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다 썼습니다.

마음을 만나 주려고 글을 씁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언젠가는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야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낸다면 하고 싶은 말과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냥 조금은 더 편하게 아이들을 키우면 어떨까요? 아이들 마음껏 놀면서 성장하면 어떨까요? 아이들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자존감이에요. 정서적 안정감과 건강한 자존감 가운데 행복한 아이들로 성장하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과 함께 편안하고 행복하게 육아하는 엄마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과 그것을 꺼내어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내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할 때 큰 산 앞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산아! 내가 밟고 걸을 수 있는 동산이 되어 주겠니? 산아! 내 앞에서 내 키만큼 작아져 주겠니? 내가 눈을 맞추고 바라볼 수 있게.”라고 아무리 외쳐도 산은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은 너무나 거대하고 무서웠습니다.

"그냥 네가 오르지 않으면 어때? 너에게 익숙한 길로 가면 어떻겠니? 갑자기 왜 내 앞에 서 있는 거야? 보다시피 숲이 우거져 진입로도 보이지 않잖아.”라고 말하며 산이 자꾸 나를 뒷걸음질 치게 했습니다. 도망가게 했습니다. 머리는 온통 글과 책 생각인데 손은 여전히 엄마 모드로 바빴습니다. 물론 코로나19와 함께 다둥이 가정교육 온라인 학습이 시작되며 엄마는 노는 시간 없이 참 바빴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내 앞에 놓인 산이 그림자를 가득 드리워, 산을 향해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꾸자꾸 도망갈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을요.


참 긍정적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낸다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감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대기의 자서전도 아니고 육아서인데 뭐 이리 거창한 감정들이 내 앞에 다가와 거대한 거울이 되어 종일 나를 비출까요? 이 열등감과 두려움들은 다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요? 깊은 곳에 숨어 보이지도 않아 없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낸다 생각하고 글을 쓰려고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려고 하자 제일 먼저 고개를 내밀며 모든 것들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감정이 열등감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시간을 오롯이 대면해야 했습니다. 그것들이 고개를 들이밀며 내 면전에서 춤을 춥니다. 그다음 것들을 나는 만나야만 했기에 두렵고 외롭게, 홀로 내 안의 바닥까지 내려가 그것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열등감도 두려움도 욕심이라는 양분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구나? 잘 썼다고 평가받고 싶었구나? 쉽게 가고 싶었구나?’

평가받기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들을 쓰다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책을 내겠다는 포부를 품고 이제 막 글을 쓰면서도 잘 쓰고 싶어 했습니다. 이미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 결과물을 내고 앞서 간 사람들을 보고 움치러들어 있었습니다.

다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면서 조금씩 산이 내게 올라와 보겠니? 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직은 육아 모드가 더 익숙한 엄마라는 것과 또 내 마음의 비중과 우선순위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어났습니다. 내 속도감을 받아들이고 그 속도일지라도 지속성을 장착하기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나는 느림보 걸음일지라도 그 산에 오를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큰 산이 오를 산이라고 느끼며 때로는 갈증에 물을 들이켜고, 때로는 바람을 즐기며 걸었습니다. 결국엔 난 목표지에 서있을 사람이라는 것을 만끽하며 내 속도대로 쉬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걸어갔습니다.


초고 구상의 삼분의 일 지점 정도를 왔는데 두 번째, 산이 심술궂게 말을 겁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지? 어디가 길인지 모르겠지?” 정말 난항을 겪고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을 글로 푸는 능력이 없는 걸까? 글을 이렇게 쓸 줄 몰랐나?’로 시작했던 마음이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로 흘러갔습니다. 처음 책의 기본 뼈대가 되는 40개의 소제목과 에피소드들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 안에 담고 싶은 교육철학이나 메시지들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난항을 격자 내 마음이 풍랑과 함께 흔들렸습니다. 결국 그렇게 흔들리는 내 마음이 ‘잘 못 살았나?’까지 가게 했습니다. ‘내가 육아를 잘 못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또 외롭고 두려운 제2라운드를 치르기 위해 산 앞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허텃한 마음에 불러 볼 이름이 그대입니다. 영원한 내편 남편입니다. 남편은 나의 가장 좋은 벗이자 지지자이자 위로자입니다. 부모의 믿음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은 결국 탈선에서도 돌아오고 자신의 능력보다도 더 큰일을 해내기도 하지요? 저는 가끔 남편 때문이라도 뭐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결혼해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도 남편은 두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 때부터 8년 넘게 해온 독서모임을 첫아이 출산하며 쉬다, 이제 나도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다시 또래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도 지지해 주었고 다녀오면 소소한 이야기들을 물어 왔습니다. 동화 심리상담사에 마음을 가지고 준비하고 더 발전시켜 마음 사용법 과정까지 마무리할 때도 남편의 지지가 아니었음 불가능했을 시간입니다.

남편은 신기합니다. 어디서 그렇게 적절한 조제약을 지어오는지. 어린 부부들이 아니기에 긴 말을 늘어놓을 새가 없습니다. 농축된 대화들이 오고 가지요. “보통 초고를 한두 달에 써야 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처음엔 글재주가 없나에서 시작한 생각이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에서 잘 못 살았나라는 생각까지 드네.” 남편이 토닥토닥 몇 줄 답을 건넵니다. 그런데 그 약이 마음에 약효를 냅니다. 마음에 약이 드니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얼마나 보게 될지 모르는 책을 쓰려고 많은 시간을 갈아 넣습니다. 신기하게 갈아 넣은 시간만큼 글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쓰며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로 유명한 강원국 저자의 강연들을 들으며 큰 위로와 엉덩이 힘을 얻었습니다. 글쓰기에도 왕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쓰면서 배운다는 것을요.



초고를 다 쓰면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습니다. 초고를 쓴 후 일주일 정도는 머리를 식히며 초고와 멀어져 지내야 좋은 퇴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눈으로 글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한 편으로 홀가분할 것 같았던 일주일은 왜 이리 마음이 무겁기만 할까요? 아마도 초고들이 많은 손을 봐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많은 숙제 중 일부를 끝냈기 때문일까요?

사실은 아날로그적인 제게는 책을 내는 도전도 도전이지만 스스로 sns 세상에서 활보하며 마케팅을 해야 하는 일 들이 산 넘어 산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벌써 또 걱정을 가불해서 하고 있네요. 벌써 잊었어요. 멈추지 않고 눈앞에 한걸음 한 걸음만 걸으면 된다는 것을요. 내 속도대로 포기만 하지 않고 가면 된다는 것을요. 쉬지 못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마음아 다시 힘을 내는 거야! 언제나 네가 널 도와주었듯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이처럼 다 처음이 되겠지요? 돌아보면 그간 초고를 쓰는 과정을 통해 저는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들을 겪었습니다. 또 계속 그 길을 걸으며 그 감정들이 지나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렇듯 걸어가며 성장해 가겠지요. 오르고자 하는 작은 봉우리에 서 야호를 외칠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걷습니다. 처음 가는 길 욕심을 내려놓고 용기를 주머니 가득 채워 한걸음 한걸음 배우며 걸어가겠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욕심은 반으로 용기는 두 배로~ 오늘도 그 걸음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