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벗어났을 뿐인데, 법정에 섰다

안 해본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by 경자코치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는 건, 모른 척할 수 없는 장면을 마주한다는 뜻이었다.



국가엔 국회의원이, 아파트 단지엔 동대표가 있다.



작년 12월,
나는 생애 처음으로 법정 증인석에 섰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3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형님이 형사 피소를 당했고,
내가 당시 동대표로서 증인을 서 줬으면 한다고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엔 ‘증인요? 어… 음… 제가 도움일 될까요…’ 하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잘못된 사람을 증언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사건의 내용은 황당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의를
단지내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하면서 얼굴과 음성이 송출된다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이유였는데,

황당한 것은 고소를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함께 입대의 활동을 하던 시니어였다.


입대의 회의는 입주민의 대표들이 모여
아파트의 발전을 논의하는 자리다.

그런 자리는 늘 투명해야 하지 않는가?

런 차원에서 생중계는 단지 입주 초부터 시행해온 우리 단지의 좋은 제도였다.

그 회의를 입주민에게 공개하는 게
범죄가 되는 장면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내 얼굴과 목소리가 국민에게 공개되는 게 싫다”고 말한다면
그 직을 내려놓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데 이 일은
좋게 풀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

동대표 임기초부터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임기 끝 무렵에 갑자기 자신의 의견들을 잘 안받아준다고

고집과 아집으로 번졌고,
결국 고소로 귀결됐다.

그.동.안. ‘기분 상했다’는 감정이
형사 사건이 되는 순간을
나는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법정이라는 공간에서 느낀 것들

법정은 생각보다 작았다.
웅장함보다는
아담한 회의실에 가까웠다.

앞 사건이 끝나길 기다리며
방청석에 앉아 있었는데,
원치 않게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듣게 됐다.


울먹이는 피고의 목소리,
날 선 검사의 질문,
변호사의 차분한 변론.

그리고 판사의 한마디로
다음 선고기일이 잡히고,
사건은 그렇게 흘러갔다.


복도에 붙은 사건 목록은
병원 대기표처럼 디지털화 되어있었는데,
가려진 이름과 사건 유형만이 줄지어 있었다.


‘아, 여기선 누군가의 근심과 괴로움이, 여기선 단지 하나의 사건이구나.’


증인석에 앉았을 때
나는 의외로 긴장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미리 정리한 질문,
검사의 신문,
판사의 짧은 확인 질문.

담담하게 답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몇 년전 같았으면
검사와 판사의 권위에
몸이 먼저 굳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요즘 그들의 권위는 땅아래로 떨어진지 오래다.

이것은 그들의 태도만큼만 느껴진다.

정치적인 판결이 아닌,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울 때만 존중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소송이 너무 쉬운 나라에서 산다는 것

이 일은
형님의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나 역시 지금
소송을 당한 상태다.


이제는 확신한다.
우리나라는
소를 제기하는 게 너무 쉽다.


억울함을 푸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해소하는 도구로
법이 쓰이고 있다.


그 피해는
경찰, 검찰, 법원 모두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결국
국민 개개인에게도 돌아온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소제기를
나이가 들수록 더 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사람은 관대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기분이 상하면,
대화를 거치지 않고
고소부터 떠올리는 사회.


그 안에서
‘함께 산다’는 감각은
점점 사라진다.

더 냉철해질 뿐이다.

나이들었다고 어른은 아닌 것이다.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는 증거

형님에 대한

최종 판결은
선고유예였다.

무혐의가 아니라는 점이
솔직히 아쉬웠다.
벌금형보다 낫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켠은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도 형님은
나에게 여러 번 고맙다고 했다.


나는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다.
그저
옳은 편에 섰을 뿐이다.


퇴사 이후,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그 대가는
이런 일들이다.


법정에 서고,
고소를 당하고,
갈등의 한복판에 서는 것.



내가 회사 다닐때는

회사일 외에는 모든 게 귀찮고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울타리를 벗어나서

다양한 세상에 발을 딛으니 다사다난함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세상은
가만히 있는다고 살아지지 않는다.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겪는 일의 밀도가 달라진다.


나는 지금
그 밀도 높은 삶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한 가지

혹시 당신은
지금 울타리 안에 있는가.
아니면
이미 밖으로 나와 있는가.


울타리 안은 안전하다.

대신
보는 풍경은 제한적이다.


울타리 밖은 거칠다.

대신
사람과 세상의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아직도

이 선택이 늘 옳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울타리 밖에서 겪은 일들은
나를 부수기보다
나를 더 단련시키고 있다는 것.


앞으로도
세상은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당하게,
넘어설 수 있는 한계를
하나씩 넘어가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