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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포기 상태다

아들은 아들이다

by 이사라

지난 4월, 잠자고 있는 큰아들을 깨워서 밥도 먹이지 않은 채 집에서 쫓아냈다. 그 전날 전북대 의대에서 문자가 온 것이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으면 수업일수 부족으로 유급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의정갈등으로 벌써 일 년 하고도 몇 개월째 집에서 빈둥거리는 아들에게 그 문자를 보여주었는데, 아들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시하세요. 저한테도 왔거든요. 엄마는 신경 쓰지 마시고, 걱정 마세요. 걱정은 제가 할 테니까요."

나는 아들을 설득할 자신도 없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남편과 아침을 먹다가 그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서 문자가 왔네. 이번에 복귀 안 하면 유급을 준대"

난 무심코 말을 꺼냈는데, 남편의 표정이 급속히 일그러졌다. 남편은 온갖 입맛이 떨어졌다는 듯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탁 내려놓았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진작 알았다면 어제 상우를 내려 보냈을 텐데"

나는 갑자기 역적 죄인이라도 된 것 같아 조금이라도 내 죄를 만회해 볼 요량으로 얼른 아들 방에 들어가 자고 있는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지금이라도 빨리, 얼른 학교에 가라고 재촉했다.

아들은 갑자기 이게 왠 날벼락이냐는 듯 나를 멀뚱이 바라봤다.

"너 지금 집에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지금 다른 얘들은 하나둘씩 복귀하고 있을걸. 막판에 우르르 수업에 들어간다고. 너처럼 아무 생각 없는 애만 애꿎게 피해 보는 거야"

"안 들어갈걸요?"

"그걸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네가 알아? 어떻게 알아? 다른 애들은 몰래몰래 수업에 복귀하는지. 애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빠리빠리 한지... 너만 그러고 있지..."

아들은 잠이 덜 깬 상태로, 노여워하고 있는 엄마, 아빠의 표정에 기가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욕실에 들어가 씻은 후 주섬주섬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불쌍한 녀석. 아침이라도 먹고 가지. 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좀 안쓰럽게 여겨지긴 했다. 아침도 안 먹이고 자는 애를 깨워서 집에서 내 쫒다니..... 하지만 뭐 원래 아침을 먹으라고 사정해도 안 먹는 아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이라도 전주에 내려가 오후 수업이라도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했다.


그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사실 생각해 보면, 지난 일 년 하루하루가 애을 태우던 날들이었다. 언제쯤 아이들이 학교에 복귀하려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건만 결국 지난 일 년은 휴학처리되고 말았다. 빈방으로 남겨둔 원룸의 월세만 꼬박꼬박 다달이 내면서, 언제 학교에 복귀할지 몰라 방을 빼지도 못한 채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의정 갈등이 있기 전까지 아들은 부모 말을 잘 듣는 소위 엄친아였다. 한 번도 내 말을 어기거나 반박하지 않아서 "이 답답아. 네 의견을 말해야지. 항상 엄마 말이 옳다고만 하면 되니?" 하고 배부른 질책을 하곤 했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려면 문 앞에 서서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하고, 퇴근하면 두 손을 모으고 잘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하던 조선시대 도령 같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수업에 복귀하라는 우리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그렇게나 고집이 센 줄을 처음 알았다.


아들은 다른 아이들이 수업에 참가하지 않는데 혼자서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무척 힘든 일이고 차라리 유급을 당하는 편이 더 견디기 수월할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너 입장이라면 엄마는 혼자서라도 수업을 들을 거야. 난 대학 다닐 때도 약대에서 혼자 데모하고 그랬거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면, 누가 뭐라고 하든 하는 거야. 엄마는 병원 다닐 때, 다른 약사들이 다 노조를 탈퇴했어도 혼자 남아 노조 활동도 했거든."

동료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면서도 마음 약한 아들에게 그런 걸 이겨내라고 닦달했다. 아들은 혼자서 수업을 듣는 것이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아들은 아들이니까.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이래저래 괴롭고, 지금 원룸에서 수업도 듣지 못하면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 지금은 또 유급을 당해도 어쩔 수 없지. 반쯤 포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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