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답사의 기억도, 추운 날씨도 아직 다 가시지 않은 4월초, 우리는 금방 다시 답사를 떠났다.
2025학년도는 우리 셋 모두가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셋이 한 학교에서 근무하며 퇴근하면 함께 곧장 답사를 떠나던 때가 전생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퇴근하고 교문 앞에서 YG쌤이 멋지게 차를 몰고 와 픽업해주시기를 기다리려니 은근 즐겁고 설렜다. 이 즐거운 마음을 누군가 봐주기를 내심 원하며 YG쌤의 차에 올라타자 나보다 앞서 '픽업된' MZ가 특유의 환한 표정으로 안녕! 하며 인사한다. 3월 말에도 눈이 왔어서 아직 찬 바람이 있지만 그래도 4월이 주는 봄의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차창을 살짝 내리자 코끝이 향긋하다.
우리의 첫번째 도착 장소는 파주 출판도시. 본격적으로 역사 유적 답사를 시작하기 전에 북스테이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 셋은 모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주북스테이 지지향은 방마다 이름이 있는데, 우리 방의 이름은 '잠과 꿈'이었다. 내게 너무나 필요한 두 가지... 전년도부터 엄청 약해진 체력으로 답사의 꽃 '새벽을 달리는 수다'에 충실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만성 피로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30대에 완전히 접어드니 정말 잠이 너무나 고프다. 또 한 가지, 이렇게 피곤하기 때문인지 꿈이 잘 생기지 않는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꿈과 목표가 없는 삶은 공허하다. 잠과 꿈, 두 가지가 내게 깃들기를 바라며 위풍당당하게 방에 입성!
한 후 바로 나와 아래층의 서점으로 향했다. 우리도 언젠가는 책을 쓰는 것을 목표로 나름의 시장조사도 하고,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도 했다. 나는 30분도 안 되는 동안 총 4권의 책을 사들였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넌지시 '빌려보는 건 안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지.
물론 지지향에도 도서관이 엄~청 잘 되어 있고, 나도 틈틈이 읽으려고 책 한 권을 빌렸다. 다음날 체크아웃 때까지 머릿말도 채 다 못 읽고 반납했을 뿐...
왜 책 읽을 시간이 없었냐면 우선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YG쌤이 파주에 사는 친구분께 추천 받은, 소위 말하는 '현지인 추천 맛집'의 화려한 메뉴에 배꼽과 눈이 같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먹고 싶은 감자전에 야속한 두 글자가 적혀 있다. '품 절'. 이 식당을 고를 때부터 감자전 생각만 했는데!
포기도 빠른 MZ세대인 MZ쌤과 나는 빠른 포기를 하고 다른 메뉴를 고르는데, YG쌤이 사장님께 혹시 감자전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리고...! 알아볼게요, 하고 총총 떠났다가 해드릴게요, 라는 말과 함께 돌아온 사장님!!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믿음이 깊으신 YG쌤은 역시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정신을 실천하며 사신다. 존경.
위 정신은 참말 대단한 것으로서, 두둑히 배가 부른 우리는 커피로 회개를 좀 해보고자 카페를 검색해 당도하게 되었는데 밖에서 보니 어두컴컴한 것이 아무리 봐도 문이 닫힌 것이었다. MZ쌤과 나는 또 빠르게 포기하며 다른 곳 가요~를 시전하였다. 영업 중이라고 써져 있는데...? 하며 전화를 해 보시는 YG쌤. 알고 보니 멀쩡히 영업 중인 카페였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새나라의 어른이가 된 나는 고작 열두시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 야속한 2년의 세월이여. 2년 전 답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새벽 2,3시는 기본이었는데 어찌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답사기를 쓰며 왠지 고루해진 것만 같은 문장력과 함께 체력도 모두 낡아버린 것이다. 왠지 모르게 서러웠지만 가버린 체력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 새날을 위해 조식을 든든히 먹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이곳 파주 출판도시의 북스테이 지지향에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1층 도서관에서 조식 서비스를 해 주었다. 책장을 바라보며 빵을 뜯는 맛이 제법 좋았는데, 이제는 층을 따로 분리했더라. 하지만 맛있으니 되었다. 아주 일품인 자두잼과 오미자 주스를 맛보고 우리는 이제 정말 역사의 현장을 보러 움직인다!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강화군 캐릭터 강돌이가 귀여운 이미지에 맞지 않는 육중한 크기로 우리를 반긴다.
좀 촌스러운데 귀엽고 기억에 참 잘 남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전등사. 무려 고구려 소수림왕 시절에 창건된 사찰이다.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가 있어 조선 왕실의 보호를 받아왔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의 교전지가 된 곳이기도 하다.
전등사는 삼랑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설이 있다. 또다른 이름은 정족산성. 한국사를 공부했다면 정족산성 전투와 양헌수 장군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곳은 한양의 외곽을 방어하던 중요한 관문이었다.
삼랑성의 남문을 통과해 전등사에 들어서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기상청에서 비 예보를 하긴 했지만 우리 답사는 날씨요정(누군지는 모름)의 존재로 늘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은근히 방심하였다. 벚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지려고 하는 이 4월에 을씨년스럽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다니.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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