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우 May 14. 2020

기생충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무계획’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예정보다 개봉이 늦춰진 기생충 : 흑백판을 감상했다. 색을 지우고 흑과 백으로 만 포커스를 둔 이번 버전은 분명 빈부를 그려내지만 그 안에 절대적인 선과 악의 경계는 없는 이 영화의 중심 뼈대, 즉 그 결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히 매력적인 장치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색을 죽임으로써 시각에 의존하기보다는 청각이나 촉각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후각에 좀 더 신경이 집중되고 그러한 부분들에 좀 더 몰입을 하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흑백 버전의 탄생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컬러 버전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흑백 버전을 감상하는 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원래의 색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과 모르는 상태에서 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영화의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면 극 중 충숙이 기정에게 사기를 쳤어도 대성할 년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기정은 그런 인물이다. 분명히 손재주가 있고, 상황 파악과 대처능력이 뛰어난 그런 캐릭터다. 본인 스스로가 본인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신임을 얻으며 본인보다 부유한 사모에게 기가 눌리지 않음과 동시에 되려 사모를 손바닥 위에 올리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녀는 충숙의 말처럼 무슨 일을 했어도 잘 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집주인보다도 오래 그 집에 머물렀지만 일가족의 계략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길바닥 신세를 지게 된 문광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날 밤, 문광은 집 앞 cctv 카메라의 전선을 끊어 버린다. 한바탕 사단이 일어난 뒤 근세와 문광을 뒤로하고 기택은 지하실에서 빠져나온다. 밑에서 위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레버를 챙기고 숨겨 그 행방을 알 수 있는 건 오로지 기택뿐이었다. 이 두 복선이 극 후반부에서 회수가 될 때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 소위 말하는 봉테일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기택, 기정, 기우가 별 다른 계획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잡히는 구도는 통일된다.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더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가기만 한다. 이보다 더 아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중에도 더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간다. 최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는 아직 최악이 아니라는 말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최악의 순간에는 최악조차 말할 수 없다는 말이 터져 나오는 변기 위에 앉아 담배를 물던 기정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기생충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영화다. 과거가 어땠는지 얘기하느라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 예측하느라 나는 종종 현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만다. 망각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거 일지도, 그저 현실을 부정하는 거 일지도 모르지만 2시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 현실을 돌아보고 그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한다는 건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는 일만큼이나 대단한 일일 것이다.

기생충은 대단한 영화다. 대단하다고 말함과 동시에 안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을 부정할 수 없기에 더욱더 대단하다 여겨진다.

나는 2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면 과연 어떤 느낌이 들지가 심히 궁금하다.


써서 삼키지 못할 정도만 아니라면 바랄 것이 없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9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