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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쁜 날들

자존심: 칭찬은 싫지만, 인정받고는 싶다니

3월 4일, 정신과 상담 + 헤비 신곡 <늘>

by 이메다
내가 복기하려고 쓰는 상담 기록



요즘 나는 상당히 안정된 상태다.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격하게 우울하지 않지만, 크게 즐겁거나 행복하지도 않다. 별 흥미도 우울감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에 가깝다. 약간의 공허함을 견디며 무미건조하게 3월 8일로 다가온 PSAT을 준비하며 문제를 푸는 게 일상의 전부다. 오늘 점수가 좋으면 기분이 좋고, 점수가 나쁘면 기분도 나쁘고. 그것만이 내 일상의 고저 차를 만들고 있다.


오늘은 약이 다 떨어져서 병원에 갔다. 10달쯤 전 끊은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한 건 2주 전이었다. 임용일과 개학일이 다가오다 보니 점점 조바심이 강해지고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져 다시금 병원을 찾았다. 가벼운 상담을 마치고 선생님은 내게 '약을 좀 드릴까요?' 하고 물어봤다. 나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약과 병원에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의사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혼자서 견디기 힘들면 그런 거라도 믿고 기대야죠. 낭떠러지에 안전 장비 없이 뛰어들 순 없잖아요'라며 다시 약을 먹는 걸 권했었다. 그렇게 다시 정신과 진료가 시작됐다.


"어~ 이메다씨. 오랜만이에요. 지난주는 좀 어땠어요?"

의사가 여느때와 다름 없이 잔잔하지만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괜찮았어요. 사실 제가 다시 행시 준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문제를 풀다 보니 별 생각이 안 나서…. 전처럼 좀 먼 미래 생각이랑 불안이 좀 줄어들었어요."


"좋네요. 그럼 교사 발령도 받고, 행시도 하고? 일 년 뒤에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네요."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오늘의 할 말을 꺼냈다. 요즘 들어 조바심이 엄청나게 늘었다.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게 됐다. 카톡을 보내고 5분 정도 지났는데 답장이 안 오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연락에서만 그런 건 아니었다. 집중력이 완전히 박살 나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정적을 견디지 못했다. 5분에 한 번씩 휴대폰을 켜고 알림을 확인했다. 알림이 없는 걸 알면서도 휴대폰 확인을 멈출 수 없었다. 전에도 휴대폰 중독이긴 했지만, 이렇게 일상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 내 태도다. 예전에도 물론 난 조바심을 많이 내고 기다림을 잘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참아냈었다. 그리고 바로바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대고 화를 냈다. 요즘은 화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거 그냥 기다리면 되는데, 그냥 딴 거 하면서 신경 끄면 되는데 왜 난 그걸 못하지?'라며 나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화가 났다. 이를 견디고 삭히는 과정이 굉장히 괴로웠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은 늘 그렇듯 선문답을 시작했다.


"사람들은요. 많이들 착각해요. 물론 이메다님은 아닐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일단 들어보세요.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더 잘났다고 착각하구요, 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구요, 자기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근데 보통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는요,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래서 대비를 하죠. 하지만 우리가 완벽하게 미래를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그죠. 근데 내가 더 낫고,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왜 내 맘대로 안 되지? 하고 괴로워하는 거죠."


맞는 말이었지만, 당장 내 상황에 와닿지는 않았다. 끄덕끄덕은 하지만 별 공감은 가지 않는 듯한 뚱한 표정에 의사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의외루요. 환자분들한테 더 필요한게 겸손일 수 있어요.


"겸손이요?"


"네. 제가 겸손해지시라고 하면 다들 입으로는 겸손하다, 더 깎여 내려갈 곳도 없다~ 라고 하시거든요? 그런데요. 속에서는요. 그렇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계속 사람들한테, 겸손하라고 말씀을 드려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구요. 우리는 하루하루, 매일을 충실하게 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요. 저번 주의 이메다님이 그러셨던 것처럼요. 그래서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구. 그래서 결과가 안 좋으면? 아쉬운 거죠. 이메다님도 지금 교사가 스스로 원하는 길은 아니었을지언정, 남들이 하지 못한 걸 이뤄낸 거잖아요."


추가 설명을 듣자,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예전에 책에서 본 불교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 대부분의 일은 사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괴로움의 근원이란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맡기고 초연해지라고. 그럼 괴로움이 덜할 거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생각나서 적극 공감하며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이 나도 모르게 내 심기를 거슬렀다.


