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 그리고 음악
마블은 무너지고 있었다. 10년 이상 이어진 ‘인피니티 사가’가 21세기의 새로운 신화가 되었다면, 그 뒤를 잇는 페이즈 4(Phase 4)는 처참한 실패였다. <스파이더맨 : 노웨이홈>(2021)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빠진 자리를 대체할 구심점은 없었다. 멀티버스의 남용, 디즈니 플러스에서만 볼 수 있는 TV 시리즈 등, 방대해는 세계관에 비해 몰입도는 떨어져만 갔다. ‘테마 파크’라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비판도 무색해졌다. 테마파크의 역할도 제대로 하는 것이 오늘날의 마블이었으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는 흔들리는 마블에 있어 오아시스 같은 영화다.<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는 은하계에서 만난 결핍 투성이 유사 가족이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유사 가족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이번에도 재미있었다. 마블에 기대할 수 있는 유머와 장르적 쾌감을 모두 갖춘, 서정적이면서도 장대한 시리즈의 마무리였다. 멀티버스에 대한 이해도 필요 없었다. 그저 마블 캐릭터의 희노애락에 공감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마블에 등을 돌린 관객들이 다시 영화관에 돌아온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물론 '끝내주는 음악' 얘기도 많이 해야 마땅하다. 가오갤 시리즈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유독 크다. 별종들의 우주 활극에 지구의 올드팝이 울려퍼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들은 우주의 명운이 걸린 싸움 앞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레드본의 ‘Come And Get Your Love', E.L.O의 ’Mr Blue Sky', 마빈 게이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등... 이 영화는 매 시리즈마다 올드팝으로 시작해 올드팝으로 끝났다. 음악은 주인공 스타로드의 노스탤지어이자, 가디언즈의 유쾌한 캐릭터성을 십분 강조한다.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Awesome Mix(끝내주는 음악 모음집)’은 수많은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는 플레이리스트가 되었다.
마법같은 선곡의 주인공
<가오갤> 시리즈 외에도 마블은 대중 음악을 멋지게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아이언맨을 상징하는 AC/DC의 ‘Back In Black', <토르 : 라그나로크>의 별점을 최소 반 개 이상 높였을 레드 제플린의 ’Immigrant Song' 등, 여러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마블 영화의 모든 선곡은 단 한 사람이 맡았다. 마블의 ‘뮤직 슈퍼바이저’를 맡고 있는 데이브 조던(Dave Jordan)이다. 뮤직 슈퍼바이저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제작을 위한 음악을 선택하고, 저작권 문제를 협상하는 직책이다. 데이브 조던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뮤직 슈퍼바이저다.
조던의 선곡은 이번에도 ‘끝내준다.’ 전작이 70년대 팝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스타로드가 mp3 플레이어 ‘준’을 손에 넣었다는 명분이 있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같은 70년대 소울부터 라디오헤드 등의 90년대 록, 플로렌스 앤 더 머신 등 2000년대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큐레이션이 놀랍다.
데이브 조던이 선곡한 음악은 관객의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인물의 희노애락을 대사보다 더 훌륭하게 수식한다. 가디언즈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떠나지만,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을 더 듣고 싶은 것은 욕심일까. <가오갤 3>를 완성한 노래들을 몇 곡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1. 라디오헤드(Radiohead) - Creep - Acoustic (1992)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오프닝을 장식한 노래. ‘Creep'은 이 시대 가장 창의적인 록밴드인 라디오헤드의 대표 히트곡이다. 물론 라디오헤드는 이후 'Creep'보다 더 위대한 음악을 여럿 내놓았지만, ‘Creep'이 기념비적인 루저의 찬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영화에서는 로켓과 스타로드가 겪는 결핍과 트라우마를 대변해 주었다. 1집 <Pablo Honey>에 실린 오리지널 버전 대신, 싱글에 실린 어쿠스틱 버전이 실리면서 서정성이 더 강조되었다.
2. 스페이스호그(Spacehog) - In The Meantime(1995)
- 허밍음이 인상적인 이 곡은 개봉에 앞서 공개된 티져 영상에도 삽입되었고, 영화에서는 우주복을 입은 가디언즈가 우주 공간으로 뛰어들 때 흘러 나온다. 영국 출신이지만 뉴욕에서 결성된 밴드 스페이스호그는 데이비드 보위의 글램록을 추종한 밴드다. 보위가 그랬듯이 우주와 외계인에 대한 관심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우주를 바라보는 복고 밴드의 대책 없는 사랑 노래라, 사랑으로 가득 찬 우주 바보들의 여정에 안성맞춤이다.
3.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 No Sleep Till Brooklyn(1986)
- 전설적인 랩 그룹 비스티 보이즈는 백인도 쿨한 랩을 할 수 있음을, 그리고 록 음악의 기타 디스토션이 랩과도 어울릴 수 있음을 증명한 주인공이다. ‘No Sleep Till Brooklyn'은 가디언즈가 친구를 구하기 위해 오르고와 유쾌한 사투를 벌일 때 흘러나왔다. 슬레이어의 케리 킹이 연주한 기타 솔로, 그리고 격렬한 랩은 관객의 전의마저 불타게 만든다. No! Sleep! Till Brooklyn!
4.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 - Do You Realize??(2002)
- 아방가르드한 음악과 무대, 웨인 코인이 쓴 괴짜같은 가사, 그리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두루 갖춘 록밴드가 바로 플레이밍 립스다. 'Do You Realize'는 플레이밍 립스의 대표곡이자, 이들의 공연에서 늘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하는 곡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각이 담긴 이 노래는,영화의 주제 의식과도 궤를 함께 한다. 플레이밍 립스는 두 차례의 내한 공연을 펼쳤지만, 그때 그들을 알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5.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 The Machine) - Dog Days Are Over(2009)
- 이 영화의 엔딩 장면, 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Dog Days Are Over'가 흘러나오자마자 탄복했다. ’마블이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 여기서 극한을 찍었구나' 생각했다.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인 찰랑거리는 하프 소리가 희망을 예고한다. 그리고 여성 보컬 플로렌스 웰치(Florence Welch)의 당찬 목소리가 빠른 곡과 함께 달려 나간다. 모두가 춤을 춘다. 이 노래는 가디언즈의 입을 대신해 전하는 승리 선언이자, 모든 삶에 대한 찬가다. “너의 어머니, 아버지를 위해 달려. 너의 아이들, 형제 자매들을 위해 달려. 모든 사랑과 그리움을 뒤로 하고!”
6. 레드본 - Come And Get Your Love(1973)
- 모든 것은 이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이 노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의 문을 경쾌하게 열어젖혔고, 이제는 시리즈 자체를 상징하는 클래식이 되었다. ‘Come And Get Your Love'는 네 명의 미국 원주민으로 구성된 밴드 레드본의 대표곡이다. 이 펑키한 노래는 발표 당시에도 빌보드 핫 100 차트 5위에 오르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갤 3>의 쿠키 영상을 꼭 챙겨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