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4차 산업혁명! 배우지만 말고, 연구하자!

지식은 암기로 채울 수 있으나, 깨달음은 시간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2020년 첫 브런치 글이다.

1월 2월을 지나 어느덧 3월이다. 줄곧 짬을 내어 글을 쓰고 싶었으나,

작년과는 또 다르게 글 한 줄 쓰기가 쉽지 않았다.

나이 먹고 게을러져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새벽에 잠에서 깨어 깜깜한 방 천장을 바라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면,

두려움이 앞서서인 것 같다.

아마도 그 두려움의 원천은 지식이 깨달음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가 분명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두려움을 추스르고 이렇게 글을 쓰도록 만든 것은

불혹을 지나 지천명을 얻는 과정이라고 내 나름의 합리화된 해석을 한 덕분이다.

그래서 이와 무관하지 않은 나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 배우지만 말고 연구하자!'라고 큰 제목을 달고,

작은 제목으로는...

'지식은 암기로 채울 수 있으나, 깨달음은 시간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그렇다 이번 글의 핵심 키워드는 시간(time)이다.


우리는 심상치 않는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 반 불안반의 시대를 살고 있다.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말이 학문적 키워드가 아닌, 영화 제목으로 나올 때(2017년)부터 난 일찍이(?)

눈치챘다;;;

영화 singularity 포스터

그래서 닥치고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각종 세미나를 묻지 마 참석하고,

관련 책, 사이트, 영상 등을 탐닉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배운다고 얻을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이유는 '자아실현'이라는 목표가 있어야만 지식이 소비될 수 있는 그런 산업이기 때문에,

배워도 내가 무엇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고 활용할지 목표 의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비유를 하자면,

청결 및 건강을 위해 원숭이에게 수저 사용법과 세척법을 알려준들,

스스로 그것이 왜 필요한지 깨닫지 못하면, 

훈련된 조건반사적 행동 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그 이전의 대량생산, 편의성, 정보교환 등의 공동체적 목적의식으로

발생된 산업혁명들과는 그 태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원에서 배워 뭔가를 얻겠다는 생각은 좀 접었으면 한다.

그걸 배우는 순간 또 다른 무엇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지금은 업데이트 세상이다.

컴퓨터도 밤새 지가 알아서 업데이트를 한다.

인간의 지식도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그리고 내일은 소용없게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당장 필요한 지식만을 취하면 될 것이다.

그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즉, 부모나 선생님, 강사, 교수가 지식을 골라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필요한 지식을 직접 취해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려면 주체적인 사고로 내 삶을 조망하고 당면과제를 찾아 학습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바로 연구라고 말하고 싶다.


연구는 목적의식과 목표가 분명해야 가능하다.

막연한 삶에 대한 안정만을 위해 연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예전의 삶은 정해진 과목, 정해진 범위, 그리고 정해진 시험만 보면

안정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렇게 살려면 공무원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이 인기인가 보다.

하지만 그 공무원조차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곧 하늘을 찌르게 될 것이다.

작금의 '타다'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 기존의 서비스의 융합이 사회 갈등을 야기하며 이슈가 될 때,

공무원들이 나서서 선제적 조치를 취했더라면, 최소한 이런 불필요한 적대적 관계는

만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우리 사회는 암기 잘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우대했다.

사람은 타고나기를 키가 큰 사람, 힘이 센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등 다양하지만,

우리 사회는 암기를 잘하는 사람이 기득권을 갖도록 설계되어왔기에

현재의 기득지(기득권+그들의 지식)는 모두 암기 잘하는 이들이 만든 시스템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10년 이상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인터넷을 넘어선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암기만 잘하는 이들이 기득권이 되어 이 시대를 이끌기에는 무리다.

사고하고, 도전하며, 연구하는 이들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의 리더들이 이런 경향에 발맞춰 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기득지를 버리고 새로운 지식과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미 그들은 심리적 매몰 효과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선행 학습된 지식을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하기에는

이들의 기득지는 너무 깊이 박혀 있기에 사고의 알고리즘을 바꾸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과학을 지식이 아닌 태도라고 말하는 것이다.

