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초입에 이름이 크게 적혀 있다. '예끼마을'
곰방대를 흔들며 '예끼!'하는 옛날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름이지만, 사실 '예술'의 '끼'가 넘치는 마을이란 뜻이다. 마을 입구부터 길목마다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들이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새마을금고에서 간식거리를 좀 사자 해서 들린 건데 바로 앞에 고즈넉하고 멋드러진 카페가 하나 있지 뭔가!
카페는 심지어 그냥 카페가 아니고, 3·1운동 유적지이기까지 하다. 선비의 정신을 찾으러 온 고장에서 가는 곳마다 독립운동의 흔적을 마주하는 것이 유의미하게 와 닿는다. 독립운동의 한 축을 이룬 것은 꼿꼿한 기개와 절개였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카페의 이름은 장부당. 내부 곳곳에 사장님의 가족 사진과 애장 도서들이 놓여 있다. 주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들어서자마자 한기를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이름부터 정겨운 맷돌드립 커피가 있어 한 잔씩 주문했는데, 직접 갈아볼 수 있었다. 내가 간 원두로 내려 두 배로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뉘엿뉘엿 해가 지는 아름다운 시간을 만끽하며 숙소 근처로 향했다. 저녁을 먹을 계산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우리가 미리 검색한 '리버뷰' 음식점을 향해 산을 한참 타고 들어왔는데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외딴 곳에 음식점이 강물을 마주보고 홀로 서 있는데, 고요한 것이 손님이 있는 집 같지가 않았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어쩐지 음산한 분위기여서 빨리 자리를 뜨고 싶기도 했지만, 이 식당의 맛나 보이는 메뉴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굳이 한 번 식당 문을 열어 들어가 보았다. 불도 켜져 있고 환풍기도 돌아가는, 약간의 소음이 더 께름칙한 실내는 누가 봐도 폐업한 곳이었다. 귀신이라도 있을까봐 어깨를 탈탈 털고 경직된 채 문을 열고 탈출.
예상에 없던 폐가 체험 때문에 시내로 다시 나가니 날은 이미 어둡고 대다수의 음식점이 영업을 마친 상태였다. 선택지가 사실상 없어서 아직 영업 중인 음식점에 큰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이게 웬일! 비빔밥과 된장찌개에 밑반찬까지 모두 싹 비울 정도로 맛있었다. 역시 삶이란 어찌 풀리는지 모를 일이야.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고, 잘못 들어선 길도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야.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숙소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과 수다의 밤'이 열렸다. 오늘의 지역술은 도산서원에서 발견한 이육사의 청포도 와인. 이렇게 의미 있는 술이라니! 얼른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와인은 오프너가 있어야 한단 사실이, 오픈할 때가 되어서야 떠올랐다. 포기할 수는 없고, 이 늦은 밤에 어디서 장만해올 수도 없으며, 이 고택에는 와이너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 YG쌤이 갖고 오신 드립커피 지지대를 활용하여 돌아가며 힘을 주어 코르크 마개를 압박했다.
그 결과. 의지의 한국인 셋이 달라붙어 압박했더니 코르크는 병 안으로 잘 빠져주었고, 우리는 코르크 동동 와인을 잘 마셨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니까!
새벽부터 아랫배가 짜르르하고 오한이 드는 기분에 잠을 설쳤다. 눈을 떠보니 아니나다를까 대자연이 또 나를 찾아와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생리는 왜 꼭 답사 기간에 겹쳐 시작하는지. 전날 술을 마시고 자서 그런지 생리통이 극심하고 입술은 다 부르터 있었다. 답사 첫날부터 유난히 몸이 춥고 힘들었는데 요놈 때문이었구나.
그래도 마지막날이어서 다행이다, 하면서 우선 떠나기 전 농암종택부터 구경하였다.
농암종택 옆으로 서원이 있고, 좀 떨어져서 애일당이라는 건물이 있다. 부모님과의 남은 날을 하루하루 사랑한다는 뜻으로 농암 선생의 효심이 담겨 있는 건물이다. 역시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이 집들 역시 원래 자리에서 옮겨온 것인데, 가는 길이 참 아름다워서 그냥 처음부터 여기 있던 것만 같다.
