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다시 인천에 왔다. 지난 북페어는 월미도 근처였고 이번은 미래도시 같은 송도다.
일 년에 한 번 신기루처럼 열리는 선셋서점. 클래식은 오늘 하루 선셋서점이 되어 인천 트라이보울 한편에 앉아있다. 다른 부지런한 책방들 보다 늦게 도착하여 자리는 3층 한 구석이다. 차분한 음악이 흐른다. 북적북적하지 않아 좋다. 우리 책방에 조금 관심 있어보이는 손님이 책을 유심히 보다가, 김연수의 워크숍이 곧 시작된다는 안내방송을 듣고서는 얼른 가 버린다. 인기쟁이 소설가 김연수의 워크숍인 만큼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데, 후다닥 가는 걸 보니 부지런히 사전 예약에 성공한 손님인가 보다. 여러 북페어를 다니면서, 손님 한 명 한 명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새로운 동네에 온 것만으로 오늘은 멋진 하루다. 2층만 대충 보지 않고 계단을 올라 3층까지 와준 손님 덕분에 개시를 했다. 손님은 책을 구매하면서, 페미니즘 책방 ‘달리봄’에서 본 책이 있어 구입하셨다고 하면서 이곳도 페미니즘 책방이냐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 항상 걸어 놓는 ‘여성의 서사가 고전이 되는’ 클래식책방을 어디에도 써 두지 않았다. 약간 게을렀는데 큐레이션을 보고 알아봐 주시다니, 그제야 볼펜을 빌려 메모지에 써 두었다. 보통 북페어에는 독립출판물을 들고나가는데 이번에는 나름 세 가지 주제를 잡아 책을 정했다.
#언니 #임신중지 #1인가구
세 가지 주제로 15권의 책을 골랐다. 점차 책방에도 이런 주제를 가지고 서가를 꾸려봐야겠다. 이제는 큐레이션을 해도 될 만큼 책이 늘었다. 이렇게 부지런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옆 옆 옆 서점 사장님이 이곳에 모인 책방을 ‘지각존’이라 명명해주었다. 지각존에는 부지런히 신문지를 깔고 잉크를 판에 발라 인도에서 온 도장을 찍어보는 체험을 제공하는 인도 언니도 있다. 도장에 잉크를 바르고 천에 찍어 무늬를 만들어낸다. 아마 오늘 북페어에 와서 제일 열심히 한 일이 이 ‘도장 찍기’가 아닐까 싶다. 이곳에 오는 두 시간 동안 너무 멀고 어깨는 무겁고 벌써 지친다 싶었는데 여느 때와 같이 북페어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보상해준다. 멀리멀리 인도에서 온 도장도 찍어보고, 이곳은 점심도 준다. 누군가 부지런히 쌓은 샌드위치도 맛있다.
우리 책방 옆 사장님들도 도장 찍기에 푹 빠져 있다. 손님이 온 줄도 모르고... 친절한 인도 언니가 손님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얼굴을 아는 손님인지 자리로 간 셀러 분과 손님이 하하호호 웃는다. 부지런히 웃음을 주고받는다. 내 앞에는 부지런한 몇 점의 그림들이 걸려 있다. 모든 그림은 부지런하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도, 분명 그림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건 글도 마찬가지다. 요가 매트만 한 테이블 위에 부지런한 책들이 놓여 있다. 부지런한 그림과 글이 합쳐진 동화책도 있는데, 방금 아이의 양 손을 각각 잡은 가족이 그 책을 보고 갔다. 여자아이 둘이 결혼을 하겠다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표지의 책이다. 그 책을 보더니 얼른 웃으면서 떠났다. 아이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그 이유가 그저 내 편견이었으면 좋겠다.
박수 소리가 들린다. 김연수의 강의가 시작했나 보다. 뜨문 뜨문 손님들이 책을 보고 간다. 인도언니는 부지런히 조각천을 자르고... 모녀 손님이 와 아이는 고양이 도장을 조각천에 찍고, 엄마는 부지런한 그림책을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표지만 보고 에구머니나 놓지 않고, 심지어 뒤에 가격까지 보았다. 작은 손으로 도장을 찍던 아이가 잠깐 엄마가 있는 옆을 보더니 그림책이 예쁘다고 한다. 잠깐 내 맘에 무지개가 떴다 사라졌다. 아이는 연습한 대로 도장을 천 주머니에 찍는다. 부지런히 샘플을 만들고 아이에게 도장찍기 체험을 제공한 인도언니가 개시를 했다. 아이고. 아이가 부지런한 그림책도 사 갔다. 고맙습니다. 잠깐 다른 책방 책들을 구경하러 2층으로 내려갔는데 손님이 계산을 기다린다고 전화가 왔다. 부지런히 잰걸음으로 올라가 계산을 했다. 북적북적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잠깐 2층으로 내려갔다 오니 이곳이 구석이라 조금 한산한 것이었다. 그래도 얼마지 않아 손님이 책을 사갔다. 어제의 치킨 값 정도 벌었다. 부지런히 인천에 온 보람찬 일요일이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