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책방- 소소한책방, 보수동 책방골목/마이유니버스, 손목서가
11월은 내게 의미있는 달이다. 생일이 있는 달이라 별 계획이 없어도 설렌다. G-Star 참석을 위해 부산에 내려갔다. 일행들은 1박을 마치고 모두 올라갔지만, 혼자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사실 내 관심은 애초에 게임보다는 책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여행은 이튿날 부터 시작되었다.
해운대역에서 기장의 소소한책방까지 버스로 한 번이면 갈 수 있다. 기장은 먹으러 한 번 방문했었는데, 이런 책방이 있는 줄은 몰랐다. 작정하고 부산의 책방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은 이곳은 처음에 문이 안 열려 있어서 허탕을 친 줄 알고 매우 아쉬웠다. 찾아보니 오픈 시간이 되기 30분 정도 전이었고 덕분에 마을 주변을 산책할 수 있었다. 송정해수욕장이 가까웠지만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거리라 공수 해안길을 걸었다. 마침 운동기구가 있길래 바다를 보며 운동을 하고 지압길을 밟다가 고양이를 마주쳤다. 그러다보니 오픈 시간에 가까워져 다시 책방으로 돌아갔다.
책방에는 책방 주인 한 분이 계시는 듯 안 계시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고 그 덕에 책을 찬찬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이번 부산 여행에서 처음으로 고른 책은 당안리책발전소의 주인인 김소영 전 아나운서가 쓴 <진작할 걸 그랬어/위즈덤하우스>이다. 책방 주인이 쓴 책은 꼭 사서 읽어보는 편인데 이 책은 읽기를 조금 미루다가 드디어 구매했다. 당안리책발전소는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친 적이 있다. 주말이어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탓에 방문을 미뤘던 곳이다. 책 읽기도 미루고 책방 방문도 미룬 이유는 아마 책방 주인이 다른 책방 주인들 보다는 유명한 사람이라, '이 책방은 오래 자리를 지키겠지.' 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니 얼른 시간을 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책방에 가보면 진작 가볼 걸 그랬어, 하고 생각이 들 것 같다.
다시 소소한책방 이야기를 하자면, 책을 구매하고 편하게 앉아서 읽을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만화책이 있었는데 마침 7권까지 읽은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의 8권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바닷마을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읽으니 그 이야기가 더 따듯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알게 된 책방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책 한 권을 사고 우연히 만난 기다리던 만화책을 읽다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책을 읽는 동안 비가 내렸다. 우산은 챙겨오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후드집업을 입어서 모자를 쓰고 가면 될 것 같았다. 한적한 동네의 책방은 예상치 못한 비에 짜증이 나기 보다는 그냥 이 비를 맞으면 될 것 같은 여유로움을 선물해주었다.
다음 날, 보수동 책방골목에 갔다. 부산은 할머니댁을 방문하기 위해 명절마다 들렸는데 보수동 책방골목은 처음이다. 늘 가야지, 생각하다 드디어 방문한 이곳은 처음 가보는데도 익숙한 것처럼 반가웠다.
11월 중순, 부산의 햇살을 따사로웠고 후드집업 하나로도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다. 책방 골목은 책을 사는 사람과 책을 판매하는 사람 모두 활기찬 기운을 간직한 듯 활동적인 모습이 눈에 띄였다. 다시 올라가면 추위에 움츠려들텐데, 이 기운을 나도 만끽하고 싶어 이곳 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옛날 잡지가 참 재미있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미 지나간 과월호지만, 그때에는 가장 최신이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펼쳐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옛날 잡지는 매력적이다. 가판대의 잡지를 들춰보는 나에게 책방 사장님은 안쪽에도 잡지가 많다고 하셨고 좁은 책방 사이를 지나 안쪽에서 잡지를 찾아보았다. 내가 찾는 내용이 담긴 잡지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책방을 나왔고 다른 책방에서는 묶음으로만 판매한다는 말에 잡지 찾기는 포기했다. 이미 짐이 많았고 그걸 들고 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대신 요즘 배우고 있는 여행 드로잉이 떠올라 크로키북을 하나 샀다. 언젠가 서점을 다니며 혼밥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에 음식 그림을 하나씩 그리고 있다. 크로키북 중 음식이 주제인 교재를 하나 골랐다. 그리고 마이유니버스로 가는 길에 스치듯 무라카미의 이름을 보고 멈춰섰다. <무라카미 라디오>는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품절로 나왔고 무라카미의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한 권 장만하였다. 가격은 모두 절반에 가까운 가격으로 이곳에서 더 보물찾기를 하고 싶었으나, 가까워 오는 기차시간때문에 다음 서점으로 향했다.
