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여행작가가 되는가
이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 있는 챕터의 제목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책의 51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있다.
<<인생의 가파른 계단 하나를 가까스로 오르고 나서, 조금쯤은 트인 장소로 나온 느낌이 들었다. 여기까지 헤쳐 나온 이상 앞으로는 어떻게 든지 잘 되어갈 것 같은 자신도 생겼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고,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며, 다음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올해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지나는 나이대로 올라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생의 가파른 계단’과 같이 나도 역시 새로운 세대로의 가파른 계단에 올라섰다.
새로운 계단 위에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좋을까.
내가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10년 10월 20일 양평에 있는 수종사에서였다. 한가한 수요일 오후 휴가를 내고 찾은 곳이다. 산 아래에 주차를 하고, 등산복도 아닌 일상복을 입고 가파른 산을 올라 수종사에 다다랐다.
수종사 한편에 있는 500년이 넘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슬로우모션으로 떨어지는 은행잎이 손바닥 위로 떨어질 때쯤 ’여행작가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이었다. 기분 좋게 불던 상쾌한 바람과 온 마당을 아름답게 뒤덮은 은행잎의 선명한 색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물론 전부 거짓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는 순간을 책에서 아래와 같이 적었다.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추어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힐튼은 재빠르게 1루 베이스를 돌아서 여유 있게 2루를 밟았다. 내가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다.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새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조용히 춤추듯 내려왔는데,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내가 여행작가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동기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그것처럼 멋있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여행작가‘라는 말은 여행과 작가가 붙어있는 말이다. 우선 여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때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어 살아가는 방향에 큰 영행을 주었다. 첫 여행지가 이스라엘이었던 것과 온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 살았던 경험도 전환점으로서의 여행이 나에게 주는 의미였다.
작가라는 말은 무언가를 만들고 또한 대부분 무언가를 쓰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올해로 일기를 35년째 쓰고 있는 나도 어떤 면에서는 작가가 아닐까.
이렇게 의미 있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여행작가‘라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거짓말이라도 적어보며 여행작가를 운운하는 것은 앞으로 정말,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도전을 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멋진 순간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고 싶다.
<<이제부터의 긴 인생을 소설가로 살아갈 작정이라, 체력을 지키면서 체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의 문장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밝힌 가장 직접적인 그의 ’달리는 동기’이다. 이 분의 라이프스타일을 흠모하고 그의 컬렉션을 책장에 소중하게 보관하는 나로서는 같은 방법으로 앞으로의 여정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인생의 가파른 계단에 올라서 더 남아 있는 계단을 넘기 위해 그처럼 지난하게 달리고 쓰기를 반복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은 그처럼 느긋하게 살 수는 없지만 몇 년 뒤의 느긋한 시간을 위해 오늘부터 타이트한 준비를 할 수밖에.
새로운 계단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조직에 9시부터 6시까지는 시간을 헌납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이다. 그래도 새로운 목표로 (그의 표현대로) 얇게 저민 시간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여행작가로의 길을 시작할 것이다. 달리는 여행작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