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올해 한파인 날....
처음으로 집을 잠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날.
첫째 아이를 옆에 눕혀두고 광광 울었다
저녁 5시만 넘으면 마녀시간이 되는 아직 신생아인 둘째아이를 달래면서,
첫째아이의 저녁과 남편의 저녁을 차려두었고
첫째아이 먹이느냐 나는 먹지도 못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내가 차린 밥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씻고, 옷갈아입고, 여기저기 서성거렸다.
"밥 안먹어?"
"응 나 안먹을건데?"
머리끝까지 화가났다
별건 아니지만, 고생해서 준비했는데, 먹는 시늉이라도 하지 좀
첫째 아이를 옆에 눕혀두고 광광 울었다
아들 : 엄마 왜 울어요?
나 : 응 아빠가 엄마가 차려놓은 밥 안먹어서 속상해서그래
아들 : 아빠~ 엄마가 준비한 밥은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돼요
남편 : 응 아빠 오늘은 점심을 많이먹어서 그래
아들 : 아빠, 다음부터는 다 먹을꺼죠?
남편 : 응 그럼그럼
아들 : 엄마, 아빠가 다음부터는 다 먹는데요
집을 잠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출이 아니라, 잠깐 이 공간에서 벗어나서 환기하고 싶었다.
사실 남편은 원래도 집에서 저녁을 잘 안먹는다.
점심을 많이 먹는 편이기도 하고, 워낙에 저녁에 거하게 식사를 하는걸 싫어한다.
그래서 먹어도 간단하게 고구마, 계란 등을 먹곤 하는데
그날 내가 화가난건, 밥을 안먹는 남편의 모습이 아니였다.
남편은 근무가 유연해서,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3~4시에 퇴근을 하고 오는 편이다.
그래서 빨리 퇴근하는 날엔, 나도 둘째아이를 맡겨두고 여유롭게 첫째아이 하원도 하고
(평소에는 둘째아이를 재워놓고 불안해하며 나가거나, 추운데 아기띠로 데리고 나간다..)
가족 저녁식사도 꼼꼼하게 준비하고, 내가 필요한 일들을 하는 편이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난 원래 지금 근무시간이야. 그냥 나 없다고 생각해"
"나도 일찍와서 쉬고싶으니까 그만좀 시켜"
"낮에 뭐하고 자꾸 지금 그걸한데?"
라는 식으로 나의 화를 돋구었고,
"자꾸 이런식이면, 나 유연퇴근 안한다?"
라는 말로 협박하곤 했다.
나는 다른걸 바라는게 아니다.
진짜 단순한거, 첫째 하원할때 누군가 둘째좀 봐주는것
근데 그 누군가가 남도 아니고 남편인데, 남편이 왜 이거 가지고 자기를 부려먹는다고 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되었다.
첫째아이를 재우고, 옆에 조용히 앉아서 휴대폰으로 갈 곳을 찾아봤다.
찜질방 : 주변에 24시 하는 곳 없음. 지금 가도 문 닫는 시간
혼술집 : 술마시려면 걸어가야하는데 너무 추움.. 택시타고 가자니 애매한 거리. 그리고 곧 라스트 오더
영화관 : 이제 10분뒤에 시작하는 영화이거나, 당일 상영 종료
정말 갈 곳이 너무 없었다
술이 너무 마시고싶은데, 혼술집까지 걸어가기엔 조금 멀고 (너무 추웠다..)
차를 끌고 가자니 그럼 술을 못마시잖아?
결국 내가 택한건,
집에서 술을 마셨다.
대충 집에 있는 맥주랑, 소세지랑, 과자랑 꺼내놓고 한캔 두캔 거하게 마시고 잤다.
혼자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두번째로 집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날,
이땐 정말 나갔다.
일단, 여느때처럼 하필 이런날은 너무 춥다.
어딜갈까 또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영화관, 찜질방, 기타 등등 다 탈락하고
심지어 근처 에어비앤비나 모텔까지 찾아봤다..어디든 혼자서 좀, 편하게 울고 자고, 그리고 먹고 싶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어느덧 밤 11시가 넘었다.
오늘은 하필 저녁을 먹으며 술을 마셔서, 운전도 못한다.
'맥주 500 해독 시간'
'맥주 500 음주운전'
아무리 검색해봐도, 음,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운전은 안될것 같았다.
일단 나갔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샀다
아..집에서 라이터 가지고나온다는걸 깜빡해서, 돈 아깝게 라이터도 샀다.
20살때부터 10년을 피웠다.
그리고 해외생활 접고 한국에 온 2020년에 끊었다.
끊은지 5년인데, 5년만에 다시 피웠다.
흡연자만이 아는, 차가운 밤 공기에 손이 너무 시려워서 떨어져 나갈것 같은데
연초 한모금 빨아들이는 캬- 그 느낌이 있다.
'그래...이거지..이거였지'
일단 담배를 한대 피고, 어딜깔까 하다가
결국 아파트 1층에 있는 무인카페에 갔다.
따뜻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봤다.
생각없이 인스타도 보고, 카톡 프로필도 정주행하고, 넷플릭스 뭐 볼거 있다 찾기도하고
그러다가 '마들랜' 이라고, 정부에서 운영하는 자살위기자24시 카톡상담 서비스를 알게되었다.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 이런 이름이다)
바로 상담요청을 하자, 약 15분뒤 상담원이 연결됬다.
결론적으로 음, 도움은 안되었다.
상담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혹시 ai아니시죠?'
너무 ai같은, 뻔한, 예상되는 답변과 공감만 돌아왔다. 별로였다.
무인카페에는 크리스마스라고 운영자가 놓은 과자가 있었다.
1인1개라고 적혀있었는데, 하나를 먹으니 너무 달콤하고 기분이 나가지는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방명록에 적어두었다
'우울한데 갈곳이 여기밖에 없네요. 과자 먹으니 좀 나아져서, 오늘만 하나 더 먹을게요 죄송해요 고소하지 마세요. 그리고 폐업하지도 마세요. 여기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약 한시간 정도의 짧은 가출은 끝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는 서재방에 보일러를 올리고, 요가매트를 깔고, 이불하나 꺼내서 청승맞게 잤다.
오늘은 남편도, 아이도, 누구도 내 옆에 없었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