과학적 지식은 끊임없는 가설적 의심과 탐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교육도 배움도 이제는 그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멘토, 멘티라는 키워드가 몇 년 전부터는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이유는 멘토라는 이들이 구시대적 경험의 유물로 멘티들의 창조적인 사고를 자칫 해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센터 세미나 참석 후에 이런 우려를 후기에 기록해서 여러 번 전달했으나,

결국 변화를 주려면, 이들이 변해야 하는데 도제식 교육의 기득지를 바꾸려고 할까? 의문이다.


예전에는 벤처기업이라더니 요즘은 유니콘 기업이라는 말로 기대치만 더 키우고 소수 업체에 몰빵 하는

분위기가 우려스럽다. 차라리 지금은 4차 산업혁명에 함께 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중소업체들의 체질 변화를

더 지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설익은 기업에 묻지 마 식으로 판을 키우기보다는 

각각의 경험적 데이터를 이제는 경쟁력으로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얻고자 하면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너무나도 많은 데이터가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데이터를 구분하여 취하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어

조금씩 전진하면, 최소한 이 변혁에 도태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근근이, 고만고만, 데면데면 살면서 물리적 시간을 선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인 '자아실현'의 목표가 선명해질 테니 말이다.

허례허식으로 체면치레 허세 떨고, 거품으로 규모를 키우며, 기득권에 충성하고, 

혈연 학연 지연으로 좋은 줄 잡아 잘 먹고 잘 사는 시대는 앞으로 없을 것이고 없어져야 한다.


사업자라면 고기 먹고 싶을 때 돼지고기 한 근 사서 먹을 정도의 여유만 있다면 너무 욕심내지 말고

한 걸음 멀리 서서 변화하는 시장 욕구(market needs)에 빠른 전환, 혁신을 꾀할 수 있도록 사업체를

가변적으로 구조 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근근이 버틸 수 있다.

그러다 기회가 오면 잡는 것이 바로 사업의 성공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고만고만 일하기를 권한다.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업무시간에는 성실히 일하지만, 야근하며 충성하는 즉, 공사 구분 없이 일하는 것은 멈추라는 말이다.

개인의 삶을 누리기 위해 일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장 나 혼자 힘으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최소한 생각의 알고리즘은 그렇게 장착하라는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과 발맞추며 새로운 혁신에 뒤처지지 않고 신지식으로 무장해서 사업주와 

동등한 갑&갑 지위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관계도 앞으로는 데면데면 두루두루 넓힐 필요가 있다.

기득권 특정인들과 친밀도를 높여 뭔가 편익(benefit)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는 자신을

언제 어떻게 위기에 빠트릴지 모르는 약점(weakness)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사회면 뉴스를 보면 더 이상 예를 들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나의 뜻이 옳고 정당하다면, 불특정 다수의 지지(follower)를 이끌 수 있는 그런 위치를

점하는 것이 더 효용(utility) 가치가 있다.

굳이 '데면데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무런 대가 없는 관계, 부담 없는 관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궁극적으로는 난 이런 관계가 부모 자식 간, 형제간, 친구 간에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현재의 인간관계는 늘 뭔가를 주고받고, 기대하고, 특정한 날(경조사)이면,

관계를 정량화하게 만드는 묘한 관습을 갖고 있다.

오죽하면, 요즘 트렌디한 작가 하상욱의 글 중에 재치만점이라고 다들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구가

"고민하게 돼 우리 둘 사이, 축의금"이겠는가?!

사실 금전적인 부담보다도 더 힘든 건 황금 같은 주말 시간을 그런 경조사를 쫓아다니는데 쓰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는 지인의 일면식도 없는 누구 결혼식, 누구의 장례식 가서 당사자와 

어색한 눈 맞춤은 없도록, 이제는 진짜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는 시간을 갖는 자가, 세상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득지는 새로운 지식(단, 도덕적 윤리적 정의로운 목적의 지식) 앞에서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위의 예시처럼 아무리 혁신 아이템이라도 지향점이 정의롭지 못하면 시장에서 거부될 수 있다"

기존의 관습적 관성적 모든 태도에서 벗어나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와 자세가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을 향유하는 현대인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화  제목에서나 나올법한 아득한  미래 2020년이 도래되었다.

2020년!!! 글로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숫자다. 

이 혁명의 시대에 모든 것을 바꿔 새롭게 생각하지 않으면 훗날 내 자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전한 나만의 물리적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첫 단계다.

그다음에 기존의 모든 편견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매사에 임한다면 우리는 뒤쳐지기는커녕

4차 산업혁명의 선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끝 -

이전 08화 AI가 스스로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