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잘못이 없다

팀장으로 산다는 것 #11

by 김진영 Emilio

기획팀 이 대리 : "박 팀장님, 다음 달 월간회의 보고자료 주셔야죠."

사업팀 박 팀장 : "어... 벌써 그렇게 됐나? 얼른 줄게." "야, 막내야! 보고자료 준비하고 있냐?"


어느 사무실에서 회의자료는 이렇게 얼렁뚱땅 만들어지고 있다. 한 달이 지나갔음을 느끼게 해주는 루틴한 월례행사가 돼버린 월간회의. 팀원들과 사전에 검토도 없고, 공유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될 이 회의는 이미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회의(懷疑)스런 회의

직장인들에게 비효율과 낭비의 대명사가 된 회의에 대한 원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시스코의 설문조사에선 지식노동자의 47%가 회의에 시간 낭비가 있으며, 전체 업무 시간 중 37%를 회의에 쓰고 있다고 응답했다. ('전체 업무 중 37% 차지하는 회의, 어떻게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동아일보, 2019.9.14,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904/97271036/1)


얼마 전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며, 극단적으로 정기회의를 모조리 없앤 회사 얘길 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혁신이 된 것 같고, 회의 준비와 회의에 드는 시간을 확보해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2~3주가 흐른 후 오히려 회의 시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기회의는 없지만, 수시로 상사가 찾는 작은 미팅이 많아진 탓이다. 고민 끝에 결국 정기회의는 다시 부활했다고 한다.


회의가 필요 없는 조직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조직이라면 상하관계가 있고, 직책과 직무로 나뉘며, 역할에 따라, 능력에 따라 격차가 있는 사람들도 구성된다. 이런 구조는 20세기 초반 자본이 축적되어 사업이 다변화될 때 나온 '사업부제' 조직 형태이긴 한데, 일부 혁신 기업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기업이 현재까지 적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략구조(전사-사업부-기능).JPG 경영은 탑다운이다


조직구조가 결국엔 Top-down인 상황에서 상부조직의 뜻과 의지에 하부조직을 끊임없이 정렬시켜야 할 숙명을 갖고 있다. 또한 제한된 자원하에서 사업부 간의, 부서 간의 끊임 없는 자원 확보 경쟁과 이해관계 충돌이 필연적이다.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회의의 의미는 있다고 본다. '회의는 낭비와 비효율'이라는 멍에를 씌우기 전에 어떻게 하면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회의는 주요한 의사소통 수단

회의(會議)의 뜻은 '모여서 의견을 논한다' 정도가 된다. 회의의 주제나 목적은 주로 다음과 같다.


- 정보 전달, 진척도 확인

- 창의적 기획, 아이디어 수집

- 갈등과 이해관계 조정

- 문제해결

- 의사결정


회의의 뜻만 생각해봐도 '정보 전달, 진척도 확인'은 진정한 회의라고 할 수 없다. 이는 일방적인 공지이거나 단순 공유의 자리일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간 회의'다. '지난 주에는 뭘 했고, 이번 주에는 뭘 할 예정이고...' 이런 식의, '활동' 위주의 보고 회의다. 기껏해야 주간실적 정도가 붙게 되는데, 숫자로 표현되는 실적은 ERP나 회계시스템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걸 굳이 엑셀에 붙여 새로이 만들 필요가 없다.


팀 내부회의의 경중을 따져 조정하는 툴로써 ERRC(제거, 증가, 감소, 창조) 매트릭스를 활용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팀회의ERRC.JPG 팀 회의 ERRC 매트릭스


앞서 설명했듯이 정보 전달 및 단순 공유, 일정 및 진척도 확인을 위한 회의는 폐지할 대상이다. 물론 일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툴의 구비는 필수적이다. 당장 툴을 갖출 수 없는 경우, 게시판이나 이메일로 갈음할 수 있다. 갈등 조정과 이해관계 중재는 주로 다른 팀과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에 팀원들 전부가 아닌 팀장 또는 부팀장까지로 회의 참석 범위를 줄여 회의에 소요되는 시간을 절약할 필요가 있다.


정책이나 제도 측면에서 주요한 의사결정이나 고객 클레임 대응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회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이는 활동 중심의 회의가 아닌 '이슈' 중심의 회의가 될 수 있으며, 중요 사안을 두고 논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 보면 급하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회의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열심히 살았지만 평가 시즌을 앞에선 늘 후회가 남고, 기존 실적이 나와주지 않을 때 보충할 길이 없음을 깨달을 때가 많다. 이런 아이템은 없던 회의도 만들어 평소에 정기적으로 논의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


팀 회의의 구조조정

중요도에 따라 회의 숫자를 조정했다면, 이제 상급 조직과 맞물리도록 정렬시켜야 한다. 팀 회의 따로, 사업부 회의 따로, 전사 회의 따로인 조직들이 사실 너무 많다. 다음은 유통사업을 하는 사업부 정기회의체 예시다.