"저는 절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요. 하. 진짜 미치겠다. 저는 제가 임용 붙은 게 성공이 아니라 도망친 것 같아요. 행시 못해서 임용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그렇구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못 해서 도망친 패배자예요. 그래서 주변에서 좋겠다, 부럽다, 똑똑하다 할 때마다 진짜 열등감에 미칠 것 같아요. 저 솔직히 주변에서 누가 절 그렇게 띄워주고 할 때마다 너무 싫어요. 그런 칭찬 들을 때마다 너무 화가 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메다님 마음속에서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거지.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지만요. 근데 물론 그럴 수도 있어요. 행시 1차도 여러 번 붙었고, 세상일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건 결국 나중에 결과로 증명을 하는 거고. 당장 이메다님과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를 살고, 내일 생각만 하며 사는 거예요. 그 수밖에 없어요."


내가 화를 내는 심리가 간파당한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 그래. 난 사실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나 스스로가 정한 기준에도 들어야 한다.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이 싫은 게 아니다. '내 기준을 넘지 못한' 나에게 주어지는 칭찬과 인정이 싫을 뿐이다. 나는 아직 '잘한' 것이 아닌데 잘했다고 해주니, '아니, 나를 이 정도밖에 안 보나? 나를 이렇게 낮게 보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스스로 자격지심에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매우 이중적인 사람이다. 남들의 칭찬을 싫어한다. 객관적인 성과가 있더라도, 칭찬을 받을 만큼 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 립서비스라는 거 안다. 하지만 립서비스조차 립서비스로 받지 못하겠다. 남의 칭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내 안에서 나는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그걸 증명하고 싶어 하고, 지금까지 증명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커진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 그 열등감이 나를 계속해서 고시의 길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그 길의 끝에 다다를 거라는 자신은 없다는 점이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실제로 그 정도가 안된다는 걸 인정하면, 나를 높게 보는 내 자아가 무너져 내릴까 봐, 그 '더 잘 나가야 하는 나'가 깨지는 게 너무 아파서, 계속해서 시험에 의도적으로 실패하며 살고 있다(예전 글 참고).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지낸다.


https://youtu.be/_0f5FjEQzsg?si=4kgy26wE_yhRZK3J


일요일 아침, 헤비의 신곡 '늘'을 듣는데, 이 가사가 귀에 꽂혔다.

그냥 달아나자 저 너머에
어두워지는 하늘이
우릴 다시 찾을 수 없게
검은 밤이
무섭지 않다기보단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냐

- hebi, 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우리는 그걸 용기라고 부른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용기를 내게 하는 원동력은 꿈이다. 나는 헤비가 가진 그 꿈이 부럽다. 시련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꿈을 갖고 싶다. 내 시간과 돈,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부럽다. 내가 주변에 '꿈'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이 나의 '꿈'이라고 믿는 고시 합격은 진짜 내 꿈은 아닌 것 같다.


고시를 붙을 자신도 없고, 합격해도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혹여나 합격한다 하더라도, 그 후에는 다시 재경직 합격자와 비교하거나 더 나은 승진코스를 밟는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며 괴로워할 게 뻔하다. 계속 인정받고 싶어서 몸부림치면서도 누군가가 건네는 선의의 칭찬은 나를 깎아내리는 평가라 곡해하며 괴로워할 것이다. 그 미래가 보인다. 불행하고 괴로운 미래의 내가 눈에 선하다.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시를 놓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불행한 게, 내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모자란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는 덜 아프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됐다. 나는 그간 수없이 행복해지고 싶다고 외쳐왔지만, 실은 별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발악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진료를 받고 상담하더라도, 내가 더 나아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나는 계속 반복된다. 상담을 시작한 지 5년인데, 나는 같은 곳에서 머무른다. 처음 1년 간은 나를 이해하고 내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그 후 4년간 나는 한 곳으로 계속해 돌아온다. 난 도저히 내가 '내 생각보다 능력이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서, 오늘도 괴로워한다.


이제서야 보이네
이미 따뜻했는데
고개를 떨구고
두 귀를 막고
내 곁을 지켜주던
널 놓칠 때 또 한번 잡아줄래
약속할게 찬란한 미소를

아침일 거야 우린 늘

- hebi, 늘


헤비 신곡 마지막 가사처럼, 내게도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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