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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안동(2): 선비의 고장에서.

by 낡은용

아찔한 밤하늘로 행복을 가져다 준 안동의 이 숙소는 '농암종택'이란 곳이다. 연산조의 선비 농암 이현보가 안동으로 유배를 오며 시작된 이 종택은 현재 민간에 개방되어 일부 민박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싶긴 했지만 실은 이현보를 안다고 할 수 없던 나는 이날 밤까지도 이 집의 역사인 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역사교사 맞습니다.)

내가 더 관심을 가진 것은 별이 빛나는 밤, 그리고 우리 답사의 전통인 그 지역 술을 마시며 수다떠는 밤. 이 역시 몰랐는데 문경에 오미자가 유명하더라. 일반 막걸리보다 가볍고 상큼한 게 아주 맛있었다. 밖은 산속이라 칼바람이 패딩을 뚫고 스며들 정도로 추웠지만, 온돌이 자글자글 끓는 방 안은 이불을 덮고 앉으면 뜨끈뜨끈하였다. 달달한 술 한 잔에, 종일 뼈에 시린 한기를 슬근슬근 녹여주는 온기... 얼어 있던 우리의 손과 얼굴은 곧 따끈하게 달아 올랐고, 꽤 오랜만에 함께 답사를 온 만큼 즐거운 대화를 한참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만! 기절하였다. 그동안의 내 불면증은 활동량 부족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항상 빡센 일정을 고수해 왔지만,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이라 이번만큼은 일정도 여유롭게 잡았으니 늦잠을 자고 천천히 움직였다. 구들목에 몸을 지지며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고구마까지 갖다 주셔서 방 안이 훈기로 가득하였다. 이 친절하고 아름다운 숙소, 그리고 농암 이현보의 집안.. 갑자기 궁금해져 종택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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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인 농암 이현보. 그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준 어부가의 작자이자, 퇴계 이황의 존경을 받은 지기이자, 사화가 난무하던 시대에 살면서도 사림과 훈구 모두의 지지를 받은 인격자였다. 비록 안동으로 유배를 오긴 했지만, 웬 복과 덕을 타고 났는지 그 시대에 89세의 장수를 했는데...!

사실 온 가족이 장수 유전자를 타고 난 그런 집안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 온 가족이 기본 80세 이상, 많으면 100세. 그래서 이현보의 후손이 상경했을 때, 당시 왕이었던 선조가 "너의 집은 '적선지가'가 아니냐?"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착한 일을 하였으니 복을 많이 받았다고 모두가 그리 생각했나 보다.

꼭 장수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나도 적선을 하며 살아야지 라고 한 번 다짐해 보았다.



둘째날 첫 방문지는 이육사 문학관. 유명한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가 바로 안동 출신이었다. 청포도, 광야 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도 몇 개에 이르는 대단한 시인. 윤동주와 더불어 이육사의 시가 자주 채택되는 이유는, 그들에게 친일의 행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대단한 인재라도,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더라도 막막한 일제 강점 하에 결국은 변절한 경우가 많단 것이다. 그런데 이육사는 일평생을 흔들림 없이 독립운동에 바친 것. 시인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육사는 무장 투쟁을 준비한 독립투사였다. 그 흔들림 없는 삶의 무결함이 참 순수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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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문학관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농암 이현보, 그리고 퇴계 이황.

어쩌면 잔혹한 무기가 될 수 있는 총과 칼을 들었지만 그 독립운동가의 정신 세계의 뿌리는 결국, '선비'였다는 것. 선비의 고장을 찾아 안동에 내려온 우리 답사 주제가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여기서 들었다.


그리고 재밌는 사실을 또 알았지 뭔가. 이육사의 안경은 사실 멋내기용이었다는 것. 이육사의 동생은 실제로 배우 생활도 잠깐 했던 것을 보아 여섯 형제 모두에게 예술가의 피가 흘렀던 것 같다. 이 여섯 형제의 우애를 기리고자 지어진 이육사 생가 '육우당'이 문학관 옆에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뒷산에는 묘소도 있다. 양지 바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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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조상의 노고를 잊어가는 세태를 슬퍼하며 묵념을 잠시 하고 이곳을 떠난다.



그리고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그 유명한 도산서원. 퇴계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인 도산면에 세워진 서원이다. 이황과 관련있는 또다른 유명한 서원인 소수서원에 비하면 규모는 훨씬 작지만, 아주 정갈하고 기품이 있다. 특히 꽃이 피면 장관이다. 가족 여행이나 대학 답사로 봄에 이 곳에 와본 기억이 분명 있지만, 그래도 당장 보지 못하니 막상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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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겨울의 도산서원도 충분히 멋지네!

이황이 여기에 처음 도산서당을 세울 때부터 함께 했다는, 세월만큼 굽이진 나무와 얼어붙은 낙동강을 기억하기 위해 요즘 잘 안 찍는 셀카도 찍었다.


다음으로 호계서원도 잠깐 들렀다. 도산 서원만큼의 인지도는 없지만 나름 대학자들의 위패를 모셔두었던 사액서원이다. (사액서원은 왕이 직접 현판을 써서 내려준, 국가 공인 서원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그 위패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1년에 한 번 모여 당회만 드린다고. 안동에 있는 많은 유적지들이 그렇듯 호계서원 역시 이곳이 본래의 위치는 아니었다. 이는 1975년 안동댐 건설 당시, 수몰 지구에 해당하는 많은 유적들에 축대를 쌓아 높게 하거나 위치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묵는 숙소 농암 종택도 실제 농암 이현보가 살던 위치와는 영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역사의 흔적이지만 조금 아쉬운 면도 있기는 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겨울 답사의 둘째날도 깊은 오후에 접어 들었다. 호계서원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신기한 마을을 하나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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