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심리상담 바우처 (8회기_마지막)

짧지만 강렬했던 8회기의 여정

by 김이나

내가 심리상담을 받을거라고 평생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가랑비처럼 찾아온 우울과 불안 때문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것 같았고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정부에서 지원하는 바우처사업이 있어서 자부담금을 적게 내고 상담을 받을수 있었다.

(상담의 문턱이 훨씬 낮아졌다)


오늘은 대망의 마지막 회기였다.

나는 상담목표를 잘 달성했는지,

상담에서 그동안 무엇을 다루었는지,

앞으로 내가 문제해결을 위한 힘과 에너지를 얻었는지,




1. 육아 휴직동안 쉼을 허락하자는 상담목표, 어느정도 달성된것 같다.

지난 7회기 상담에서 돌아봤듯, 지금 아주 즐겁게 놀고 먹고 쉬고 있다.

물론 문득문득 불안이 엄습해 오고 현타오는 순간들이 있지만

'노는 맛'을 알아버렸다.


노는 맛을 아는 것, 그것 참 중요한 것 이랬다.

나처럼 성취지향적인 사람이 성취만을 위해 폭주하다가 결국 번아웃 되는건데

노는 맛을 좀 알아야 스스로 브레이크를 채울 수 있다고 하셨다.



2. 상담에서 그동안 많은것을 다루었다.

- 나의 우울과 불안의 실체에 조금 더 접근했고

- 내가 미워하는 우리 부장님은, 부장님 그 사람 자체가 밉다기 보다는 내가 힘들어하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

- 나는 성취지향적이지만 그 성취가 출세나 인정을 위한것이 아니라 안전함을 위한 것

- 나는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것

- 나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삶을 모토로, 공정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이라는 것

-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 부단히도 노력하며 살아야 했던 내 자신에 대한 자비를 느꼈다.

(사실 자기연민, 자기자비를 느꼈던것이 나에게 놀라운 발견이었는데, 뭔가 더 깊이 다루지 못했다. 아직 여기에 내 저항이나 억압이 있는것 같다.)



3. 앞으로도 내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상담이 끝났다고 해서 내가 스트레스 받아하는 직장 문제가 사라진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더 잘 버티는 힘과, 한발자국 물러서서 관망하는 에너지가 생겼다.

예전에는 자다가도 잠이 벌떡벌떡 깰 정도였고,

왜 나만 이렇게 일이 안풀리는지 한 사람을 지독히도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고 보게되었다.

내가 힘들어 하는 이 이슈는, '인사인동' 이라는 아주 기술적인 문제로 한번 turn 을 하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물론 그게 인생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인사이동이라는 기회는, 단기간에는 이루지 못할 수 있으나 천년만년 이루지 못할 것도 아니다.

인사이동이 된다면 내가 지독히도 미워했던 그 사람과 아름답게 이별하고

또 나는 나의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을 조금은 덜 하게 되었다.

내가 스트레스 받는 에피소드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게되면, 그 순간만큼은 감정이 해소되는것 같았으나 나중에 돌이켜보면 찜찜함이 더 컸다.

괜히 내가 오바한것 같고,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면서 왜곡이 있었던것 같고..

생각해보면 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우리 부장을 '미워해야한다'( must 정도로 ㅋㅋ) 고 스스로를 셀프 가스라이팅 한것 같다.

그 사람도, 부장의 위치에서 직원을 지켜야하고 성과를 내야했겠지... 부장도 부장 나름대로 입장이라는게 있었겠지..

근데 모르겠고, 나는 내 스스로를 셀프 가스라이팅하면서 난 저 사람과 친하게 지내서도 안되고, 저 사람을 미워해야 한다고 되새겼나보다. 생각해보면 꼭 그럴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문제해결을 위해 고심하지 않고 (고심해도 어차피 해결안됨...), 그냥 묵묵히 지금의 이 시간을 견뎌내고 한두발자국씩 멀리 떨어져서 보려하고 있다.





상담 목표와 별개로, 상담을 하면서 조금 구체화된 것은

대학원을 간다면 심리학, 상담으로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학원을 가고싶었는데 어떤 전공을 할지 결정을 못한 상태였다.

상당한 돈과 시간이 투입되는 만큼, 어떤 전공을 해야할지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 상담을 통해 상담의 세계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고, 쉽게 말해서 '이렇게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 있구나' 를 몸소 체감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갈 여력 (시간적이나 돈적이나)이 된다면 심리학, 상담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 안에서 상담을 하는 직군? 직종? 으로 전환하고 싶다.

상담을 통해 나는 우리회사 진짜 좋은 회사고, 이직할 생각은 없다는걸 찾아냈다.

동시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고 상처받고 있으며

수많은 노무 이슈에 휘말리며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지도 알았다.

공정과 불공정 사이에서 억울함과 원통함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로 인해 얼마나 스스로를 갉아 먹는지를 ..


우리 회사에는 아직 기업상담은 없으나,

나중에 언젠가 보건관리자, 안전관리자, 임상심리사(혹은 상담사), 노무사 등으로 꾸려진 팀을 만들고

그 안에서 노무 이슈를 대응하며 상담을 제공하는 롤을 하고싶다.




고 생각해왔는데!! 오늘 상담사 선생님께서 딱 그 제안을 해주셨다.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을 하면 되게 잘 하실 것 같다.

특히 기업상담과 잘 맞을 것 같다.



오마이갓. 신의 계시인가..

마흔을 앞두고 잘 보이지 않았던 진로고민이 상담을 통해 이렇게 풀리나 보다.




상담은 그동안 나에게 힐링이자, 지적인 대화의 장소이자, 어른과 대화하는 곳이였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휴직중인 지금, 지적인 어른의 대화를 할 곳이 없어 늘 갈증이었는데

상담은 내가 어른의 언어로, 어른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상담이 끝나고 다이소에 들리기도 하고, 올리브영도 간다.

낮에 아이랑 있다보면 외출이 쉽지 않은데 혼자 가는 다이소와 올리브영은 늘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부터 잘 닦인 큰 도로가 아닌 주택가 사이 돌길로 온다.

내가 파라과이에 살던 주택가랑 비슷한 그 느낌이다.

추웠지만 일부러 문을 살짝 열고 천천히 달린다. 입김도 살짝 내보면서..


처음 상담을 시작할 때에는 그 계절이 추운 겨울이였듯이

내 마음도 춥고 어두운 겨울이였다.

그 겨울이 언제끝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매일매일이 추락하는 나날들이었다.

8회기의 상담을 가지고 내 우울과 불안이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3월 중순, 봄이 오고있듯 내 마음에도 천천히 봄이 오고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으나,

저에게 통찰과 직면할 수 있는 상담을 이끌어주신 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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