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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쉽게 이해하기!

동기-목표-방법-도구의 변화에 주목하자!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글들을 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예측할 수 있는 어떤 유형의 무엇으로 가늠하기에는 그 양상이 너무나도 그 전 산업혁명에 비해 복합적이고 세분화되어 있어 정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해 봤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는 동기가 있다. 그리고 목표가 있다.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찾고 도구를 활용하여 그것을 달성한다.


1차 산업혁명은 생존을 위해 사냥하고 경작하던 인간 노동 시대에서, 기계 기술을 빌어 인간의 노동에 기계가 더해져서 대량생산이라는 결과를 얻게 됨으로써 다수의 인간이 최소한의 의식주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발판이 마련된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동기는 생존이었으며, 목표는 대량생산이었고, 방법은 기계를 도구화한 기술이었다.


2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계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기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보다 복합적인 과제를 수행하고 이를 지속적이며 안정화되도록 만들어 삶을 영위하게 된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을 수 있다. 동기는 안정된 삶이었으며,  목표는 자동화였다. 방법은 전기를 활용한 다양한 전기 전자 기술을 개발, 도구화한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안정된 삶 속에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보다 다양한 관계망의 정보를 취득함으로써 관계 욕구로 발전된 것이다. 동기는 사회적 연결, 관계 욕구 충족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며, 목표는 정보화 사회였다. 방법은 통신 기술을 활용한 네트워크였으며, 도구는 그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의 인터넷 공간이 곧 정보화 세계의 진입로가 되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무엇인가?

바로 앞선 설명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적 동기는,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화된 삶 속에서 이젠 단순한 데이터로써의 정보가 아닌, 인터넷 공간이 현실의 삶과 공존하며, 그 가상현실에서의 삶이 더 친숙하고 편리하게 다가옴으로써, 무궁무진한 가상현실의 삶 속에서의 자기표현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망이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동기는 자아실현의 욕망이며,  목표는 가상현실에서 초지능을 갖추며 인공지능을 도구로 한 삶이다. 방법은 현실과 구분이 불가할 정도의 성능을 지닌 초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디지털 트윈 즉 가상현실 속 나를 만들어 자아실현의 도구로 삼는 것이다.

15년 전에는 유비쿼터스 시대가 곧 다가올 것을 말하면서 미래의 네트워크 삶을 상상했으나, 지금은 유비쿼터스 보다 훨씬 더 엄청난 기술이 현실화되고, 이제는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런 화두의 단골 양념 정도로 전락했을 정도다. 이는 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실체적인 인공지능 시대가 임박했음을 방증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4차 산업혁명으로 사라질 직업과 유지될 직업을 분류하며, 마치 대단한 것을 예측한 것 마냥 서로 앞다퉈 기사화하고 강연하는 것을 봤으나, 이제는 그런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불과 2~3년 만에 알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차 산업혁명으로 사라질 직업은 가시적인 기술 발전을 예측하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겠으나, 유지될 직업에 있어서는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한 종교인, 카운슬러 상담업, 창작이 주된 업인 소설가, 음악가 등을 짐작으로 꼽았었는데, 이게 불과 몇 년 만에 아닐 수도 있음을 쉽게 사례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인공지능이나 기계에 믿음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자신의 고민을 사람이 아닌 컴퓨터에게 상담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사람보다 컴퓨터를 신뢰하는 현상이 목도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의사가 아닌 로봇에게 수술을 받거나, IBM인공지능 왓슨에게 진단, 처방을 받는 것을 더 신뢰한다는 환자들의 조사 결과가 나왔고, 기계나 컴퓨터 인공지능과 대화함에 있어 점점 더 그 친숙도가 높아지고 있음이 챗봇의 파급 효과를 통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AI가 작곡한 노래가 불려지는 현실 속에서 함부로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예단, 속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은 예측 불가의 영역이며, 그에 따른 섣부른 준비 조차 무의미할 수 있기에 기업들이 다소 투자에 소극적인 것도 사실이다. 디지털 혁명 이후 꾸준히 무어의 법칙에 따라 사업 계획을 세우던 전기전자 관련 기업들이 2010년 이후 급성장하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것을 따르기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탓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무엇에 발맞춰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장비 및 인력을 확충해야 하는지 좀체 예상할 수 없어 그 어느 때 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이는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영세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어느 세미나에서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 강연자는 이런 말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생존 전략은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망해도 최소한 좋아하는 것을 했음에 위안을 삼을 수 있지 않느냐라는 다소 조소 섞인 말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반박할 수 없었다. 이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보다 내일이 걱정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난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인간미(humanity)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다소 뻔한 상투적인 결론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God) 같은 AI가 등장하고, 현실 같은 가상현실이 마련되어도, 결국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 중심에서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버틴다면, 결국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난 확신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결과를 달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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