지 않는다. 돌려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 어느때보다 걸그룹을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의 한국 가요계는 걸그룹이라는 키워드 없이 설명될 수 없다. 커리어 최대의 전성기를 누린 (여자)아이들과 아이브, 데뷔 초의 위기를 딛고 비상한 르세라핌 등이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했고, 이들은 모두 팬덤을 넘어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걸그룹의 홍수 가운데에도, 지난 7월 등장한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는 그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다.
뉴진스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ADOR)의 첫 번째 그룹이다. 뉴진스의 이름 앞에 처음 붙은 수식어는 '민희진표 걸그룹'이었다. 민희진 대표는 과거 SM 엔터테인먼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아, 샤이니와 레드벨벳, 에프엑스의 유니크한 컨셉트와 세계관을 치밀하게 주조한 주인공이었다.
뉴진스의 데뷔 EP 'New Jeans'에 실린 'Hype Boy'와 'Attention', 'Cookie'는 미국 하이틴 드라마와 Y2K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빌려온 결과물이다. 동시대의 아이돌이 화려한 '맥시멀리즘'을 쫓을 때, 뉴진스는 S.E.S 등 1세대 아이돌을 소환하는 미니멀리즘을 택했다. 화려한 패션과 스타일링 대신, 수수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운동장에서 춤을 춘다. 아티스트 250이 프로듀싱한 음악은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알앤비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다.
뚜껑이 열리자, 뉴진스가 일으킨 반향은 기대보다 더욱 컸다. 국내의 주요 음원 차트를 석권하는 것은 물론,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케이팝 걸그룹 중 유일하게 올해 롤링스톤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 앨범 Top 100'에 선정되었으며(46위), 'Hype Boy'는 롤링스톤 선정한 올해의 노래 24위에 뽑히기까지 했다. 완벽한 등장이었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선언이자, 90년대로부터 온 2000년대생들이었다.
지난 12월 19일 발표된 신곡 'Ditto'에 대한 열광도 첫 EP 못지않다. 'Ditto'는 2023년 1월 2일 발표될 싱글 앨범 'OMG'의 선공개 싱글이다. 발표와 동시에 멜론 차트 1위에 올랐고, 뮤직비디오 역시 1천만 건의 조회수를 넘겼다. 데뷔작에 이어 다시 한번 프로듀서 250이 프로듀싱한 이 곡은 저지 클럽(Jersesy Club)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후반 미국 볼티모어 지역에서 탄생한 볼티모어 클럽 뮤직이 뉴저지의 뉴워크 지에서 더욱 심화되어 발전한 것이 '저지 클럽'이다. 하우스, 알앤비, 브레이크 비트 등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받아, 4분의 8박자의 빠른 비트를 반복한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지난해부터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래퍼 드레이크(Drake)의 앨범 < Honestly, Nevermind >(2022), 비욘세(Beyoncé)의 복귀작 < Renaissance >에서도 이 장르의 영향이 묻어난다.
'Ditto'는 오늘날 미국 언더 그라운드 클럽 신은 물론, 드럼 앤 베이스로 상징되는 1990년대 영국 레이브 문화, 케미컬 브라더스의 브레이크 비트 역시 소환한다. 캐럴의 종소리 없이, 신시사이저 멜로디와 공허한 공간감만으로도 겨울 노래가 된다. 작사에는 우효와 검정치마가 참여하면서, 한국 인디 음악과의 상호 작용을 지속했다.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요소가 파편적으로 뒤섞이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케이팝으로 완성되었다.
슬픔의 케이팝, 'Ditto'
"훌쩍 커버렸어 함께한 기억처럼 널 보는 내 마음은
어느새 여름 지나 가을 기다렸지 all this time"
- 'Ditto' 중
신선한 케이팝 'Ditto'는 언뜻 수줍은 짝사랑 노래처럼 들린다. 그러나 'Ditto'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공개된 뮤직비디오를 보아야 한다. 재치 있는 광고 영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온 '돌고래유괴단'의 연출은 시청자를 2000년대 어느 즈음으로 인도한다.
영화 '벌새'에서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연기한 배우 박지후가 '반희수'로 출연한다. 뉴진스의 공식 팬덤 '버니즈'를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반희수는 학교에서 뉴진스의 멤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캠코더로 친구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쉬는 시간에 헐레벌떡 매점으로 달려가는 모습도 정겹다. 하지만 현실의 이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어느 날 뉴진스 친구들은 과거가 된다. 유령처럼 자취를 감춘다. 같은 반 친구들은 희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에 찍었던 캠코더 영상을 재생하는 순간, 사라졌던 친구들은 언제 헤어짐이 있었냐는 듯 나타나 희수를 반긴다.
'버니즈와 함께 맞는 첫 겨울을 위해 준비한 수록곡'이라는 곡 소개가 무색하게, 'Ditto'는 작별을 암시한다. 팬들은 이 서글픈 구도에서, 아이돌 팬덤이 '현생' 속에서 우상들을 잊어가는 그림을 떠올렸다. 우상은 언제까지 삶의 최우선 순위일 수만은 없다. 삶의 형태는 생애주기에 따라 바뀌어 갈 것이고, 우상들은 실망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
'Ditto'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2018년과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가 열렸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인 동시에, '대중음악을 망치는 주범'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케이팝에 대한 팬심을 응축한 파티였다. 이 파티에 참석한 이들은 여러 차례 케이팝에 실망하고, 좌절했던 문화 소비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그 시절의 케이팝이 존재했다.
우리는 'Ditto'의 아련함에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까. 이렇다 할 학창 시절의 추억이 없더라도, 이 기획은 막연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구오빠', '구언니'를, 또 누군가는 빛을 잃은 옛 인연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팬덤과 아이돌의 관계 외에도 다양한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스산한 뮤직비디오의 색채를 보고 죽음과 삶의 단절을 떠올리기도 다. 데뷔한 지 반년이 지나지 않았고, 발표한 곡도 다섯 곡뿐이다. 그러나 뉴진스는 벌써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다. .
- 이현파(유튜브 왓더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