마이 유니버스는 보수동 책방골목에 자리 잡은 독립출판물 서점이다. 다른 서점처럼 일반 도서와 중고 도서를 모두 판매하고 있지만, 중고서적을 위주로 판매하는 책방골목에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이 서점은 특별하고 또 각별하다. 아마 이 서점이 이 곳에 없었다면 나는 또 보수동 책방골목에 오길 미뤘을 지도 모른다. 이 책방에서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강민선>을 샀다. 다시 대학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문헌정보학과로 가지 않았을까. 사서 업무에 관심이 있던 도중 이 책을 만났고, 사서교육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루 더 여행하지 않고 올라갔다면 만나지 못할 뻔한 이야기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강민선>을 바로 발견하지는 못했다. 책방에서 어떤 책을 살지 곰곰이 생각하며 책방을 한 바퀴 도는 일은 책방에 대한 예의고 어떤 의식과도 같다. 되도록이면 책방에 들어서자 마자 책방 분위기에 취해 사진을 찍지 않고, 책과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책방마다 다른 남다른 공간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는다. 이 책방은 '우주인의 책장'이라는 책방 이름에 걸맞는 공간이 있었다. 중고 서적을 꽂아 놓은 책장으로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책은 이곳이 보수동 책방골목에 있는 책방이라는 말해주는 듯 했다.
책방에 들어서자 마자 본 '전주 동네 책방' 책방 안내서는 다음 책방 여행지를 정해주었다. 전주는 정말 오로지 먹으러 갔는데, 다음에는 책방을 구경하러 가야겠다. 마이유니버스까지 둘러 보고 나니 이제 다음 책방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손목서가는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에 위치한 서점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되었던 서점이기도 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흰여울마을에 있는 서점이라 더 그랬다.
잘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도를 믿고 걷다보니 손목서가를 발견했다. 그 기대는 역시 나만 한 게 아니었나보다. 앞선 두 서점은 있는 동안 손님이 나 한 명, 혹은 드문드문 오는 편이었다면 이 서점은 들어가기도 전에 북적북적. SNS에서 보았던 바다가 보이는 위층 공간은 테이블에 모두 손님이 있어 앉아보지 못하고 바로 내려왔다. 주말이기도 했고 워낙 공간이 아름답다보니 서점을 좋아하고 예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느낌이었다. 서점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서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꼭 손님이 적을 때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 서점은 다음에 또 방문해야겠다는 혼자만의 약속을 하고, 책이 아닌 노트와 포스터를 구매했다.
노트와 포스터는 제주에서 방문했던 만춘서점에서 제작한 것으로 책을 읽은 소감을 짧게라도 그 노트에 적고 포스터는 2019년을 맞아 방 분위기 변신을 위해 구매했다. 구매를 하고 감사하게도 책방에서 무거운 가방을 맡아주신 덕분에 가벼운 걸음으로 흰여울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는 고양이를 지나다 발견해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엉뚱한 곳에 시선을 두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이 고양이를 보고선 귀엽다며 일행을 불러오고 가까이가서 사진을 찍고 그러다 고양이는 일어나 다른 곳으로 향했다. 책방에도 사람이 많으면 참 좋은데 그러다보면 책을 집중해서 고르기 힘들어진다. 그래도 장사가 잘 되고 오래 자리를 지키는 게 좋을테니 내 집중력을 키우는 게 맞는 거 겠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흰여울마을은 손목서가 외에도 바닷길을 걷고 맛있는 음식과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부산에 자주 방문하면서도 몰랐던 곳이라 더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야했다. 놀거리가 참 많은 부산이지만, 하루 더 묵을 기회가 생긴다면 부산 책방 여행을 추천한다. 한 번 다녀오면 다른 곳보다 이곳을 가기 위해 부산을 방문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