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쓰던 나의 강점을 되짚게 되다
설 명절 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함께 일하던 상사가 연락이 왔다.
기사 링크 몇개를 보내며,
- 니가 하던 프로젝트는 이렇게 잘 진행되고 있으며
- 니가 복귀했을때 좀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이런저런 시스템을 만들고 있고
- 아무튼 프로젝트가 호황을 맞고 있다
엥?
나는 그 프로젝트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걸요..?
내 작은 꿈은, 그 프로젝트가 그냥 망하고 산산조각나서
팀장을 비롯한 팀원을 모두가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각자 발령나는건데요...?
프로젝트가 잘되고 있다니요?
내가 복귀를 한다니요?
답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드라이하게 보냈다.
'선배님께서 공들이신 프로젝트가 이제 빛을 받는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랑 함께 일하는 상사는 엄청난 이상주의다.
일하면서 그게 힘들었다.
작은 빛을 보고도 오로라를 보았노라고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나에게 연락이 와서 너스레를 떠는것도 그냥 늘 그래온 허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음...-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잊혀진다.
- 아..진짜 잘되고 있는거면 어쩌지
- 나 다른데로 복직하고싶은데 ..
- 아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예전 직장을 다닐때에는
회사가 망해도 내 인생에 하나도 영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모하면서도 도전적으로 일했고,
회사에서 뭔가 잘 안풀려도 괜찮았다.
회사와 내 인생은 별개이기 때문에 -
회사 및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없다기 보다는
회사와 일은 내 인생을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지 전부일 수 없다는 믿음이었다.
언제쯤 이 생각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오늘 상담에서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때 나는 스스로가 빛난다고 느끼는지,
결론부터 말하면 '사회에 기여한다는 가치가 분명한 일' 을 원한다.
공익적인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고,
남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은 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사람을 찾아내어
그들이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것들을 누리게 하는것일수 있다.
이런 부류의 일을 할 때면
어떻게 하면 이 일을 더 잘해서 한명이라도 더 수혜받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예산을 더 효율적으로 써서 더 큰 임팩트를 낼지 늘 고민했고
팀원들과 회의도하고 여러가지 파일럿도 돌려보곤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공익적이지 못하는가?
지금 하는일은 결국 물건이나 무형의 콘텐츠/서비스를 유통하여 매출을 내는 일이다.
그 매출은 결국 회사의 이익으로 귀결되고
결국 사주(사장)의 이익과 직결된다.
공익적인 포인트를 찾으라면 찾을 수 있으나, (마케팅포인트로도 얼마든지 찾아낼 순 있다)
지배적인 업무의 구조와 조직의 정서는 '매출'이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지? 이제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매출이 물론 중요한 KPI이지만, 사회에 기여함 없이 회사의 덩치를 키우고 사주의 이익을 위한 부품이 된 기분이다.
예산? 어차피 법카인데 뭐,,,
예전회사에 다닐때에는 (내 본캐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이다)
"뭐 하는 사람이세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한다고
아주 반짝이는 눈빛을 가지고 내 일을 설명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에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회사원이요"
하고 끝난다.
지금 내가 하는일을 어떻게 포장해서 말해야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고,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사주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가치있는 일임을 역설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나는 '기여한다는 가치가 분명한 일'을 추구하는가?
이 답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더 깊은 자기 성찰과 상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속성 말고
그 형태와 모양새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일의 전체를 보고, 그것을 구조화하여 적절하게 개입하는 일을 좋아한다.
내 프로젝트의 전체를 보면서 작은 세그먼트로 나누고
팀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필요한 자원을 끌어와 팀원들이 최대의 아웃풋을 내도록 조력하는 일을 선호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a부터 z까지 일련의 일들이 연속된다고 했을때 그 모든걸 총괄하는 팀장은 내 상사이고
나는 중에, 이를테면 h만 담당한다.
초반에는 h를 하기전에 g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야 나도 업무의 선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해서 g에게 많이 물어봤다.
그리고 i가 내 일을 받아서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보고, 그에 맞게 가공하려고했다.
그러다보면
a는 어떻게 일을 착수하지? z는 어떻게 일을 마무리하지?
그 전체의 과정에서 h인 나는 어떻게 일의 모양새를 만들어야 전체적인 합이 좋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하면서, 팀원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그럴때마다 듣는 말은
"과장님이 그게 왜 궁금해요?" 였다.
처음에는 상처도 받았다.
그러면서 점점 분노?허탈? 했다.
- 아니...늬들이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알아야 나도 맞춰서 하지
- 아니.........어떻게 마무리할지를 알아야 나도 따라가지....
하지만 이 조직에서는
a는 a만 하고 손 털면되고
b는 b만 하고 손 털면된다.
어차피 전체를 총괄하는 팀장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서로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최고의 회사라고 한다.
딱 내가 맞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고, 그 이상의 카테고리는 넘보지 않는것.
어차피 그 이상의 업무는 그것들을 담당하는 차장/팀장이 있을텐데
굳이 실무선에서 볼 필요가 없는 것.
하지만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다.
나는 전체를 보고 그걸 구조화 해야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에도 목차를 가장 먼저 보는 사람이다.
전체가 보이지 않는 내 업무는, 이게 전체에서 몇%에 와있는 일인지, 이 뒷단이 무엇인지 모든게 안개같다.
그러니 더 능률이 안난다.
상담하면서 이런것들을 찾다보니,,
어? 이거! 이거 내가 이력서에 쓰던 말이잖아!!
'저는 PM으로써 여러 해 근무하며 프로젝트의 전체를 보고, 업무를 구조화하여 팀원과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작업을 선호합니다'
아,
오늘도 유레카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였다.
그러니 지금의 회사에서는 하나의 부품이 된것 같은 느낌을 너무 강하게 받는 것이였다.
오늘의 발견이 다음 직무를 선택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항상 마무리를 잘 못하겠어요...마무리..어떻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