종택에서는 일엽편주라는 이름의 전통주도 판매한다. '나뭇잎처럼 작은 한 척의 조각배'라는 운치 있는 이름이다. 이황의 친필을 따서 글씨를 붙여 준다.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기념으로 샀다.
무거워진 두 손으로 아름다운 숙소를 떠나 안동 시내로 향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임청각.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이었던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의 생가를 복원한 곳이다. 임청각 자체도 복원한지 얼마 안 된 건물이고, 집의 앞쪽 길은 일제의 잔재를 제거하는 도로 공사가 한창이어서 고즈넉한 느낌은 덜했다. 그러나 대문에 '독립유공자의 집'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어 뭉클했다. 진짜 명문가.
안채 건물에 들어가 보니, 임청각의 현 주인인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분이 쓴 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래 계좌로 송금하시고 가져가세요'라고, 인간의 양심을 믿는 고고함을 보여 주신다.
양심 잘 지키며 나도 한 권 구매했다. 책을 당당히 끼고 안동 시내 구경 시작.
임청각 바로 옆에는 통일신라 때 지어진 7층 전탑이 있다. 법흥사라는 절의 탑인데, 절은 모두 사라지고 탑만 남아 세월의 무게를 전해준다.
전탑까지 간단히 보고 나서 시내로 다시 이동하여, 안동에 왔으니 안 먹을 수 없는 찜닭을 치즈까지 얹어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MZ쌤의 안동 친구가 추천해 준 젤라또도 먹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 빼고 두 분 선생님이 드셨다. 나도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생리통이 심해 먹을 수가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
그리고 두둥,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하회마을에 입성하였다. 하회마을은 조선 중기 문신인 서애 류성룡과 배우 류시원 등으로 '류'명한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여러 명문을 배출하기도 했거니와 마을 자체도 무척 아름답고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자랑이다. 낙동강이 마을을 휘감으며 돌아나가기 때문에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에도 15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2001년에는 영국왕 엘리자베스 2세가 내한 시 방문했던 곳이기도 하다. 역시나 3·1운동에도 빠지지 않았음이 마을 곳곳의 기념비에서 확인된다.
짧게 하회마을을 둘러본 후, 사극 촬영 명소인 부용대의 절경을 바라보며 낙동강에 소회를 풀어놓았다.
안동에 대한 추억이 많다.
20여 년 전 추운 겨울에 할머니까지 모신 가족 여행으로 왔었다. 사촌오빠들을 따라 민속놀이를 하려는데 아빠가 손을 꽉 잡고 못 끼게 했다. 하게 냅두지 왜, 하는 엄마에게 안돼! 귀하게 키워야 해. 하는 진심섞인 농담을 했던 아빠의 따뜻했던 손에 대한 기억.
10여 년 전 스무살 여름에 기차여행으로 친구들과도 왔었다. 티머니 사용이 안 되던 시절, 편의점에서 물을 사고 거슬러 받은 동전을 내고 탄 버스, 열린 창문으로 뒷자석에 불어오던 바람. 하회마을 안의 초가집에서 할머님이 해주신 찜닭. 평상에 앉아 행복해하던 우리들의 청춘에 대한 기억.
대학교 전공 답사로 찾았던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길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봄꽃들의 따스한 온도. 동기들과 꽃을 주워다 뿌리며 사진 찍었던 핸드폰 어플 파워캠의 미지근한 온도에 대한 기억.
그래서 연고 없이도 항상 소중한 곳으로 아른거리던 곳이다. 이번에 도다른 기억들을 안고 간다.
서원에서, 독립운동가의 흔적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풍모에서 느꼈던 선비 정신, 문경새재를 걸을 때 뼈에 시려오던 칼바람, 숙소에 내렸을 때 눈에 번쩍 들어오던 별이 쏟아지는 밤, 바둑판을 끌어다가 방바닥에 술상 차리고 앉아 웃고 떠들던 것, 바깥은 온통 한파인데 우리가 앉은 방바닥만큼은 온기로 자글자글 끓던 것, 그런 것들.
답사를 다니며 역사를 공부할 뿐 아니라 나의 소중한 역사도 하나하나 쌓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