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으로 산다는 것 #13
개인적으로 영화를 매우 좋아합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엔 한 달이면 영화관에 두세 번은 갔었습니다. 넷플릭스와 왓챠의 구독자이기도 하고요. 왓챠에서, 예전에 본 영화를 1,000편까지 찍어보다 '내가 정말 영화를 많이 봤구나'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참고로 1,000편 감상 시간을 대략 따져보면 3달 정도 됩니다).
영화란 매력적인 매체입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의미와 위안을 얻을 수 있었지요. 팀장 생활 시절 중에도 뭔가 느낄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영화를 찾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그 해석은 제가 받아들이기 나름이었지만요. 기억에 남고, 비즈니스 영화로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일곱 편을 뽑아 봤습니다(영화의 일부 내용일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개 순서는 추천 순이 아닙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대학 시절부터 창업 후 초기 단계까지를 그린 영화입니다. 약간 B급 영화 같은 느낌이 전반적으로 나는데, 개봉 영화가 아니라 TV 영화라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내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원제인 '실리콘 밸리의 해적들'을 그대로 썼으면 좋았겠다는 느낌입니다. 실제 이 둘은 복제의 달인들이었거든요.
제품 개발의 보물창고는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이곳에선 GUI(Graphic User Interface), 마우스, 이더넷, 프린터 드라이버 등의 컴퓨터 관련한 기반 요소들을 먼저 개발해둔 상황이었는데, 상용화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뤄서 큰돈을 벌게 됩니다. 둘 다 해적인 셈입니다. 다만, 더 영악했던 건 '빌 게이츠'였습니다.
애플의 GUI 기반 컴퓨터를 보고 나서 이를 훔쳐야겠다고 마음먹은 빌 게이츠는 애플의 하청을 빌미로 새로운 맥을 받아온 후 이를 모방하여 '윈도우즈' 운영 체제를 만듭니다(사실 IBM에 팔아먹었던 'DOS'도 무명의 프로그래머에게 몇만 불에 산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게 불같이 화를 내게 되는데, 빌 게이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베꼈다고? 너도 팔로알토에서 훔쳤잖아!"
자리를 떠나는 빌 게이츠.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스티브 잡스가 자위하듯 말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너네보다 나아. 우리 것이 더 낫다고"
빌 게이츠의 일침. 최고의 대사입니다.
"넌 뭘 모르고 있어, 스티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냐." (You don't get it, Steve. That doesn't matter.)
[팀장에게 힘을]
회사는 다양한 하위 조직으로 구성됩니다.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같은 목적이 있지만, 부서 간의 이해관계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고 남들도 다 내 맘 같을 거라는 생각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해외 영업을 할 때, 신규 제품 개발을 논의하던 중 바이어의 샘플 요청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개발부서에 관련 사항을 전달하고, 제작을 의뢰했지요. 샘플이 전달되고, 바이어에게서 승인됐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발주가 유망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생산부서와 양산을, 구매부서와 원부자재 수배를 논의하던 중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하나 두 개 만들 때는 가능한데 생산라인에 태우면 양산이 불가능할 거라는 얘기, 고급 원자재를 썼기 때문에 적자가 날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기술개발부서는 쓸데없이 기대 수준 이상의 샘플을 만들어냈습니다.
잘 팔리는 제품은 '합리적인 가격에, 합리적인 성능을 갖춘 제품'입니다. 최고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만들거나 제공하려는 재화와 서비스의 수준에 대한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작품'이 지향하는 틈새시장인지, '제품'이 지향하는 주류시장인지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핵심은 우리 회사가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시장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맞추는 작업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만들고 싶은 제품을 만들었고, 빌 게이츠는 팔릴 만한 제품을 만든 겁니다. 우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제품이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잘 팔리는 게 좋은 제품입니다. 그런 면에서 빌 게이츠가 스티브 잡스보다 더 위대하단 생각이 듭니다.
