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에서 오는 느슨함

원래 알던 인연들과의 기막힌 재회

by 김이나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것이 쉽지 않다.

쉽지 않다는 말은,

1. 굳이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2. 제한되고 반복된 생활동선이 굳어지다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다.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근 최근까지는 다른 아이엄마들과도 사귀지 않았다.

2028년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 계획되어 있어서,

'굳이 .. 어차피 이사갈껀데 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굳게 문을 닫았다.

하지만 내 글을 몇번 본 사람은 알듯,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안하던 짓을 몇개 했는데 그 중에 '새로운 사람 만나기'가 있었다.

(꽤 성공적이였다 ㅎㅎ)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새로운 인연 말고 원래 알던 인연과의 기막힌 재회와 그 관계에서 오는 편안함, 그리고 느슨함을 기록하고자 한다.




십년도 더 전에 끊긴 인연을 기억에서 떠올리다.


작년 여름, 둘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만삭사진을 어디서 찍을까 하다가 친구가 소개해준 곳을 예약했다.

예약하기 전, 몇가지 문의 사항이 있어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고 DM으로 몇가지를 여쭌 뒤 방문했다.

사진을 다 찍고 셀렉을 하는데, 사진관 사장님이 말하신다.

'OOO씨 아시죠? 저희 형인데 여기 사장이라, 서비스로 원본사진 제공 해주시래요'


...네..? 누구요..? ㅋㅋ

OOO이라는 이름을 밝힐순 없지만, 철수와 영희처럼 꽤나 흔한 이름이라 순간 내 머릿속엔 수많은 OOO이 지나갔고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셨다.


'OOO 모르세요? 이 사람인데..'


아!

아!!

아!!!

아!!!?


내가 2012년도쯤 일하던 회사가 있는데, 거기에 조직된 자원봉사단 중 한명이었다.

나는 자원봉사단 관리 업무도 같이 하고 있어서 꽤나 가깝게 지냈고 퇴사 이후에 그분이 나랑 같은 업계로 취직을 하게 되면서 이래저래 많이 이야기하고 지냈었다.

그 뒤 나는 두번의 해외파견 근무를 하게되면서 인맥을 많이 정리했는데 그때 내가 '차단 친구목록'에 넣어둔 사람중 하나였다.


다신 연락할 일 없을것 같았고, 연락을 커녕 마주치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했을때부터 그분은 나를 인지하고 있었고

'언제 예약하나 보자..'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한다.


어쨌든, 만삭사진을 찍을때에는 운좋게 그분이 휴무라 (배 훌렁 까고 찍기 민망하니까요 ㅎㅎ) 마주치질 못했지만 그날을 계기로 우린 다시 연락하게 되었다.



편안했던 관계, 다시 회복된 이후에 느슨함을 느꼈다.


그 해 여름, 아이가 태어났고 육아에 정신이 없었다.

이 글들을 시작하게 되었듯이 나는 연말과 연초를 보내며 어두운 터널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가 200일이 되었다.


그 쯔음에 우리 결혼기념일도 있어서 기념사진을 찍고자 사진관을 다시 예약했다.

이번에는 꼭 만나고싶어서 그분이 언제 근무하시는지까지 여쭤보고 만났다.


살이 조금 빠진걸 빼면, 여전했다.

약간 곰돌이상이었던 얼굴과, 길쭉한 손가락이 기억났다.

남편과 아이들과 같이 방문한 촬영이기도 했고 다른 손님들이 있어서 오랜 대화는 못했다.

간단히 인사와 안부정도만 전하고 그날의 짧은 만남은 끝났다.


완성된 사진과 앨범은 택배로 보내주신다고 했지만, 굳이 찾으러 갔다.

대화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우리는 같은 시기에 인천 옆동네에 살았었고

곧 또 같은 동네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우리 둘 다 첫째아이가 남자아이고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며 이직을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온 힘든 감정과 마음을 견뎌내야했던 시간이 있었다.






대학생활과 사회초년생때 나는 정말 극파워대문자E 성향이였다.

그래서 아는 사람도 많았고,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다.

학교 정문에서 후문까지 걸어가면 무조건 아는 사람 5명은 꼭 만나던 시절이었다.


관계를 많이 정리한것은 두 번의 해외파견때이다.

해외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조사는 챙길 수 없었고, 만날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을 안하게되었고 뻘쭘한 페이스북 친구로만 남아있다가 결국 몇몇은 정리했다.


이번에 다시 만난 사진관 사장님은 내가 정말 편안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비록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고, 나보다 나이도 많지만

사석에서도 자주 만나고 서로 어려운점도 돕고 하면서 의지도 많이 했었다.

이것저것 옛날 추억들을 꺼내다보니 편안함에서 오는 느슨함이 느껴졌다.

긴장하지 않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준비하지도 않고,

그냥 떠오르는데로 말하고 그사람이 말하는대로 공감해주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시간을 넘게 대화했고 아이 하원시간때문에 아쉽게 헤어지게 되었다.


사진관과 우리집은 차로 10분 거리이다.

가까운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한명 생겼다는것에 마음이 무척이나 위로되고 든든해진다.


사실 이런식으로 끊겼던 인연은 정말 많고,

다시 만나려면 만날 수 있는 인연도 많을 것인데 굳이 나서서 찾고싶지는 않고 억지로 인연을 다시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우연히 재회하게된 기막힌 인연.. 신기하면서도 기분좋은 도파민이 살짝 올라온다.

궁금하다,

앞으로는 또 어떤 재회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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