사업부회의체예시.JPG 이슈 중심 사업부 주간회의


활동 중심이 아닌, 주요 이슈별로 주차 주간회의가 셋팅된 것을 알 수 있다. 사업부의 통제와 영향 아래 있는 팀은 회의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사업부의 회의 구조부터 바꾸는 것이 먼저다.


1주차 전월 실적이 주제다. 첫주차에 바로 확정 실적이 나오긴 어려우며, 현실적으로 속보성 실적을 가지고 회의를 하게 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숫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시스템이 되어 있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다면 '부진 사유와 향후 대책'이 회의의 주된 논의 사항이 된다.


2주차 주요 메이커별 매익율(매출이익율)이 주제다. 이 조직의 경우 영업사원들이 고객사별로 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영업팀장들도 단가를 낮춰서 매출을 끌어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고, 이는 영업팀 간의 불필요한 마찰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사업부 차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는 이슈다.


3주차 영업 미수가 주제다. 이 부분은 관리의 주체가 전사 차원의 경영지원팀이 맡고 있다. 경영지원팀은 미수채권 회수와 처리에 대한 회사 차원의 대책을 고민하며, 영업팀은 '부진 사유와 향후 대책'을 중심으로 준비한다.


4주차 상품 개발이 주제다. 기성품 뿐만 아니라 직접 수입하거나 제조하는 상품의 진척도와 상황을 점검한다. 영업팀은 판매 가능성을 사전에 판단하고 준비한다.


이제 내가 '영업팀장'이라면 어떻게 사업부 회의에 대응해야 할까? 우선 매주 월요일에 있는 사업부 회의를 준비할 팀 사전회의를 정례화한다.


- 1주차 전월 실적회의를 준비하는 팀 회의는 전주 목요일로 정례화한다. 실적 숫자는 늘상 확인하고 있으니, 월별 실적이 부진한 팀원과 특이사항 중심으로 회의를 진행한다(금요일은 휴가 등의 불참 사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

- 2주차 주요 메이커별 매익율회의 준비 팀 회의는 1주차 목요일로 정례화한다. 전원이 모이기 보다는 매익율이 과도하게 떨어진 팀원과 1 : 1 미팅으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 3주차 미수회의 준비 팀 회의는 2주차 목요일로 정례화한다. 팀 내부적으로 악성 미수에 대한 기간, 특이사항 등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벗어난 팀원들을 중심으로 모인다.

- 4주차 상품 개발회의 준비 팀 회의는 3주차 목요일로 정례화한다. 직접 회의 내용을 생산하지는 않은 만큼 판매가능한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으거나, 팀 내부 목표를 위한 별도의 주제로 회의를 진행한다.


사업부 단위 주간회의가 끝난 후 결과에 대한 사항은 게시판이나 이메일로 공유함을 기본으로 하고 중요한 사안이 발생 시에만 후속 회의를 진행하도록 한다.


상급 회의에 정렬된 팀 회의

정기회의의 장점은 의외로 많다. 첫째, 주제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논의의 시간이 절약된다. 둘째, 연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회의 결정사항에 대한 확인이 용이하다. 셋째, 정기적으로 해당 이슈에 대해 사전 준비 및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스케줄링에 도움을 준다.


다만, 정기회의를 진행함에 있어 팀장이 준수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정기회의는 반드시 실시한다. 팀장이 없다면, 부팀장 또는 선임팀원이 주재한다. "오늘 회의 하나요?"라는 바보 같은 질문은 안 나오게 한다.

- 정기회의 시작에 앞서 이전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요약해서 언급하고, 실행하기로 한 사항을 점검한다. 회의에 대한 회의가 이는 이유는 논의만 있고 실행이 되지 않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 상급 단위 회의에 제출하는 보고서는 팀장이 최종적으로 작성한다. 특히 대응방안, 후속조치 등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부분은 더욱 그렇다.

- 기초 데이터 수집, 단순 공지, 진행 사항 확인 등 단순성 업무는 부팀장 또는 선임 팀원에게 업무를 부여해서 팀장 본인의 생각할 절대 시간을 확보한다.

- 월 1회 이상은 팀 내 목표, 팀원 역량 강화, 또는 팀 KPI 관련 회의를 진행한다. 이는 당면 실적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매우 중요한 이슈들이다. 회의실을 벗어나 야외나 카페에서 진행해보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회의에 대한 팀장의 원칙

상급 단위 조직의 회의는 사실 팀장의 의지와는 별개로 움직인다. 피할 수도, 그렇다고 즐길 수도 없다. 우선 팀 회의의 구조를 바꾸고, 상급 회의와 정렬을 통해 업무와 맞물려 돌아가는 회의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회의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회의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분명 있다.

이전 10화카리스마 없는 팀장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