명작 중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가 정신과 의사로, 맷 데이먼이 문제아로 나옵니다. 수학 천재이기도 하죠. 유년 시절 아버지로 받은 학대로 인해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습니다. 대인 관계를 깊이 맺어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이상한 성격이 돼버렸지요. 그래서 정신 상담을 받게 되는데요. 상담을 거부하고 화를 내는 맷 데이먼에게 로빈 윌리엄스가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반발하는 맷 데이먼에게 몇 번이고 말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세어 보니 '열 번'을 말하더군요.
[팀장에게 힘을]
이 영화는 몇 번을 봤습니다. 그중 2004년 신규 사업을 추진할 때의 봤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시장에선 완전히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제 명함을 바닥에 던지면서 면박을 주는 사람이 있었고, 미팅 자체를 거부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의욕이 떨어져서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 가면서 일을 해야 하나' 싶던 시절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며 위의 대목에서 저도 맷 데이먼처럼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로빈 윌리엄스처럼 응원해주시던 회사 외부의 은인이 계셨습니다.
애초 어려웠던 사업을 실제 도와주셨던 분입니다. 본인의 신용을 빌어주셔서 거래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운을 북돋는 말씀을 해주셨죠. "김 대리, 이건 되는 사업이에요. 옳은 방향입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저 자신도 확신이 부족하던 시절, 큰 힘이 돼주셨습니다. 제로에서 시작했던 사업은 이후 5년 만에 400억 원 매출까지 달성됐습니다.
1997년 국민들의 애정을 받던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자, 영국에선 우울증 환자 수가 줄었다고 합니다. 유추해보면 슬픔을 애도하면서 평소 갖고 있던 우울감이 줄어서가 아닐까 분석이 됐다고 하네요. 창피한 얘기지만, 저는 종종 우는 기회(?)를 찾습니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실컷 울어봅니다. 한국 남자들은 울 필요가 있습니다. 가슴에 화를 쌓아두는 경향이 많지요. 본인에게라도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외부에서 본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럴 때는 평소 자주 보던 사람들 말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느슨한 관계의 사람 중에서 만남이 좋을 수 있습니다. 관계가 깊으면 오히려 조언해주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나 우울감이 심각하면 상담센터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성인자만을 선택해서 우성 인간을 태어나게 하고, 이로써 사회적 계급이 나뉜다는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이선 호크는 비계획적으로 태어난 열성 인간입니다. 질병으로 서른 살을 못 넘긴다는 예고를 받고 태어났지요. 하지만 동생 로런 딘은 거의 완벽한 우성 인간입니다. 키도, 체격도 형보다 뛰어납니다. 둘은 어릴 적부터 바다에서 수영 내기를 했는데, 누군가 먼저 포기할 때까지 바다로 헤엄쳐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 동생의 승리였지요.
이선 호크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갈 꿈을 꿉니다. 하지만 우성 인간에게만 허락된 것이라 다른 사람(주 드로)의 신분으로 위장을 하죠. 그러던 중 감독관에게 신분이 탄로 날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그를 살해합니다. 점점 수사망이 좁혀들고, 수사관이었던 동생이 그를 찾아옵니다. 이선 호크는 자수하면서 다시 한번 수영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언제나처럼 동생이 이길 것 같은 내기.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동생이 먼저 포기를 하죠.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우린 해변에서 너무 멀리 왔어! 위험하다고!"
"알려줄까? 나는 돌아가는 힘을 남겨놓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I never saved anything for the swim back.)
[팀장에게 힘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 회사가 좀 더 큰 회사였다면', '임원이 좀 더 날 밀어줬더라면'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넉넉한 상황의 친구들(우성 인간)을 떠올려보며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정된 자원과 제한 있는 환경에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팀장(열성 인간)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다만, 이러한 현실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말하지요. 하지만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는 모르고 내뱉을 때가 많습니다. 혹시 그 최선의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치열한 고민이 이뤄졌는지 종종 자기반성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을 때, 모든 것을 바쳐서 최선을 다했던 그 순간의 기억을 간직하고, 상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동안 위의 글귀는 인쇄해서 제 책상에 붙여 놓고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상황을 비난하기보다 나 먼저를 되돌아보기에, 남 탓하지 않고 새롭게 출발하곤 했습니다. 설사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과정에 만족할 수 있게 되고, 어제보다 발전한 나 자신에 대해 뿌듯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2편에서 계속)